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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 39장 신무이영의 以 (써 이) 용법

작성자자이수|작성시간13.08.03|조회수383 목록 댓글 0

보니까 도가사상이 매우 어려워 보입니다.
神無以靈(신무이령)의 해석이 사람마다 다른 거 같습니다.
신무이령을 검색해 보니

http://blog.daum.net/chods58/1535
http://cafe.daum.net/mochung3/42si/509?docid=4287800821&q=%BD%C5%B9%AB%C0%CC%BF%B5

 

신무이령 39장 전체를 보니깐 신무 다음에 도(一)가 생략된듯 합니다.
즉 <신이 도가 없이 (결과를 나타내는 써 이가 나와서 앞의 말을 받아) 영험해지면  장차 시들어버릴까 우려스럽다> 라고 되는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즉 <정도를 지키지 않고 날뛰면 곧 시들어 버린다>는 일종의 경고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중 http://cafe.daum.net/mochung3/42si/509?docid=4287800821&q=%BD%C5%B9%AB%C0%CC%BF%B5

의 글을 가지고   以 (써 이) 용법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원본은 위링크를 참고하시고 <써이> 용법은 위 한문용법에 맞추어 원본과 제 의견이 다른 부분은 빨간색으로 추가하였습니다.

일종의 주석인 셈이죠.

 

먼저 한문문법에서 以 (써 이) 용법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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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문법 제4강

Ⅱ. 허사(虛飼)의 용법(用法)

 

1. 以 (써 이) 그러므로써 (결과을 나타냄)

 

① 도구, 방법, 자료, 수단 : ~으로써, ~을 가지고.

․以衣溫我, 以食飽我, : 옷으로써 나를 따뜻하게 하시고 밥으로써 나를 배부르게 하셨다.

․以文會友, 以友輔仁. : 글로써 벗을 모으고 벗으로써 인을 도와라.

* 결과의 <써 이>로써 사용되어 <그 결과 옷이 나를 따듯하게한다>로 풀이 되는듯 합니다.

 

② 이유, 까닭은 : ~ 때문에, ~로 인하여

․人所以貴, 以其倫綱. : 사람이 귀한 이유는 오륜과 삼강 때문이다.

․君子所以爲君子, 以其仁也. : 군자가 군자가 된 까닭은 그 인 때문이다.

       .所以. : 이유, 까닭

       .以 : 때문이다 


③ 목적 : ~을

․父, 寄我以家事. : 아버지께서 나에게 집안 일을 맡기셨다.

․母, 以美味與我. : 어머니께서 맛있는 음식을 나에게 주셨다.


④ 신분, 자격 : ~로, ~으로서

․父以事之. : 아버지(아버지의 자격으)로 섬겨라.

․兄以事之. : 형(형의 자격)으로 섬겨라.

 


⑤ 부터. : 일정한 시간이나 장소를 한계로 해서 ~로부터.

․以上 : 어느 일정한 한계로부터 그 위.

․以前 : 어느 일정한 때로부터 그 전.

 

 

2. 以 A 爲 B, 以爲~

 

① A를 B라 여기다. A를 B로 삼다.

․爲仁, 以孝弟爲本. : 인을 행하는데는 효와 공손함을 근본으로 삼는다.

․居上, 主於愛人. 故, 以寬爲本. : 윗자리에 있을 때에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주로 하기 때 문에 너그러움을 근본으로 삼는다.


② ~라 여기다. ~로 삼다. ~이 되다.

․事君盡禮, 人以爲諂也. : 임금을 섬김에 예를 다함을 사람들은 아첨한다고 여긴다.

 

․君子, 不知人, 則是非邪正, 或不能辨. 故, 以爲患也. :

군자는 남을 알지 못하면 옳고 그름과 간사하고 정직함(시비사정)을 혹 분별할 수 없으므로 (남을 알지 못하는 것:不知人을)근심으로 삼는다.

 

․仁者, 心之德, 非在外也, 放而不求. 故, 有以爲遠者. : 인이란 마음의 덕이니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다. 놓아두고 찾지 않으므로 멀다고 여기는 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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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 http://cafe.daum.net/mochung3/42si/509?docid=4287800821&q=%BD%C5%B9%AB%C0%CC%BF%B5

을 가지고 <써이> 용법을 분석해 보았습니다.

