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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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교포 그들은 누구인가?
남북한 정부가 조총련계 교포의 남한 고향 방문에 합의함으로써 조총련계 교포들의 남한 방문길이 활짝 열리게 되었다. 사실 '조총련', '재일교포'에 관한 이야기는 자주 화제에 오르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들이냐고 물어 보면 정확히 답변하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다.
재일교포는 누구를 지칭하는 말일까
재일교포라는 명칭은 우리나라에서만 쓰는 용어이며, 일본에서는 '자이니치 간코쿠징 · 조센징(在日韓國人 · 朝鮮人)'이라는 용어로 쓰인다. 여기서 '조센징'이란 단어에 반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을지도 모르나, 일본어로서 '조센징'이라는 말은 꼭 멸시감이 내포된 말은 아니다. 재일교포를 '간코쿠징(한국인)'으로 부르느냐 '조센징(조선인)'으로 부르느냐 하는 것은 부르는 사람 또는 불리는 사람의 국적이나 신념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한국 국적이기 때문에 '간코쿠징'이라고 불려지길 원하고, 어떤 사람은 민족 호칭으로서 '조선'이 더 알맞다고 생각해서 '죠센징'이라고 불려지기를 원한다. 그렇기 때문에 '간코쿠징'이라고 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북한을 지지한다거나 '조센징'이라고 하지 않는다고 해서 남한만을 자기 조국으로 생각한다고 쉽게 생각하면 안 된다. 결국 일본어로는 '간코쿠(한국)'든 '조센(조선)'이든 자기가 쓰고 싶은 호칭을 쓰면 되는 것이다. 교포들 사이에서는 '도호(同胞)'라는 말이 흔히 쓰이기도 한다.
재일교포 즉 '재일 한국인 · 조선인'이란 도대체 누구를 지칭하는 말인가? 일본에 오래 사는 한국인이면 누구나 교포가 되는가? 아니면 일본으로 이민을 간 사람들을 지칭해서 '교포'라고 부르는가? 그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이해되고 있는 재일교포는 '해방 전에 일본으로 건너가서 계속 일본에 사는 한국인 및 그 후손들'을 의미한다. 따라서 해방 후에 일본에 유학을 가서 그대로 거기서 취직을 한 사람은 교포가 아니라 말하자면 '체류 한국인'이 되는 셈이다. 또, 한국인이 일본인 혹은 재일교포와 결혼해서 일본에 정착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들은 '뉴커머(new comer)'라고 하며 교포와는 구별된다.
재일교포의 국적
재일교포는 한국계와 북조선계로 나뉜다. 하나는 '在日本大韓民國民團(약칭 : 민단)'이고, 또 하나는 '在日本朝鮮人總聯合會(약칭 : 총련, 한국에서는 조총련이라 부르나 정확히 총련이다)'이다. 흔히 한국 국적은 남한 사람, 조선 국적은 북한 사람이라고 이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조선 국적 교포는 전체의 27.5% 정도라고 추측되는데, 북한 출신자들은 전체 교포 중의 2%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일제시대에 한국인의 국적은 모두 일본이었으나, 45년 해방 이후 일본에 거주하는 한국인에게는 모두 '조선' 국적이 부여되었다. 이 당시만 해도 아직 한국도 북한도 정부가 수립되지 않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여기서 '조선'이란 말은 그저 '한반도(朝鮮半島) 출신자'라는 뜻밖에 없었다. '조선'이란 호칭도 일본에서 우리 민족을 지칭하는 호칭이 '조선'이기 때문에 그저 그 단어를 썼을 뿐이다. 그러다가 48년에 남북한 정부가 따로따로 들어섰고, 교포의 국적란에는 '한국'과 '조선' 두 가지가 생기게 되었다.
