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아는 분 중에 영화 황산벌에 출연하신 분이 있습니다. 주연은 물론 아닙니다만. ^^ 그래서 제가 그 분에게도 그런 얘기를 했죠. 계백 장군 등 후기 백제의 지도층들은 부여에서 살았는데, 충청도 사투리를 써야지 왜 전라도 사투리를 쓰냐고요. 그 분이 그러는데 계백 장군을 존경하는 추종자들이(아마 충청도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잖아도 왜 충청도 말을 쓰게 하지 않느냐고 영화사에 항의를 많이 했고 부여, 논산 등 충청도민들의 항의가 많았다고 합니다. 계백 장군의 성이 전해지지 않아서 그렇지 김유신 장군처럼 문중들이 많았다면 더욱 시끄러웠을 겁니다.
인터넷 각 게시판에서도 정치 얘기를 하다가 지역 감정 얘기로 끌고 가다보면 역사까지 들먹이며 "너 백제 놈이지?" "넌 신라 놈이냐?" 하는 식으로 싸우는 족속들이 많이 눈에 띕니다.
그런데 언제 전라도가 백제의 중심지였습니까? 백제의 도읍은 5백 년 동안 서울이었고(풍납토성이 거의 확실하지요.) 후기 2백년은 충남 지역이었습니다. 익산 정도가 후기 중심지인 부여에서 조금 가까웠을 뿐, 전라도의 심장부인 광주의 경우엔 백제에선 변방일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지역 갈등을 백제-신라로부터 소급시키는 것은 정말 코미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드라마 '야인 시대'를 보니까 자유당 정권 때 장면 박사의 표가 두드러지게 많이 나온 야당 표밭 도시가 인천, 대구, 광주 세 곳이었다고 하더군요. 1960년대까지도 지역 감정은 없었습니다. 60년대 선거 때만해도 박정희 대통령의 표가 전라도에서도 많이 나왔고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지역으로 정당이 양분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1971년 대선 때 패색이 짙어진 박정희 후보의 어떤 참모가 선거날 아침, 부산 등지에 지역 감정에 불을 지르는 벽보를 써붙이면서 그것이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쳤고 1971년 이후 지역 감정은 DJ를 견제하기 위해 군사 정권에 의해 조장되어 지금에 이른 것입니다.(DJ가 서울, 경기 출신이었다면 그런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무슨 백제, 신라입니까? 1987년에 후보 단일화가 되어 양김씨가 서로 힘을 합한 상태에서 번갈아가면서 대통령이 되었다면 그것으로 지역 갈등이 끝났을 텐데 두 사람의 분열은 3답 합당과 DJP연합을 불러왔고 그 결과 아직까지도 지역 갈등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지역 감정은 정치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신기루같은 거라고 봐야 합니다.
저는 많은 기대를 했던 양김씨의 분열을 보면서 이후에 정치인들에 대해 큰 기대를 갖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고 대통령이 바뀐다고 해서 세상이 달라지는 것은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정국을 보면서 신당에 대해 단 한 가지만 기대하려 합니다. 민생을 챙겨주고, 경제를 잘 해 주기를 기대하거나 높은 도덕성을 갖춘 집단이 될 거라고 기대하지 않습니다. 기대해봤자니까요.
다만,
신당으로 인해 정치판이 바뀌고 지역을 볼모로 한 정당인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소멸되어 더 이상 이 나라 국민들이 정치인들의 지역 갈등 조장의 볼모로 잡혀 있지 않기를 바라며 지역 대립이 아닌. 정책에 따라 정당을 선택하여 투표하는 그런 정치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단 한 가지 소망을 신당을 통해 가져보고자 합니다.
덧붙여 말씀드리면 훈요십조를 근거로 태조 왕건 때부터 전라도 차별이 시작되었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역사 스페셜에서도 방송되었듯이 훈요십조는 현종 때 위작되어서 전해졌을 가능성이 높으며 태조 왕건의 스승인 도선국사는 전남 영암 출신, 왕건의 목숨을 구해준 신숭겸도 전남 곡성 사람이고 혜종을 낳은 장화왕후도 역시 전남 나주 사람입니다. 왕건은 어떤 면에서는 궁예나 견훤보다 덜 순진하고 약싹빨랐기에 최후의 승자가 되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신라를 포용하여 스스로 항복하게 만들고 견훤 역시 투항하게 하여 백제를 스스로 무너지게 만든 왕건의 포용력이나 고도의 전략 등을 감안하면 훈요십조와 지역 차별을 연결시키는 것도 태조 왕건에 대한 모욕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정여립의 난과 연결시키는 사람도 있는데, 이성계 정권은 전주 이씨이며 전주에 가면 지금도 조선 왕들이 머물던 경기전, 객사 등 별궁이나 이씨 왕조의 유물, 유적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아무쪼록,
이 땅에서 지역 갈등이 사라지고 윤명철 선생님 말씀대로 우리 국민들이 그런 좁아터진 소갈머리는 만주 벌판에 가서 다 버리고 왔으면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인터넷 각 게시판에서도 정치 얘기를 하다가 지역 감정 얘기로 끌고 가다보면 역사까지 들먹이며 "너 백제 놈이지?" "넌 신라 놈이냐?" 하는 식으로 싸우는 족속들이 많이 눈에 띕니다.