 

원본은 위링크를 참고하시고 <써이> 용법은 위 한문용법에 맞추어 원본과 제 의견이 다른 부분은 빨간색으로 추가하였습니다.

일종의 주석인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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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경 제 39장

 

〈제9강〉이 세계는 두 개의 대립되는 면面의 조합이다.

 

有無相生- 이 세계는 두 개의 대립되는 면의 조합이다.

그것을 크게 이 세계는 有와 無의 관계 속에 있다고 한 것이다.

이 말은, 이 세계는 본질적인 것의 조합이 아닌 관계 속에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道라는 글자로 표시했고 은유적 표현으로 一(하나) 라 하였다.

그런데 그 一 은 새끼줄같이 두 대립면이 꼬여 있는 一 이다.

〈 一 ⇔ 道 ⇔ 有無相生 〉

 

도덕경 제 39장

昔之得一者 (석지득일자)- 옛날부터 하나를 얻어서 된 것들이 있다.

옛날부터 대립면의 긴장위에 서 있는 것들이 있다.

 

天得一以清 (천득일이청)- 하늘은 하나를 얻어서 맑다.

하늘이 맑은 이유는 一을 근거로 해서 하늘이 있기 때문이다.

*以 : 하늘은 하나를 얻는다 그래서(以) 맑다  , 여기서는<그래서>란 <써이>로 쓰인 것으로 보입니다

 

地得一以寧 (지득일이영)- 땅은 하나를 얻어서 안정된다.

땅은 왜 무너지지 않고 안정되어 있는가?

그것은 유무상생의 근거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대립면의 구조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도를 근거로, 일을 근거로 하기 때문이다.

 

神得一以靈 (신득일이영)- 신은 하나를 얻어서 영험하다.

 

谷得一以盈 (곡득일이영)- 계곡은 하나를 얻어서 채워진다.

 

萬物得一以生 (만물득일이생)- 만물은 하나를 얻어서 살아있다.

대립면의 긴장을 유지하기 때문에 살아있다.

 

侯王得一以為天下貞 (후왕득일이위천하정)- 통치자는 하나를 얻어서 천하를 올바르게 한다.

 

其致之 (기치지)- 경계하는 의미로 그것을 더 설명해 보자.

 

天無以清, 將恐裂 (천무이청 장공열)-

하늘이 끊임없이 청명하기만 하려고 하면 장차 무너져 내릴 것이다.

 

地無以寧,將恐發 (지무이영, 장공폐)-

땅이 끊임없이 안정을 유지하려고만 하면 장차 쪼개질 것이다.

 

神無以靈,將恐歇 (신무이영, 장공헐)-

신이 끊임없이 영험하려고만 하면 장차 사라지게 될 것이다.

* 神無以靈,將恐歇  : <신이  도(一)없이 영험하다면> 뜻으로 보입니다.

신이 도로써 영험해야하는데  그 도를 무시하고 즉 무도하여 영험해진다면 오래 못간다는 뜻은 아닌지..

여기서 <무>의 목적어인 <一>이 생략되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서 <以>는 <그래서>란 <써 이>로 쓰인 것으로 보입니다

神無(道)以靈,將恐歇: <신이 (도가) 없이 (결과를 나타내는 써 이가 나와서 앞의 말을 받아) 영험해지면  장차 시들어버릴까 우려스럽다>  라고 해석되는 듯 합니다

즉 정도를 지키지 않고 사도로써 기를 부리면 오래가지 못한다는 경고 내지는 충고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谷無以盈,將恐竭 (곡무이영, 장공갈)-

 

계곡이 끊임없이 가득 채우려고만 들면 장차 말라버릴 것이다.

 

萬物無以生,將恐滅 (만물무이생, 장공멸)-

만물이 계속 살려고만 하면 장차 소멸될 것이다.

 

侯王無以貴高將恐蹶 (후왕무이귀고, 장공궐)-

통치자가 끊임없이 고귀하고 높게만 행세하려 하면 장차 실각할 것이다.

 

이 세계는 대립면의 긴장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을 무시하고 한 방향으로 나아갈려고만 하면

모든 것은 잘못될 것이다.