1965년 한일협정 발효 후, 한국은 정식적으로 국적이 인정되었으며, 한국정부가 조선적 교포들에게 한국으로 국적을 바꾸도록 요구하며 줄서기를 강요하자 교포사회의 분단이 가속화되었다. 반면, 일본은 북한과 외교를 맺지 않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가칭: 북조선)' 국적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북한 국적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 한국 국적은 '대한민국 국적'이라는 뜻이고 조선 국적은 예전과 같이 '조선반도 출신자'란 의미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조선 국적을 가진 교포는 법적으로는 무국적자가 되는 셈이다. 이 부분은 북 · 일 수교가 이루어지고 난 이후에나 해결될 문제로 보인다.
이와 같은 이유로 조총련계 동포들의 국적은 사실상 애매한 상태이다. 즉 조선 국적을 가진 사람들은 모두가 조총련계가 아니다. 조선 국적을 가진 사람의 상당수가 '총련'에 속해 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반쪽 조국을 택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교포나, 조선이라는 말에 애착을 가진 교포들 중에는 일부러 조선 국적으로 남아 있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일본정부가 한국만 국적으로 인정하는 관계로, 국적을 조선에서 한국으로 변경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한국에서 조선으로 변경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조선 국적 소유자수는 줄어들지만 결코 늘어나지는 않는다.
재일교포의 현황
한국인의 일본 이주가 시작된 것은 1910년의 한일합방 이후이다. 그후 '강제 연행'이 1930년대 말부터 본격화되어 중일전쟁이 발발한 1937년 70여 만 명이었던 재일교포가 국가 총동원법(1938년)과 징용령(1942년) 등을 거치면서 194만 명, 해방 직전에는 230만 명이 넘었던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 중 대부분은 고국으로 돌아왔고 1947년에는 생활기반을 잃은 약 53만 명이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일본에 남게 되었다.
현재 일본에는 외국인등록의 약 46%에 이르는 63만 8천 8백 여 명(1998년 일본 법무성 통계)의 재일교포가 살고 있고 이 가운데 민단계 46만 3천명(72.5%)을 제외한 17만여 명(27.5%)이 총련계로 파악되고 있다.
현 재일교포 구성원을 출신지별로 보면 경상남북도 56.5%, 제주도 17%, 전라남북도 9.9% 등으로 남한출신이 전체의 98%를 차지하고 있고 북한 출신은 2%에 불과하다.
재일교포의 30%가 오사카(大阪)에 살고 있으며 도쿄(東京), 효고(兵庫), 교토(京都), 가나가와(神奈川), 후쿠오카(福岡)에 살고 있는 교포수와 합하면 74%에 달한다고 한다.
세대별로 보면 2 · 3세대가 해마다 계속 증가해 1988년도에는 전체의 약 90%에 달해 세대교체가 거의 끝난 상태이다. 최근 20년간 일본인과 결혼한 교포 수는 1984년에 처음으로 50%를 넘어, 최근에는 60%에 달하고 있다. 이와 같이 결혼, 사업, 취직을 위해 귀화하는 교포 수가 1988년 이후 꾸준히 증가, 1995년 한 해에만 1만3천명에 달했으며, 1996년 현재 약 20만4천 여 명에 이른다.
재일교포의 일본식 이름
대부분의 재일교포는 일본식 이름을 갖고 있다. 일본식 이름은 '니혼메이(日本名)'라고 하지만 교포사회에서는 '츠메이(通名)'라고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국이름은 '혼묘(本名)'라고 한다. '츠메이'라는 명칭으로부터 알 수 있듯이 일본식 이름은 '생활의 편의상 사용하는 다른 이름'이다.
교포들이 사용하는 '츠메이'의 기원은 일제시대의 창씨개명에서 유래되었으며, 거기에는 교포들이 민족의 혼을 지키려고 애를 쓴 흔적이 역력하다. 예를 들면 김씨는 가네모토(金本), 가네미츠(金光), 가네야마(金山), 미츠야마(光山)와 같은 일본식 성을 쓰는 사람이 많다. 가네모토(金本)는 '김씨(金)가 본명(本)'이란 의미로 지은 성이고, 가네미츠(金光), 가네야마(金山), 미츠야마(光山)는 본관이 광산(光山) 김씨이다. 이씨(李氏)에는 구니모토(國本)가 많은데 이것은 '국왕(國)의 본관(本)'이란 뜻이다. 박씨(朴氏) 성은 아라이(新井)가 대다수이다. 新井라는 일본식 성을 가진 교포는 모두 밀양 박씨인데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가 우물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신라(新)의 우물(井)'이란 뜻으로 지은 성씨다. 1998년 2월 자살하여 일본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 준 自民黨 국회의원 아라이 쇼케이(新井將敬)는 일본에 귀화한 교포인데 그의 성은 아마도 박씨가 아니었을까?
