CAFE

자유롭게 글쓰기

Re:시차 문제, 당시 정황에 대해 종합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작성자김용만|작성시간02.08.04|조회수83 목록 댓글 0
전쟁이란 시간대별로 각 부대의 위치가 달라집니다.
그런 것을 고려하지 않고 전쟁상황을 논한다면 문제겠지요.
앞서 내가 644년 연개소문이 영주에 오려한다는 첩보를 645년 당태종의 퇴각과 연결지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던 것과 같습니다.

자. 먼저 구당서에 장량의 군사가 사성에 있으니 운운 하는 부분은
구당서가 아니라, 신당서와 자치통감에 기록된 것입니다.

그리고 장량이 사성에 있으니, 이틀이면 올 수 있다고 한 시점은 8월 10일이후부터 거의 9월초(자치통감에 따르면) 시점에서 말한 것입니다. 이때는 이미 7월 22일 건안성 전투에서 패전한 장량의 군대가 다시 비사성으로 돌아가서 요동반도 끝의 거점에서만 겨우 움직이던 시기입니다.

또한 장량의 부하인 구효충이 압록강을 공격한 시점쪽으로 간 시점은 5월 2일 비사성 함락 직후입니다.
그런만큼 당의 해군의 움직임은
비사성 점령(5월 2일) - 압록강 방면 공략(일부부대가 파견-회군, 또는 패전, 5월초, 중순) - 건안성 공격(장량 등 당 해군의 주력부대, 7월중순, 말) - 패배후 비사성에 돌아와 머뭄(7월말, 8월초)

이런 순서입니다. 우선 이것을 염두에 두어야 헤갈리지 않을 것입니다.

사성은 곧 비사성으로 보는데 크게 이견이 없습니다. 압록강 주변의 성이 아니라, 지금의 대련시 흑구산성이라고 보아도 큰 문제는 없습니다.
안시성을 공격하던 당의 육군이 천산산맥을 넘어 수암을 지나 오골성을 공격하는 시간이나, 비사성에서 해군이 배를 띄워 장산열도를 지나 압록강 하구 단동에 상륙하여 여기서 오골성(단동에서 봉성시까지는 차로 2시간 거리임)까지 걸리는 시간은 거의 같기 때문에 이와 같은 작전을 구상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당의 해군을 압록강 주변에 몰아넣고 고구려군이 포위했다는 보는 것은 사서를 지나치게 과장해석한 것입니다. 만일 사성이 압록강 주변이고 그곳에 당의 해군이 주둔하려면, 고구려 해군이 역할을 하지 못해 해군력이 거의 붕괴되었을 경우에만 가능합니다.

비사성이 사성과 같다고 볼 수 있는 이유를 찾아볼까요.
당이 645년 전쟁이 끝날때까지 점령했던 10개의 성이 있는데, 현도, 횡산, 개모, 마미, 요동, 백암, 비사, 맥곡, 은산, 후황 입니다. 여기서 현도, 개모, 요동, 백암, 비사는 큰 설명이 필요없을 것입니다. 또 은산과 후황은 주필산전투에서 고연수군이 항복하면서 함께 항복했던 성이니까 안시성 주변의 성이 되겠고, 횡산은 횡수 주변으로 신성 부근이라고 판단됩니다. 나머지가 마미와 맥곡인데, 이 두성의 위치는 알 수 없지만, 마미는 아무래도 요동성 주변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맥곡성이 남는데, 이를 사성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또리어 맥곡은 소수맥이 있었다는 혼하 등지의 천산산맥 아래의 계곡에 있는 성으로 본다면 이 또한 당의 육군의 공격에 의해 함락된 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군은 비사성외에 별도의 사성을 점령하지 못했다고 보아야 맞습니다.

당의 해군은 오직 비사성밖에는 점령하지 못했습니다. 고구려는 요동반도 남단에 장하시, 장해현, 와방점시 등에 엄청난 해안방어성들을 쌓아놓고 있었습니다. 이런 성들이 모두 함락되지 않았는데, 당군이 이를 통과해서 요동과 평양을 연결하는 교통요지인 압록강 주변까지 공격해왔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님의 글에서 마지막 몇 문장은 도대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이해가 안되는군요. 평소와 다른 문장인데, 피곤한가 봅니다.



--------------------- [원본 메세지] ---------------------
1.제가 장량이 압록강부근에 있었다고 하는데에는 구당서에서의

<장량의 군사가 사성(沙城)에 있으니 그들을 부르게 되면 이틀이면 올
수 있습니다. 고구려의 민심이 흉흉한 때를 타서 장량이 군사와 힘을 합
하여 오골성을 함락하고 압록강을 건너 곧바로 평양을 빼앗는 것이 이
번 길에 달렸습니다.>

즉 장량이 오골성과 이틀거리밖에 되지 않는 사성에 있다는 뜻이기
때문에 압록강부근이라고 한 것입니다.
장량이 사성에 갈수 있는 루트는 수군을 이끌고 직접 압록강으로 가거나
아니면 요동으로 경유해서 가는 것 밖에는 없을 것으로 봅니다.

하지만 수군이 요동반도를 통해서 갔다고 생각되지 않기 때문에,
곧바로 압록강으로 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4만 3천에서 대총관이 거느리는 부대이외에 부대를 몇명이나 보낼까요...
구효충을 보냈다고 해도 주력군이 합세하지 않는한 구효충혼자서 고구려
수군을 뚫고 갔을리 만무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회의에서 말한 장량군을 장량의 부하인 행군총관 구효충의 부대
를 일컬은 말일수도 있겠으나, 주력군도 아닌 부대와 협공으로 압록강을 건너자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 봅니다.

비록 처음에는 장량이 건안성을 공격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수륙합동작전을 하기 위해서는 함락되지 않는 건안성에서 머무는 것
보단 해상으로 나아갔던 것이 당시 상황으로서도 장량에게는 정확한
선택이 아니었을까요...

왜 당군의 수군이 압록강부근 사성으로 갔을까에 대한 생각은 하고
있으나 표현이 잘 되지 않습니다.
표현이 되지 않는다 해도 우선적으로 이러한 생각들은 기본적으로
깔려 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