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기님의 글을 읽어보면 열심히 자료를 보았다고 생각이 들지만, 자료가 어떤 의미로 쓰여졌는가에 대해서 조금만 더 생각을 해보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군요.
자, 님이 말한 문장.
오골성에서 사성에서 오골성까지 하룻밤이면 된다는 말...
신당서:張亮軍在沙城, 召之一昔至, 若取烏骨
이것은 분명 하룻밤에 온다는 뜻입니다. 약간의 과장을 덧붙인다고 하더라도, 조만간 사성의 장량의 군대가 올 수 있다. 이런 해석입니다. 그러니 해석이 틀린 것은 결코 아닙니다. 물론 오골성으로 부른다는 뜻도 맞습니다.
그런데 이정기님의 의문의 시작인
장량이 내주항에서 출발한 것이 3월중순인데, 비사성에 도착한 것이
4월 말. 비사성을 공격한 것이 5월 2일.
이것은 님의 분명 고구려 대수,당전쟁사(국방부전사편찬위원회 간행) 182-183 page를 보았거나, 이와 관련된 논문을 보고 말한 것일 것입니다.
그런데 님은 래주에서 비사성까지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다. 그러니, 비사성에서 오골성까지 그렇게 빨리 금방 올 수 있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자, 먼저 위 문장의 잘못을 지적하자면, 장량이 내주항을 출발한 시점은 기록에 없기 때문에 언제 출발했는지 정확히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세적의 군대가 유성을 출발한 시점이 3월 24일이고, 이세민은 이때 정주를 출발합니다. 그런만큼 당의 해군이 이보다 먼저 출발했을 가능성은 적습니다. 해군은 어디까지나 육군의 보조적 기능을 담당했기 때문입니다. 설령 먼저 출발했다고 하더라도, 이들이 곧바로 비사성을 공격했을 가능성은 적습니다.
무엇보다 당의 해군의 임무는 등주앞에 있는 고대인성에 모아둔 군량을 당 육군에게 전달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4월에 건안성을 공격하고 있는 영주자사 장검군에게 식량을 공급하는 것이 가장 먼저 이루어졌을 수도 있습니다.
또 묘도열도와 대장산열도에서 고구려 해군과 치열한 해상및 전진기지인 섬에서 육전을 치루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비사성은 지금의 금주만이나 대련만에 있는 고구려 수군기지의 배후산성입니다. 당이 비사성을 공격한 목적은 고구려 해안가에 거점을 확보하고, 고구려군의 위협으로 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한 목적이 있습니다. 따라서 먼저 해안의 수군기지를 공격하여 격멸시킨 후, 배후산성인 비사성을 공격했다고 보아야 합니다. 따라서 등주를 출발하자 마자, 곧장 비사성 공격을 감행할 수는 없다고 봐야합니다.
자치통감에 보면 4월 26일 이세적이 개모성을 함락한 그날밤에 정명진과 왕문도가 비사성 서문에 이르러 먼저 공격을 했다고 나옵니다. 비사성이 완전 함락된 것은 5월 2일이지만, 공격은 결정적인 공격은 4월 26일부터 시작된 것이지요. 하지만, 당의 해군이 4월 26일에 바로 비사성 앞에 당도했는지, 아니면 몇일 전부터 비사성에 당도해서 대치하다가, 이날 밤에 기습전을 펼쳤는지는 모릅니다. 나는 당연히 후자에 더 가능성을 둡니다. 왜냐하면 비사성이 단번에 함락될 만큼 허약한 성이 아니기 때문에 몇일간의 대치 후에, 당군이 기회를 잡아 공격했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도착 시간은 원문을 정확히 보고, 어디에 도착한 것인지, 언제부터 무엇을 했던 것인지, 그 앞에 어떤 사건이 벌어질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당의 해군은 비사성을 거점으로 삼아 약 4개월이 넘게 버텼읍니다. 하지만, 이들은 건안성 공격도 하고, 압록강 입구로 배를 보내는 등의 작전을 펼쳤고, 고구려 해군 및 요동반도 남단의 고구려 성들에서 나온 병사들과 치열하게 전투를 벌였습니다. 이들은 등주에서 건너오는 보급품과 후발대의 안전한 도착을 위해 고구려군과 싸우기도 했겠지요.