일반적으로 교포의 '츠메이'에는 '가네(金)○'와 '○모토(本)'란 형식이 많다. '가네(金)○' 형식은 가네코(金子), 가네다(金田), 가네무라(金村) 등이다. 예를 들면 일본 프로야구에서 400승을 달성한 전설적인 투수 가네다 마사이치(金田正一) 씨, 또한 일본 프로야구에서 활약하다 은퇴해 최근 탤런트로 데뷔한 가네무라 요시아키(金村義明; 김의명) 씨도 그렇다. 그리고 '○모토(本)'란 형식은 가네모토(金本), 미츠모토(光本), 구니모토(國本), 야스모토(安本) 등이다. 일본 프로야구선수로 활약했던 장훈(張勳) 씨의 일본식 성도 하리모토(張本)이다. '○모토'란 성씨 중 가네모토(金本), 구니모토(國本), 하리모토(張本) 등은 일본사람의 성씨에 없다고 한다. 그러므로 그러한 성을 가진 사람은 교포가 아니면 귀화한 사람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이와 같이 나라가 해방되었는데도 교포의 이름에는 아직 해방이 찾아오지 않은 셈이다. 특히 장사나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본명으로 장사나 사업을 하면 일본인들의 차별을 받을 우려가 있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츠메이'란 형식을 사용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민단'이나 '총련'에서는 본명으로 살자는 '본명선언' 구호를 부르기도 하지만 일본사회의 민족차별을 감안한다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어린 아이들의 경우, 만약에 본명으로 일본 학교에 다니면 이름이 이상하다고 이지메(いじめ)를 당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일본식 이름으로 다니게 하는 부모들이 대부분이다.
요즘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본명선언'을 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분위기가 형성된 후로 점점 본명으로 생활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지난 97년 부산국제 영화제에서 상영된 홍형숙 감독의「본명선언」은 이들의 현실적 어려움과 결단을 표출한 작품이었다. 이름이 그 사람을 정체화(identify) 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되는 만큼, 일본이름을 본명으로 바꾼다는 것은 단지 명칭상의 변경 이상의 뜻을 가지게 된다. 자기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들에 대해서도 지금까지 알려져 있던 자기자신을 부정하고 새로 출발하는 셈이다. 그리고 자신의 민족성을 재확인하여 민족적인 정체성을 밝힌다는 것은 일본사회에 있는 한국인 차별과 당당하게 맞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나름대로 대단한 각오가 필요하기도 하다.
재일교포의 직업
재일교포는 사회적 차별 속에서 직업을 선택하는 데도 고생이 많았다. 유학시절 알게 된 재일교포 한 분은 교토(京都) 대학 경제학과, 소위 일류대학을 졸업했는 데도 취직을 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자영업(토목 건축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와 같이 재일교포의 직업 중 자영업이 특히 많은 것은 고용해 주는 일본기업이 없었기 때문에 겨우겨우 먹고 살기 위해 선택한 소규모 영세업이다. 일반적으로 일본사람들이 하지 않는 직업으로 파친코(パチンコ) 점, 불고기집(燒肉屋) 등 식당경영, 고철수집 및 판매업, 토목 건축업, 운수업 등에 종사하는 사람이 비교적으로 많다. 그밖에 가수, 배우, 운동선수, 소설가, 영화감독 등 자유업에 종사하는 교포 2세들의 활약도 눈부시다.