 

故貴以賤為本,高以下為基 (고귀이천위본, 고이하위기)-

그러므로 고귀함은 비천함을 뿌리로 하고, 높음은 낮음을 기초로 한다.

 

是以侯王自稱孤、寡、不穀 (시이후왕자위고, 과, 불곡)- 그래서 통치자는 스스로를 일러

고, 과, 그리고 불곡 등으로 낮춰 부르는 것이다.

고孤- 어려서 부모가 없거나 늙어서 자식이 없는 외로움.

   과寡- 의지할 사람이 없음.

   불곡不穀- 곡식을 번창하게 하지 못함.

 

통치자는 정치를 잘 하려면, 이 세상이 대립면의 긴장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

반대되는 것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철저히 인식하라.

그러한 철저한 인식만이 고귀함을 유지할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의 호칭부터 낮게 하라.

 

此非以賤為本耶?非乎?(차비이천위본사, 비호?)

이것이 비천함을 근본으로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지 아니한가?

 

故致數譽無譽 (고치수여무여)- 그러므로 몇가지 명예를 지키려 하다가는, 명예 그 자체가 없어져 버릴 것이다.

 

不欲琭琭如玉, 珞珞如石 (불욕록록여옥, 락락여석)-

옥처럼 고귀해지려고 하지 말고 돌처럼 소박하라.

 

光而不曜광이불요- 빛나되 눈부시지 않는다.

和光同塵화광동진- 빛을 부드럽게 하여 티끌과 함께 한다.

대립면의 긴장에 있는 사람은 구슬처럼 하나의 빛으로 나오지 않는다.

 

하늘이 저 높은 곳에서 푸른 이유는 대립면의 긴장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땅이 튼튼한 것은 대립면의 긴장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이 세계는 대립면의 긴장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 노자의 존재론이다.

이것을 有無相生, 一, 道라고 한 것이다.

대립면의 긴장으로 되어 있는 사람은 옥처럼 빛나지 않고 돌처럼 소박하다.

 

使夫知者不敢為也 사부지자불감위야-

저 지혜롭다고 하는 자들로 하여금 감히 무엇을 하려고 하지 못하게 한다. -제3장-

똑똑하다고 하는 사람이 과감한 행동을 할 수 없는 시스템을 만들어라.

 

 

知行合一- 지식과 행동이 서로 맞아야 한다. (알면 바로 행하라.)

‘무식하면 용감하다.’

자기의 의견이 분명한 사람일수록 知적인 토대가 좁다.

자기 의견이 과감한 사람일수록 知적인 넓이가 좁다.

 

경계를 품은 사람은 과감하지 않다.

경계를 품은 사람은 확신을 함부로 갖지 않는다.

無識하다는 것은 대립면을 함께 생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랑은 이별까지를 포함한다.

사랑은 사랑대로, 이별은 이별대로 있는 것 같지만, 사실 사랑과 이별은 한 묶음이다.

대부분의 사랑은 사랑을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너무 사랑해서 깨진다.

그 어떤 것도 대립면의 긴장을 유지하지 않으면 깨진다.

 

 

「爾雅이아」-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字書(사전), 유가 13경 中의 하나.

丹穴之人 知(단혈지인 지) 「爾雅 釋地 이아 석지」 -풀다

구멍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잘 아는 사람이다.

좁은 구멍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전문가)

 

條條 秩秩 知也(조조 질질 지야) 「爾雅 釋訓 이아 석훈」 ☞條-나뭇가지 秩-차례

흐트러짐 없이 질서 정연하고 조리에 맞는 것이 잘 안다고 하는 것이다.

(知와 智는 중국 고문에서는 특히 구분이 없다.)

 

노자가 보는 智, 知는 제한적인 앎, 구분하는 앎이다.

知人者智,自知者明 지인자지, 자지자명- 타인을 아는 자를 지혜롭다 할지 모르지만,

자기를 아는 자야말로 밝은 것이다.

타인을 아는 자는 잘 안다(智)고 하고, 자신을 아는 자라야 명철(明)하다.

타인을 아는 것을 智라 하고, 자신을 아는 것을 明이라 한다.

 

타인을 알 때는 개념(이념, 관념, 가치관)으로 알지만, 자기가 자기를 안다는 것은 유무상생이 구체적으로 느껴지는

실제적인 앎이다.