실제로 등주에서 대련까지(비사성 앞)까지 배로 오면 아무리 늦어도 2일이나 3일이면 옵니다. 대련만에서 압록강까지도 거의 비슷한 시간이 걸립니다. 그렇게 많은 시간이 소모되지는 않습니다. 단, 아무런 장애가 없을 때에 한정되겠지요. 그런만큼 이것으로 사성의 위치를 추정해보기는 어렵습니다.
정말 중요한 문제는 사성과 비사성을 서로 다른 성이라고 볼 근거가 없다는 것과, 비사성의 위치가 압록강 입구로 볼 근거가 없다는 점입니다.
당의 여러 장수들이 장량의 부대라도 부른다면 좋겠다는 뜻으로 장량의 군대가 하루만에 올 수 있다고 한 것인 만큼, 그것이 꼭 하루인지는 모릅니다. 난 오히려 당의 육군이 안시성에서 철저하게 고립되어 후퇴도, 전진도 못하고 쩔쩔매는 상황에서 타개책을 마련하기 위해 당의 해군의 도움이라도 받고자 했던 작전으로 봅니다. 당의 해군이 건안성을 공격한 것도 육군이 활로를 찾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당이 오골성 공격은 포기하지요.
만약 사성이 오골성 주변이라면, 고구려군의 방어체제라든가, 전략에서 큰 변화가 있었을 것입니다. 오골성에서 백암성에 원군을 보내지 못했을 것이고, 당군의 작전회의에서도 먼저 해군이라도 오골성을 공격하라고 나왔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논증한 것처럼 나는 사성을 비사성과 다르게 보거나, 또는 사성(비사성)의 위치가 오골성과 가깝다고 보는 것은 찬성할 수 없습니다.
자, 님이 말한 문장.
오골성에서 사성에서 오골성까지 하룻밤이면 된다는 말...
신당서:張亮軍在沙城, 召之一昔至, 若取烏骨
이것은 분명 하룻밤에 온다는 뜻입니다. 약간의 과장을 덧붙인다고 하더라도, 조만간 사성의 장량의 군대가 올 수 있다. 이런 해석입니다. 그러니 해석이 틀린 것은 결코 아닙니다. 물론 오골성으로 부른다는 뜻도 맞습니다.
그런데 이정기님의 의문의 시작인
장량이 내주항에서 출발한 것이 3월중순인데, 비사성에 도착한 것이
4월 말. 비사성을 공격한 것이 5월 2일.
이것은 님의 분명 고구려 대수,당전쟁사(국방부전사편찬위원회 간행) 182-183 page를 보았거나, 이와 관련된 논문을 보고 말한 것일 것입니다.
그런데 님은 래주에서 비사성까지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다. 그러니, 비사성에서 오골성까지 그렇게 빨리 금방 올 수 있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자, 먼저 위 문장의 잘못을 지적하자면, 장량이 내주항을 출발한 시점은 기록에 없기 때문에 언제 출발했는지 정확히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세적의 군대가 유성을 출발한 시점이 3월 24일이고, 이세민은 이때 정주를 출발합니다. 그런만큼 당의 해군이 이보다 먼저 출발했을 가능성은 적습니다. 해군은 어디까지나 육군의 보조적 기능을 담당했기 때문입니다. 설령 먼저 출발했다고 하더라도, 이들이 곧바로 비사성을 공격했을 가능성은 적습니다.
무엇보다 당의 해군의 임무는 등주앞에 있는 고대인성에 모아둔 군량을 당 육군에게 전달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4월에 건안성을 공격하고 있는 영주자사 장검군에게 식량을 공급하는 것이 가장 먼저 이루어졌을 수도 있습니다.