최근 재일교포의 취직상황은 많이 나아졌다. 70년대에 있었던 취직차별 소송이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 히타치(日立) 회사에 입사한 교포가 차별 대우를 받아 소송을 일으킨 것이다.그 후로 취직차별은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법적지위 문제에서의 차별의 완화와 더불어 직업 선택과 경제활동의 폭도 넓어지고 있다.
재일교포의 법적 지위문제
제2차 세계 대전후, 연합국의 점령 하에 놓인 일본은 무정부상태가 계속되어, 일본에 남게 된 230만 명의 교포들은 법적 보장 면에서 매우 불안한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 연합국 사령부(GHQ)는 처음에는 재일동포를 '해방국민'으로 대우하였으나, 1947년 5월에는 외국인 등록령을 발령하여 재일교포의 국적을 '외국인' 즉 '조선'으로 등록시켰다. 이어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이 발효(1952.4.28) 되자 재일교포의 법적 지위문제는 한일회담 개최의 중요한 의제의 하나로 부상하였으며 제1차∼7차에 걸친 회담을 통해서도 진전을 거의 보지 못했다.
1965년 6월 22일 국교정상화에 따라 협정서에 '대한민국 국민이 일본의 사회질서 하에서 안정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양국간의 우호증진에 기여한다'라고 하는 기본정신을 명시하였다. 그리하여 국교정상화에 따른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일본국에 거주하는 대한민국 국민의 법적 지위 및 대우에 관한 협정'을 통하여 재일교포 사회에는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협정의 제4조에는 재일 한국인의 의무교육, 생활보호, 국민건강보험 등 3항목이 명기되어 있으나, 실제로 협정체결 이후 일본국민에 대한 복지제도는 성실히 이행된 반면 재일 한국인의 법적지위 협정은 사문화하여 기본적 권익이 지켜지지 않았다. 더욱이 일본정부는 복지제도에 국적조항을 만들어 넣어 한국인에 대해서는 협정조약에 없다는 이유를 구실로 사회복지 제도도 적용대상에서 완전히 배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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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변화시키는 인터넷①』
(≫≪) 미군 희생 여중생들의 죽음을 애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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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교포 그들은 누구인가?
남북한 정부가 조총련계 교포의 남한 고향 방문에 합의함으로써 조총련계 교포들의 남한 방문길이 활짝 열리게 되었다. 사실 '조총련', '재일교포'에 관한 이야기는 자주 화제에 오르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들이냐고 물어 보면 정확히 답변하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다.
재일교포는 누구를 지칭하는 말일까
재일교포라는 명칭은 우리나라에서만 쓰는 용어이며, 일본에서는 '자이니치 간코쿠징 · 조센징(在日韓國人 · 朝鮮人)'이라는 용어로 쓰인다. 여기서 '조센징'이란 단어에 반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을지도 모르나, 일본어로서 '조센징'이라는 말은 꼭 멸시감이 내포된 말은 아니다. 재일교포를 '간코쿠징(한국인)'으로 부르느냐 '조센징(조선인)'으로 부르느냐 하는 것은 부르는 사람 또는 불리는 사람의 국적이나 신념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한국 국적이기 때문에 '간코쿠징'이라고 불려지길 원하고, 어떤 사람은 민족 호칭으로서 '조선'이 더 알맞다고 생각해서 '죠센징'이라고 불려지기를 원한다. 그렇기 때문에 '간코쿠징'이라고 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북한을 지지한다거나 '조센징'이라고 하지 않는다고 해서 남한만을 자기 조국으로 생각한다고 쉽게 생각하면 안 된다. 결국 일본어로는 '간코쿠(한국)'든 '조센(조선)'이든 자기가 쓰고 싶은 호칭을 쓰면 되는 것이다. 교포들 사이에서는 '도호(同胞)'라는 말이 흔히 쓰이기도 한다.
