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2일째 사진들입니다. 1일째에는 운좋게도 어떤 한국인 여성분들을 만나 그분들과 동행했었지만, 그분들이 떠난 뒤인 여행 2일째부터는 혼자 돌아다녀야 했습니다.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덥고 습한 날씨, 번잡한 교통 사정, 끊임없이 달라붙는 호객꾼들. 고생은 했지만 그래도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그런것들 하나하나가 다 추억이 되어버렸습니다. 사진이 많은 관계로 두번에 걸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조악한 사진들이지만 너그럽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데탐 거리의 아침
오토바이로 가득찬 거리
상점 거리
선전 포스터
가로수 길
통일궁 정문 - 통일궁은 베트남이 남북으로 분단되어 있던 시기에 남베트남 정권에서 대통령궁으로 사용하던 건물입니다. 통일 이후 남베트남의 대통령궁은 통일궁으로 명칭이 바뀌었습니다.
정면에서 본 통일궁 정면
1975년 4월 30일의 전차 - 1975년 4월 30일에 북베트남군의 두대의 전차가 통일궁의 정문을 부수고 들어옵니다. 길고도 길었던 29년간의 전쟁이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습니다.
연회실
회의실
내각회의실
대통령내빈실
부통령외빈실
국서제출실
통일궁 내 소정원
대통령 집무실
영부인 응접실
통일궁 지하 - 전시 작전회의소 및 방공호로 사용했었던듯 합니다.
다음검색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건성 작성시간 09.09.05 와우,, 잘봤습니다.. 저두 시간만되면 떠나고싶네요 ㅠ,ㅜ
-
작성자티이거 작성시간 09.09.06 중국과 미국이 그랬던 것 처럼 베트남도 미국과 관계를 개선한 후 베트남전 때 미군과 싸운 북베트남군의 장교였던 한분이 미국을 방문 해 기자회견을 가졌을 때였다고 합니다. 미국기자 중 한명이 그동안 미국이 가장 궁금해 하던 것을 물었다고 합니다. 그건 바로 "미국이 베트남전 에서 이길려면 어떻게 했어야 했을까요?" 였죠. 이에 그 베트남인은 이렇게 대답 했다죠. "호치민루트요. 워싱턴이 웨스트모어랜드장군의 계획대로 미군이 라오스영내로 쳐들어 가서 호치민루트를 박살내게 놔두었더라면 북베트남과 베트콩은 당해내기 힘들었을 겁니다." 라고요. 그렇습니다. 베트남전 승패의 키워드는 북베트남이 중립국 라오스를 침범 하면서
-
작성자티이거 작성시간 09.09.06 까지 인도차이나 반도 특유의 울창한 정글 속에 만들어 놓은 호치민루트 였죠. 웨스트모어랜드장군은 전쟁 막바지에 병력 2만명 정도와 북폭의 지원을 받아 한번만 더 강하게 밀어 붙이면 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했다죠. 하지만 한국전쟁 때 그랬던 것 처럼 미국내의 거센 반전여론을 비롯해 여러가지 이유로 평화회담을 진행하며 하루라도 더 빨리 전쟁에서 발을 빼고 싶었던 워싱턴의 정가는 북폭도 중단하고 파리평화회담을 진행한 끝에 1972년에 정전협정을 맺었죠. 만약 워싱턴이 웨스트모어랜드장군이 바란 만큼 지원을 해주고 중립국 라오스를 침범 하면서 까지 호치민루트를 압박 했더라면 베트남의 역사는
-
작성자티이거 작성시간 09.09.06 달라질 수 있었을 까요? 그랬으면 베트남 이후 연쇄적으로 비극적인 운명을 맡았던 캄보디아, 라오스 등의 역사도 달라질 수 있었을 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