또 묘도열도와 대장산열도에서 고구려 해군과 치열한 해상및 전진기지인 섬에서 육전을 치루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비사성은 지금의 금주만이나 대련만에 있는 고구려 수군기지의 배후산성입니다. 당이 비사성을 공격한 목적은 고구려 해안가에 거점을 확보하고, 고구려군의 위협으로 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한 목적이 있습니다. 따라서 먼저 해안의 수군기지를 공격하여 격멸시킨 후, 배후산성인 비사성을 공격했다고 보아야 합니다. 따라서 등주를 출발하자 마자, 곧장 비사성 공격을 감행할 수는 없다고 봐야합니다.
자치통감에 보면 4월 26일 이세적이 개모성을 함락한 그날밤에 정명진과 왕문도가 비사성 서문에 이르러 먼저 공격을 했다고 나옵니다. 비사성이 완전 함락된 것은 5월 2일이지만, 공격은 결정적인 공격은 4월 26일부터 시작된 것이지요. 하지만, 당의 해군이 4월 26일에 바로 비사성 앞에 당도했는지, 아니면 몇일 전부터 비사성에 당도해서 대치하다가, 이날 밤에 기습전을 펼쳤는지는 모릅니다. 나는 당연히 후자에 더 가능성을 둡니다. 왜냐하면 비사성이 단번에 함락될 만큼 허약한 성이 아니기 때문에 몇일간의 대치 후에, 당군이 기회를 잡아 공격했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도착 시간은 원문을 정확히 보고, 어디에 도착한 것인지, 언제부터 무엇을 했던 것인지, 그 앞에 어떤 사건이 벌어질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당의 해군은 비사성을 거점으로 삼아 약 4개월이 넘게 버텼읍니다. 하지만, 이들은 건안성 공격도 하고, 압록강 입구로 배를 보내는 등의 작전을 펼쳤고, 고구려 해군 및 요동반도 남단의 고구려 성들에서 나온 병사들과 치열하게 전투를 벌였습니다. 이들은 등주에서 건너오는 보급품과 후발대의 안전한 도착을 위해 고구려군과 싸우기도 했겠지요.
실제로 등주에서 대련까지(비사성 앞)까지 배로 오면 아무리 늦어도 2일이나 3일이면 옵니다. 대련만에서 압록강까지도 거의 비슷한 시간이 걸립니다. 그렇게 많은 시간이 소모되지는 않습니다. 단, 아무런 장애가 없을 때에 한정되겠지요. 그런만큼 이것으로 사성의 위치를 추정해보기는 어렵습니다.
정말 중요한 문제는 사성과 비사성을 서로 다른 성이라고 볼 근거가 없다는 것과, 비사성의 위치가 압록강 입구로 볼 근거가 없다는 점입니다.
당의 여러 장수들이 장량의 부대라도 부른다면 좋겠다는 뜻으로 장량의 군대가 하루만에 올 수 있다고 한 것인 만큼, 그것이 꼭 하루인지는 모릅니다. 난 오히려 당의 육군이 안시성에서 철저하게 고립되어 후퇴도, 전진도 못하고 쩔쩔매는 상황에서 타개책을 마련하기 위해 당의 해군의 도움이라도 받고자 했던 작전으로 봅니다. 당의 해군이 건안성을 공격한 것도 육군이 활로를 찾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당이 오골성 공격은 포기하지요.
만약 사성이 오골성 주변이라면, 고구려군의 방어체제라든가, 전략에서 큰 변화가 있었을 것입니다. 오골성에서 백암성에 원군을 보내지 못했을 것이고, 당군의 작전회의에서도 먼저 해군이라도 오골성을 공격하라고 나왔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논증한 것처럼 나는 사성을 비사성과 다르게 보거나, 또는 사성(비사성)의 위치가 오골성과 가깝다고 보는 것은 찬성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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