재일교포 즉 '재일 한국인 · 조선인'이란 도대체 누구를 지칭하는 말인가? 일본에 오래 사는 한국인이면 누구나 교포가 되는가? 아니면 일본으로 이민을 간 사람들을 지칭해서 '교포'라고 부르는가? 그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이해되고 있는 재일교포는 '해방 전에 일본으로 건너가서 계속 일본에 사는 한국인 및 그 후손들'을 의미한다. 따라서 해방 후에 일본에 유학을 가서 그대로 거기서 취직을 한 사람은 교포가 아니라 말하자면 '체류 한국인'이 되는 셈이다. 또, 한국인이 일본인 혹은 재일교포와 결혼해서 일본에 정착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들은 '뉴커머(new comer)'라고 하며 교포와는 구별된다.
재일교포의 국적
재일교포는 한국계와 북조선계로 나뉜다. 하나는 '在日本大韓民國民團(약칭 : 민단)'이고, 또 하나는 '在日本朝鮮人總聯合會(약칭 : 총련, 한국에서는 조총련이라 부르나 정확히 총련이다)'이다. 흔히 한국 국적은 남한 사람, 조선 국적은 북한 사람이라고 이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조선 국적 교포는 전체의 27.5% 정도라고 추측되는데, 북한 출신자들은 전체 교포 중의 2%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일제시대에 한국인의 국적은 모두 일본이었으나, 45년 해방 이후 일본에 거주하는 한국인에게는 모두 '조선' 국적이 부여되었다. 이 당시만 해도 아직 한국도 북한도 정부가 수립되지 않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여기서 '조선'이란 말은 그저 '한반도(朝鮮半島) 출신자'라는 뜻밖에 없었다. '조선'이란 호칭도 일본에서 우리 민족을 지칭하는 호칭이 '조선'이기 때문에 그저 그 단어를 썼을 뿐이다. 그러다가 48년에 남북한 정부가 따로따로 들어섰고, 교포의 국적란에는 '한국'과 '조선' 두 가지가 생기게 되었다.
1965년 한일협정 발효 후, 한국은 정식적으로 국적이 인정되었으며, 한국정부가 조선적 교포들에게 한국으로 국적을 바꾸도록 요구하며 줄서기를 강요하자 교포사회의 분단이 가속화되었다. 반면, 일본은 북한과 외교를 맺지 않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가칭: 북조선)' 국적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북한 국적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 한국 국적은 '대한민국 국적'이라는 뜻이고 조선 국적은 예전과 같이 '조선반도 출신자'란 의미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조선 국적을 가진 교포는 법적으로는 무국적자가 되는 셈이다. 이 부분은 북 · 일 수교가 이루어지고 난 이후에나 해결될 문제로 보인다.
이와 같은 이유로 조총련계 동포들의 국적은 사실상 애매한 상태이다. 즉 조선 국적을 가진 사람들은 모두가 조총련계가 아니다. 조선 국적을 가진 사람의 상당수가 '총련'에 속해 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반쪽 조국을 택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교포나, 조선이라는 말에 애착을 가진 교포들 중에는 일부러 조선 국적으로 남아 있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일본정부가 한국만 국적으로 인정하는 관계로, 국적을 조선에서 한국으로 변경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한국에서 조선으로 변경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조선 국적 소유자수는 줄어들지만 결코 늘어나지는 않는다.
재일교포의 현황
한국인의 일본 이주가 시작된 것은 1910년의 한일합방 이후이다. 그후 '강제 연행'이 1930년대 말부터 본격화되어 중일전쟁이 발발한 1937년 70여 만 명이었던 재일교포가 국가 총동원법(1938년)과 징용령(1942년) 등을 거치면서 194만 명, 해방 직전에는 230만 명이 넘었던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 중 대부분은 고국으로 돌아왔고 1947년에는 생활기반을 잃은 약 53만 명이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일본에 남게 되었다.
현재 일본에는 외국인등록의 약 46%에 이르는 63만 8천 8백 여 명(1998년 일본 법무성 통계)의 재일교포가 살고 있고 이 가운데 민단계 46만 3천명(72.5%)을 제외한 17만여 명(27.5%)이 총련계로 파악되고 있다.
