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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그냥 의문이 하나 있어서 답변을 남깁니다.

작성자한단인|작성시간02.08.07|조회수42 목록 댓글 0

추모왕이 병사한 것이 아니라 모종의 이유로 사망했다는 것은 이 카페에 가입하신 분들은 한번쯤은 들어보셨을 만한 내용입니다.

다만 전사라는 부분은 저도 좀 의외라고 생각합니다만,,,
음,,전사라,,,황룡이 내려와서 이것을 타고 승천했다고 태왕비가 말하고 있긴 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황룡국과의 전쟁에 의한 전사라?
님이 생각하시는 이유를 알고 싶네요. 이건 저도 좀 의외라서,,,
원래 여기서의 황룡은 그저 조선 고유의 신선, 풍류 사상 때문에 그냥 죽었다 라고 할 만한 내용을 미화한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해 왔었습니다. 그런데 태왕비의 황룡과 삼국사기에 나오는 황룡국의 황룡이 같다라? 저로써는 좀 납득이 가질 않습니다만,,
일단 고구려 주변의 나라니까 조선 열국의 한 나라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구요. 그렇다면 이두문으로 된 국명이 아니니까 여기서의 황룡국은 원 국명이라기 보다는 후대의 오기, 혹은 상징적인 의미일 가능성이 높은데 이것을 당시 태왕비에서도 똑같은 표현 방식으로 황룡을 썼을 지는 좀 의문이 갑니다.

음,,,그건 그렇고 님이 생각하신 황룡국은 혹시 북부여인가요?

저도 황룡국이 약소국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기록대로 약소국이었다면 황룡국이라는 국명의 오만함을 고구려의 기록이 남겨뒀을 리가 만무하고 또한 구실이었다고 하지만 속국이라는 황룡국 사신의 활을 부러뜨린 걸로 태자인 해명을 죽이려고 했던 유리명왕의 이해할수 없는 행동은 황룡국이 단순히 약소국이 아니었다는 것을 반증하기는 합니다. 그런데 님이 생각하시는 황룡국이 무엇인지는,,,음,,,저는 북부여가 아닐까 생각은 하고 있지만 님이 생각하시는 황룡국의 실체는 무엇인가요? 상당히 궁금합니다.

어찌 되었든 님이 근거로 드신 삼국사기의 기록을 다시 한번 살펴봐야겠군요, 꽤나 관심이 가는 의문인데요? 헐헐헐

--------------------- [원본 메세지] ---------------------
동명성왕이 전사했다?

제 글을 읽으신 분들은 한번쯤 고개를 갸우뚱 했을 것입니다.

제가 동명성왕이 전사했다고 말하게 된 이유는 동명성왕의 죽음과정에 대한 의문점 때문이였습니다.

얼마전 제 논문 <홀본과 홀승골성의 위치에 대한 재고증> 원고를 쓰기 위해 삼국사기를 읽다가 동명성왕과 유리명왕 기록 중 '황룡'과 '골천'이라는 단어가 의외로 많이 나온 것에 흥미를 갖고 조사해 보았습니다.
그 결과 동명성왕 19년 고구려와 황룡국 사이에 큰 전쟁이 일어났고 그 전투 중 동명성왕이 사망했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동명성왕의 사인은 병사. 유리명왕이 태자로 책봉된지 불과 5개월만에 왕이 승하한 것에 초점을 맞춘 연구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그 주장이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황룡국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동명성왕 3년 두만강 일대에 북옥저. 고구려와 접경을 마주데고 골천에 세워진 나라이며 동명성왕 19년 고구려에게 정복당해 속국이 된 나라입니다.

황룡국은 고구려에 인접해 있는 강국이였고(황룡국이 건국 초부터 고구려의 속국으로 시작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나중에 제가 쓰게 될 '황룡국의 실체'를 읽고 나서는 생각이 바뀌실 겁니다) 이 때문에 고구려와 황룡국의 무력 충돌은 불가피 했으며 마침내 동명성왕 19년 고구려는 황룡국을 선제공격해 무너뜨리고 고구려의 속국으로 만들었습니다.

(고구려와 황룡국의 관계는 후에 설명)

어쨌든 단도직입 적으로 제가 동명성왕이 왜 황룡국과의 전쟁에서 전사하게 되었다고 말 했느냐? 그 이유는 바로 광개토대왕 비에 있는 동명성왕의 승하에 대한 기록 때문입니다.

황룡을 아래로 보내어 왕을 영접하니, 왕이 홀본동쪽에서 용의 머리에 올라 타고, 하늘로 승천하였다.

비석에서는 동명성왕이 세상일에 싫증을 내어 승천했다고 하지만 어딘가 수상한 구석이 있는 죽음입니다. 동명성왕의 승하에 대한 기록은 황룡국과의 전쟁에서 동명성왕이 전사했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말한 것입니다.

비석에 적힌 황룡국을 지칭하는 것이고 왕이 홀본 동쪽에서(황룡국은 홀본 동쪽에 있다)황룡국왕의 머리를 밟아 무너뜨리고(전투에서 승리해 황룡국 왕을 복속시킴)죽었다(전투 중 전사 혹은 부상의 후유증으로 사망)

즉 황룡국 왕을 이기고 황룡국을 취하였으나 불행히도 동명성왕은 전사했다는 것입니다.

아직도 제 글이 엉뚱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저로써는 어쩔 수 없는 노릇입니다.

고구려와 황룡국의 전투에 대한 기사가 현존하는 어느 역사서에서도 남아 있지 않아서 제 주장에 대한 신빙성이 어느 정도 떨어지지만 삼국사기 곳곳에 남겨진 황룡국의 실체와 고구려의 관계등을 한번 머리속에 떠올려 보세요.

고구려 최초의 정복군주 동명성왕은 황룡국과의 전투를 승리로 이끌고 전사했지만 그의 아들 유리명왕은 동명성왕의 유업을 이어나가 고구려를 훌륭하게 다스렸고 그 결과 고구려는 몇세기 후 동아시아의 최강대국이 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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