그런데 언제 전라도가 백제의 중심지였습니까? 백제의 도읍은 5백 년 동안 서울이었고(풍납토성이 거의 확실하지요.) 후기 2백년은 충남 지역이었습니다. 익산 정도가 후기 중심지인 부여에서 조금 가까웠을 뿐, 전라도의 심장부인 광주의 경우엔 백제에선 변방일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지역 갈등을 백제-신라로부터 소급시키는 것은 정말 코미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드라마 '야인 시대'를 보니까 자유당 정권 때 장면 박사의 표가 두드러지게 많이 나온 야당 표밭 도시가 인천, 대구, 광주 세 곳이었다고 하더군요. 1960년대까지도 지역 감정은 없었습니다. 60년대 선거 때만해도 박정희 대통령의 표가 전라도에서도 많이 나왔고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지역으로 정당이 양분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1971년 대선 때 패색이 짙어진 박정희 후보의 어떤 참모가 선거날 아침, 부산 등지에 지역 감정에 불을 지르는 벽보를 써붙이면서 그것이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쳤고 1971년 이후 지역 감정은 DJ를 견제하기 위해 군사 정권에 의해 조장되어 지금에 이른 것입니다.(DJ가 서울, 경기 출신이었다면 그런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무슨 백제, 신라입니까? 1987년에 후보 단일화가 되어 양김씨가 서로 힘을 합한 상태에서 번갈아가면서 대통령이 되었다면 그것으로 지역 갈등이 끝났을 텐데 두 사람의 분열은 3답 합당과 DJP연합을 불러왔고 그 결과 아직까지도 지역 갈등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지역 감정은 정치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신기루같은 거라고 봐야 합니다.
저는 많은 기대를 했던 양김씨의 분열을 보면서 이후에 정치인들에 대해 큰 기대를 갖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고 대통령이 바뀐다고 해서 세상이 달라지는 것은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정국을 보면서 신당에 대해 단 한 가지만 기대하려 합니다. 민생을 챙겨주고, 경제를 잘 해 주기를 기대하거나 높은 도덕성을 갖춘 집단이 될 거라고 기대하지 않습니다. 기대해봤자니까요.
다만,
신당으로 인해 정치판이 바뀌고 지역을 볼모로 한 정당인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소멸되어 더 이상 이 나라 국민들이 정치인들의 지역 갈등 조장의 볼모로 잡혀 있지 않기를 바라며 지역 대립이 아닌. 정책에 따라 정당을 선택하여 투표하는 그런 정치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단 한 가지 소망을 신당을 통해 가져보고자 합니다.
덧붙여 말씀드리면 훈요십조를 근거로 태조 왕건 때부터 전라도 차별이 시작되었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역사 스페셜에서도 방송되었듯이 훈요십조는 현종 때 위작되어서 전해졌을 가능성이 높으며 태조 왕건의 스승인 도선국사는 전남 영암 출신, 왕건의 목숨을 구해준 신숭겸도 전남 곡성 사람이고 혜종을 낳은 장화왕후도 역시 전남 나주 사람입니다. 왕건은 어떤 면에서는 궁예나 견훤보다 덜 순진하고 약싹빨랐기에 최후의 승자가 되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신라를 포용하여 스스로 항복하게 만들고 견훤 역시 투항하게 하여 백제를 스스로 무너지게 만든 왕건의 포용력이나 고도의 전략 등을 감안하면 훈요십조와 지역 차별을 연결시키는 것도 태조 왕건에 대한 모욕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정여립의 난과 연결시키는 사람도 있는데, 이성계 정권은 전주 이씨이며 전주에 가면 지금도 조선 왕들이 머물던 경기전, 객사 등 별궁이나 이씨 왕조의 유물, 유적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아무쪼록,
이 땅에서 지역 갈등이 사라지고 윤명철 선생님 말씀대로 우리 국민들이 그런 좁아터진 소갈머리는 만주 벌판에 가서 다 버리고 왔으면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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