 

도가에서 智는 항상 부정하고, 항상 明의 단계로 가야된다고 한다.

明- 日을 해로만 아는 것은 智이다. 月을 달로만 아는 것은 智이다.

日과 月을 함께 아는 것이 明이다.

 

사랑을 사랑으로만 아는 것은 智이다. 사랑을 이별로만 아는 것은 智이다.

사랑과 이별을 함께 아는 것이 明이다.

 

모든 개념으로 만든 것은 단일한 의미 속에 갇힌다.

하지만 이 세계는 단일한 의미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대립면의 공존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그 공존하는 대립면은 개념화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립면의 공존을 수용해야 하고, 대립면이 공존되는 긴장을 내면적으로 유지하고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樊遲問仁 者曰 愛人(번지문인 자왈 애인) 「論語 顔淵 논어 안연」

번지가 仁을 물으니 공자가 말하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問知 者曰 知人(문지 자왈 지인) 「論語 顔淵」

또 知를 물으니 공자 말하길 ‘사람을 아는 것이다.’

 

不知言 無以知人也 「論語 堯曰」 ☞堯- 요 임금

말(개념)을 알지 못하면 사람을 알 수 없다.

* 한문문법 3번에 해당하는 거 같습니다.

③ 목적 : ~을 

 

공자의 행위 원칙은 禮이다.

禮에 맞추어서 하는 행위를 해야 인간이 인간으로 계속 성숙해 간다.

이것(禮)은 반복해서 훈련해야 하는 것이다.

반복 훈련을 하려면, 저 사람이 누구인지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한다.

즉, 禮를 지키기 위해서는, 타인과 내가 무엇으로 구분되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구분의 정도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그 구분을 표시한 것이 말(개념)이다.

 

不知言- 구분된 어떤 상태를 개념화 하는 것. 그것을 모르면 사람이 아니다.

그러므로 논어에서의 知, 智는 구분된 앎이다.

 

儒家에서는 기본적으로 구분을 긍정한다.

촌수, 직책을 구분해서, 구분된 상태에서 자기의 처한 위치가 자기가 평생을 살아가는 좌표가 된다.

그 좌표에 맞는 행동을 하는 것이 禮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이 성숙해 나아간다는 것이 유가의 가르침이다.

 

노자는 구분된 앎은, 차별을 일으키는 보편적 기준을 만든다는 것이다.

이 세계는 대립면의 긴장으로 되어 있으므로, 대립면의 긴장으로 된 마음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세계와의 순조로운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기초라는 것이다.

 

 

渙兮其若환혜기약능석- 풀어져 있구나! 마치 녹아가는 얼음과 같다.

풀어지는 봄 날, 얼음이 녹는 듯 하라! -제15장-

얼음이 녹을 때는 얼음도 아니고 물도 아닌 경계가 모호하다.

경계가 모호한 것을 분명하게 하려 하지마라.

경계가 모호한 것이 세계의 실상이다.

경계의 모호함을 분명함으로 바꾸려 하지 말고, 모호한 긴장 상태를 그대로 품어라.

봄날 얼음이 풀리는 것과 같이 하라는 것은, 그것이 유무상생이기 때문이다.

 

此而者, 同出而異名, 同謂之玄, 玄之又玄, 衆妙之門.

차이자, 동출이이명, 동위지현, 현지우현, 중묘지문. -제1장-

이 둘은 같이 나와 있지만 이름을 달리하는데, 같이 있다는 그것을 현묘하다고 한다.

현묘하고도 현묘하구나.

이것이 바로 온갖 것들이 들락거리는 門이로다.

玄- 가물 현- 경계가 가물가물하다.

왜 그런가? 그것은 대립면의 공존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門은 들고 나는 경계가 교차하는 곳이다.

* 此兩者同, 出而異名, (차량자동, 출이이명)  인 것으로 해석하면

<이 둘(유와 무)은 같다, (세상에) 나와서 이름만 다르다>로 되는 거 같습니다

 

儼兮其若客 엄혜기약객- 진중하구나! 마치 손님과 같다.

단정하기는 초대받은 손님 같이 하라. -제15장-

 

본질주의적 세계관 속에서는, 본질을 가진 것은 항상 그 본질을 기반으로 해서 자기가 주인이다.

