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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공... 이것이 특별한 호칭인가요?

작성자계림공과 수양대군| 작성시간11.12.26| 조회수227| 댓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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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아가 작성시간11.12.26 공이라는게 어떤전쟁에서 크게승리하여 붙여진것이 아닐까요??

    조선시대에 보면 우리가 크게승리한 전쟁을 별루 없는걸루 알고있어요ㅠ
  • 작성자 大欽茂 작성시간11.12.27 신라시대에 "공"은 존칭으로 사용된 듯 하더군요. 오늘날로 치면 김유신씨, 김춘추님처럼 말이죠. 고려시대 "공"의 용례는 작위와 존칭 두 사례가 보이던데 "조선공" "장렬공"처럼 작위로 내려진 경우 또 "영공" "김공"하는 것처럼 존칭으로 사용된 경우가 보이더군요. 조선시대에는 사후 공이 있는 신하에게 작위로 내려지더군요. "충무공" "충렬공"처럼 말이죠.
  • 작성자 조수아 작성시간11.12.27 대흠무님, 조선시대의 공은 작위가 아닙니다. 충무공은 이순신에게 내려진 시호 '충무'에 존칭 공을 붙인 것이지 조선 조정이 이순신을 충무공으로 봉한 것이 아닙니다. 고려시대는 중국과 같이 왕자, 왕족, 귀족들을 5개의 작위로 봉했습니다. 공 후 백 자 남이 그것이죠. 흔히 ~~백작, ~~공작 하는 게 5등작 제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신라의 예는 잘 모르지만 큰 공을 세우거나 높은 벼슬에 오른 사람들에게 붙여진 미칭이 아닐까 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 大欽茂 작성시간11.12.28 조수아님 이순신장군에게 내린 "충무공"이 시호(충무)+작위(공)가 아니라는 말씀이신가요? 제가 볼때 조선시대 공신 사후에 내렸던 "공"은 5등작제에서 공을 변칙적으로 사용했던 것 같은데요.
  • 답댓글 작성자 조수아 작성시간11.12.28 대흠무님, 반론을 다실 때 '~같은데요'라는 추측성 어투로 반론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주장을 하셨으면 근거를 대 주셔야지요. 시호와 봉작은 엄연히 다른 것입니다. 예를 들어 신숙주는 '고령군'이라는 작위를 받았지만 그의 시호는 '문충'입니다. 그리고 한명회의 작위는 '상당군'이었고 그의 시호는 '충성'이었습니다. 이순신도 작위를 받았는데 그의 작위명은 '덕풍군'입니다. 그리고 시호는 '충무'입니다. 여기서 '공'은 5등작의 공이 아닌 단순히 미칭에 불과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 조수아 작성시간11.12.28 조선은 대한제국 이전까지 그 누구에게도 공을 준 적이 없습니다. 공은 비공식적으로 불리는 호칭이었지 조정에서 공식적으로 부여한 호칭이 아닙니다.
  • 답댓글 작성자 미주가효 작성시간11.12.29 조수아님 말씀이 대체로 옳습니다만, 조선시대에 오등작 중 공(公) 을 조정에서 공식적으로 준 적이 없진 않습니다. 조선 극 초기에 일시적으로 오등작의 공, 후, 백을 부여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실록의 태조 7년 9월 1일 5번째 기사를 보시면 (훗날 대군이 될) 친왕자들을 '공' 으로 삼고 종친을 '후'로 삼고 공신이나 고위 관리를 '백'으로 삼은 예를 보 수 있습니다. 익안공, 회안공, 그리고 (명시적으로 그 기사에 표기되진 않았지만 훗날 태종이 되는) 정안공 등이 그 예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 미주가효 작성시간11.12.29 그러다가 이방원 즉위 이후에 황제국처럼 오등작제도를 쓸 수 없다는 발상으로 공/후/백을 대군/부원군/군 등으로 바꾸게 됩니다.(태종 1월 25일 4번째 기사 참고)
  • 답댓글 작성자 조수아 작성시간11.12.29 미주가효님, 제가 윗 글에서 쓴 조선의 의미는 군작위 제도를 사용한 이후의 조선이었습니다 다른 댓글에서 미주가효님이 지적하신 내용을 간략하게 쓴 바 있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 미주가효 작성시간11.12.29 그렇군요. ^^ 하지만 다른 분들의 참고용으로 댓글은 남겨 둡니다.