현 재일교포 구성원을 출신지별로 보면 경상남북도 56.5%, 제주도 17%, 전라남북도 9.9% 등으로 남한출신이 전체의 98%를 차지하고 있고 북한 출신은 2%에 불과하다.
재일교포의 30%가 오사카(大阪)에 살고 있으며 도쿄(東京), 효고(兵庫), 교토(京都), 가나가와(神奈川), 후쿠오카(福岡)에 살고 있는 교포수와 합하면 74%에 달한다고 한다.
세대별로 보면 2 · 3세대가 해마다 계속 증가해 1988년도에는 전체의 약 90%에 달해 세대교체가 거의 끝난 상태이다. 최근 20년간 일본인과 결혼한 교포 수는 1984년에 처음으로 50%를 넘어, 최근에는 60%에 달하고 있다. 이와 같이 결혼, 사업, 취직을 위해 귀화하는 교포 수가 1988년 이후 꾸준히 증가, 1995년 한 해에만 1만3천명에 달했으며, 1996년 현재 약 20만4천 여 명에 이른다.
재일교포의 일본식 이름
대부분의 재일교포는 일본식 이름을 갖고 있다. 일본식 이름은 '니혼메이(日本名)'라고 하지만 교포사회에서는 '츠메이(通名)'라고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국이름은 '혼묘(本名)'라고 한다. '츠메이'라는 명칭으로부터 알 수 있듯이 일본식 이름은 '생활의 편의상 사용하는 다른 이름'이다.
교포들이 사용하는 '츠메이'의 기원은 일제시대의 창씨개명에서 유래되었으며, 거기에는 교포들이 민족의 혼을 지키려고 애를 쓴 흔적이 역력하다. 예를 들면 김씨는 가네모토(金本), 가네미츠(金光), 가네야마(金山), 미츠야마(光山)와 같은 일본식 성을 쓰는 사람이 많다. 가네모토(金本)는 '김씨(金)가 본명(本)'이란 의미로 지은 성이고, 가네미츠(金光), 가네야마(金山), 미츠야마(光山)는 본관이 광산(光山) 김씨이다. 이씨(李氏)에는 구니모토(國本)가 많은데 이것은 '국왕(國)의 본관(本)'이란 뜻이다. 박씨(朴氏) 성은 아라이(新井)가 대다수이다. 新井라는 일본식 성을 가진 교포는 모두 밀양 박씨인데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가 우물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신라(新)의 우물(井)'이란 뜻으로 지은 성씨다. 1998년 2월 자살하여 일본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 준 自民黨 국회의원 아라이 쇼케이(新井將敬)는 일본에 귀화한 교포인데 그의 성은 아마도 박씨가 아니었을까?
일반적으로 교포의 '츠메이'에는 '가네(金)○'와 '○모토(本)'란 형식이 많다. '가네(金)○' 형식은 가네코(金子), 가네다(金田), 가네무라(金村) 등이다. 예를 들면 일본 프로야구에서 400승을 달성한 전설적인 투수 가네다 마사이치(金田正一) 씨, 또한 일본 프로야구에서 활약하다 은퇴해 최근 탤런트로 데뷔한 가네무라 요시아키(金村義明; 김의명) 씨도 그렇다. 그리고 '○모토(本)'란 형식은 가네모토(金本), 미츠모토(光本), 구니모토(國本), 야스모토(安本) 등이다. 일본 프로야구선수로 활약했던 장훈(張勳) 씨의 일본식 성도 하리모토(張本)이다. '○모토'란 성씨 중 가네모토(金本), 구니모토(國本), 하리모토(張本) 등은 일본사람의 성씨에 없다고 한다. 그러므로 그러한 성을 가진 사람은 교포가 아니면 귀화한 사람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이와 같이 나라가 해방되었는데도 교포의 이름에는 아직 해방이 찾아오지 않은 셈이다. 특히 장사나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본명으로 장사나 사업을 하면 일본인들의 차별을 받을 우려가 있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츠메이'란 형식을 사용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민단'이나 '총련'에서는 본명으로 살자는 '본명선언' 구호를 부르기도 하지만 일본사회의 민족차별을 감안한다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어린 아이들의 경우, 만약에 본명으로 일본 학교에 다니면 이름이 이상하다고 이지메(いじめ)를 당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일본식 이름으로 다니게 하는 부모들이 대부분이다.