그런데 有無 대립면의 공존으로 되어 있는 세계관 속에서는 어떤 것도 주인이라고 할 것이 없다.

有는 無에 대해 손님이고 無는 有에 대해 손님이다.

이것이 유무상생의 의미이다.

 

어떤 이의 키는 크다고, 또는 작다고 할 수 없다.

볼펜에 비교하면 크고, 전봇대에 비교하면 작다.

그렇다면 내 키가 큰 이유는 볼펜에 있고, 키가 작은 이유는 전봇대에 있다.

키가 큰 상황에서도 손님이고, 키가 작다는 상황에서도 손님이다.

이 세계는 모든 것이 그렇게 이루어져 있다.

이런 대립면의 긴장으로 되어 있는 이 상태를 마음속에 품고 있는 사람은 과감하지 않다.

그 무엇에도 광신하지 않는다.

대개 광신狂信은 협소한 믿음에서 온다.

 

使夫知者不敢為也 사부지자불감위야-

저 지혜롭다고 하는 자들로 하여금 감히 무엇을 하려고 하지 못하게 한다. -제3장-

이 세계는 대립면의 긴장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어라.

그러면 그 사람은 진중해 진다.

 

자기가 가진 진실이라는 확신은 진실하지 않을 수 있다는, 내면의 배후에서 끌어당기는 힘과 함께

작동하지 않으면, 이 진실은 왕왕 狂信일 때가 많다.

자기가 진실이라는 어떤 것을, 진실이 아닐 수 있다는 내공을 작동시켜서 만들어내는 긴장이,

오히려 폭발력을 만들어 낸다.

이것이 진정한 진실의 힘이다.

그 무엇을 확신하지 않는 것은 내공에서 비롯된다.

쉽게 확신하지 않는 내공은, 대립면의 긴장을 자기 안에 품고 있는 사람에게서만 나오는 것이다.

 

 

거미줄 / 정호승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 > 중에서

 

산 잎에 거미줄을 쳐도

거미줄이 가장 아름다울 때는

거미줄에 걸린 아침 이슬이

햇살에 맑게 빛날 때다

송이송이 소나기가 매달려 있을 때다

 

산 입에 거미줄을 쳐도

거미줄이 가장 아름다울 때는

진실은 알지만 기다리고 있을 때다

진실에도 기다림이 필요하다고

진실은 기다림을 필요로 한다고

조용히 조용히 말하고 있을 때다

 

 

多言數窮,不如守中. 다언수궁, 불여수중.- 말이 많으면 자주 궁해지네. 그 곳(中)에 지키느니만 같지 못하네.

말이 많으면 금방 한계에 봉착한다. 中을 지키는 것이 제일이다.

말이 많으면 금방 궁색해진다. 그래서 中을 지키는 것만 못하다.

여기서 中은 유무상생의 중간이다. 대립면의 긴장이 서 있는 칼날 위이다.

 

배우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런데 배우는 것이 습관이 되면 평생을 배우다 죽는다.

우리가 배우는 목적은 표현하기 위함이다.

인생은 자기표현의 과정이다.

그런데 배우는 것이 습관이 되면 표현 능력이 줄어든다.

배운다는 것은 항상 나의 표현을 위한 수단이어야 한다.

 

자기를 표현하려는 내적인 충동이 점점 거세되고, 공부한 내용으로 점점 채워질수록

자기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바보가 된다.

남에게 들은 말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것을 진리로 받아들이면 받아들일수록

우리의 눈은 야수野獸의 눈빛이 사라진다.

 

공부는 나를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고, 행복한 삶을 위한 수단이다.

이것을 노자는 자율自律(내가 나를 조율하는 것)이라 하였다.

 

이념과 신념은 어느 한쪽으로서, 대립면의 긴장을 품지 못한다.

대립면의 긴장을 받아들여야 이념과 신념에서 벗어날 수 있고, 그때 드러난 자율적 주체는

무엇을 배우더라도 그것을 자기표현의 수단으로 받아들이는 긴장을 잃지 않게 된다.

그래서 태어날 때, 짐승으로 태어났듯이 죽을 때도 짐승의 눈빛으로 죽을 수 있다.

‘야수의 눈빛을 한 순간도 잃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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