  • 답댓글 작성자 大欽茂 작성시간11.12.30 "~같은데요"라고 추측성 어투로 반론하지 말라고 하시는데 제가 추측성어투를 사용하는 것은 나름대로 주관을 가지고 있으나 혹시 잘못 알고 있을 수도 있음으로 상대방의 의견을 청취하려는 자세거든요. 미칭을 사용한 것 자체가 5등작위 "공"을 변칙적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조선시대 왕의 아내는 "왕비"입니다. 하지만 사후에는 "oo왕후"라고 시호를 올리잖아요. 그러니깐 왕비를 "왕후"라고 하는 것은 하나의 변칙적인 사용이죠. 조선은 제후국이니 명분론적으로는 "후"를 사용하면 안되거든요.
  • 답댓글 작성자 조수아 작성시간11.12.31 처음부터 근거를 달아 주셨으면 좋았을 거 같습니다. 그러나 왕후는 조정에서 공식적으로 부여된 것이고 공은 그렇지 못하다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실록에 누구를 ○○왕후로 추존했다고 나옵니다. 그러나 공의 경우, 누구를 ○○공으로 봉했다고 나오지 않습니다. 처음 누구에게 ○○이란 시호를 하사하고, 그 뒤로 그 사람을 언급할 때 ○○공으로 기록되지요.
  • 작성자 조수아 작성시간11.12.27 조선도 국초에는 고려의 예를 따라 5등작 제도를 사용했으나 곧 스스로 제후국의 예를 차리면서 '군' 작위를 내립니다
  • 작성자 정성일 작성시간11.12.28 남당유고 법흥왕11년 정월기사
    王子殿君太公 國之章 皆從仙院之制 太大角干大角干上大等位 伊伐飡伊尸飡大登之位 皆用金紫衣銀魚大牙笏錦冠珠纓白馬檀車 匝飡波珍飡大阿飡上登之位 皆用銀紫衣銅魚圓頭牙笏緋冠同前 衿荷臣綠紫衣銅魚同前 四重阿飡至阿飡一等之位 緋衣銅於同前 一吉飡沙飡及飡二等之位 緋衣藍帶緋冠貝纓直頭牙笏靑馬楊車 九重大奈至大奈麻三等之爲 靑衣組纓鳥帽木笏同前 七重奈麻至奈麻四等之位 靑衣鳥帽素纓木雜車馬 大舍以下同前 赤位大舍組纓華冠 堂下大奈麻從四等之位 阿飡以上 帶寫從仙品 刀制從勳功 阿飡以下 隨等級 降帶寫衣紋
  • 답댓글 작성자 정성일 작성시간11.12.28 삼국사기엔 公이라고 쓴 기록이 거의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파사이사금의 비인 사성부인의 아버지 허루갈문왕을 公이라고 쓴 기록이 보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 계림공과 수양대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1.12.28 그렇다면 사극이나 소설, 심지어 게임 등에서 김유신과 김춘추를 각각 유신공, 춘추공이라고 하거나
    여러 상대등들이나 화백회의 장들에게 공을 붙이는 것이 단순 설정일 수도 있겠군요?
  • 답댓글 작성자 大欽茂 작성시간11.12.30 이름 뒤에 "공"을 붙히는 것도 결국 오등작위 "공"을 변칙적으로 사용한 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작성자 추모왕 작성시간11.12.31 존칭이 맞는것 같네요 일본도 보면 키마무라상이나 카토상이라고 하는걸 보면 김공도 존칭이아 할 수 있죠 현대에도 일본은 카토상이라고 올려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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