요즘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본명선언'을 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분위기가 형성된 후로 점점 본명으로 생활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지난 97년 부산국제 영화제에서 상영된 홍형숙 감독의「본명선언」은 이들의 현실적 어려움과 결단을 표출한 작품이었다. 이름이 그 사람을 정체화(identify) 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되는 만큼, 일본이름을 본명으로 바꾼다는 것은 단지 명칭상의 변경 이상의 뜻을 가지게 된다. 자기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들에 대해서도 지금까지 알려져 있던 자기자신을 부정하고 새로 출발하는 셈이다. 그리고 자신의 민족성을 재확인하여 민족적인 정체성을 밝힌다는 것은 일본사회에 있는 한국인 차별과 당당하게 맞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나름대로 대단한 각오가 필요하기도 하다.
재일교포의 직업
재일교포는 사회적 차별 속에서 직업을 선택하는 데도 고생이 많았다. 유학시절 알게 된 재일교포 한 분은 교토(京都) 대학 경제학과, 소위 일류대학을 졸업했는 데도 취직을 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자영업(토목 건축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와 같이 재일교포의 직업 중 자영업이 특히 많은 것은 고용해 주는 일본기업이 없었기 때문에 겨우겨우 먹고 살기 위해 선택한 소규모 영세업이다. 일반적으로 일본사람들이 하지 않는 직업으로 파친코(パチンコ) 점, 불고기집(燒肉屋) 등 식당경영, 고철수집 및 판매업, 토목 건축업, 운수업 등에 종사하는 사람이 비교적으로 많다. 그밖에 가수, 배우, 운동선수, 소설가, 영화감독 등 자유업에 종사하는 교포 2세들의 활약도 눈부시다.
최근 재일교포의 취직상황은 많이 나아졌다. 70년대에 있었던 취직차별 소송이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 히타치(日立) 회사에 입사한 교포가 차별 대우를 받아 소송을 일으킨 것이다.그 후로 취직차별은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법적지위 문제에서의 차별의 완화와 더불어 직업 선택과 경제활동의 폭도 넓어지고 있다.
재일교포의 법적 지위문제
제2차 세계 대전후, 연합국의 점령 하에 놓인 일본은 무정부상태가 계속되어, 일본에 남게 된 230만 명의 교포들은 법적 보장 면에서 매우 불안한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 연합국 사령부(GHQ)는 처음에는 재일동포를 '해방국민'으로 대우하였으나, 1947년 5월에는 외국인 등록령을 발령하여 재일교포의 국적을 '외국인' 즉 '조선'으로 등록시켰다. 이어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이 발효(1952.4.28) 되자 재일교포의 법적 지위문제는 한일회담 개최의 중요한 의제의 하나로 부상하였으며 제1차∼7차에 걸친 회담을 통해서도 진전을 거의 보지 못했다.
1965년 6월 22일 국교정상화에 따라 협정서에 '대한민국 국민이 일본의 사회질서 하에서 안정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양국간의 우호증진에 기여한다'라고 하는 기본정신을 명시하였다. 그리하여 국교정상화에 따른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일본국에 거주하는 대한민국 국민의 법적 지위 및 대우에 관한 협정'을 통하여 재일교포 사회에는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협정의 제4조에는 재일 한국인의 의무교육, 생활보호, 국민건강보험 등 3항목이 명기되어 있으나, 실제로 협정체결 이후 일본국민에 대한 복지제도는 성실히 이행된 반면 재일 한국인의 법적지위 협정은 사문화하여 기본적 권익이 지켜지지 않았다. 더욱이 일본정부는 복지제도에 국적조항을 만들어 넣어 한국인에 대해서는 협정조약에 없다는 이유를 구실로 사회복지 제도도 적용대상에서 완전히 배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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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군 희생 여중생들의 죽음을 애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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