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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토론방

韓과 부여/예맥의 민족상의 차이점과 한국민족 국가 역사의 시작과 그 범위

작성자관찰자|작성시간03.04.14|조회수160 목록 댓글 1
韓이라고 표현한것의 근원은 일반적으로 생각하기를 한반도 남부 삼한시대에서 연원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남만주지역이나 압록강 중상류 유역에 거주한 부여/예맥이라는 민족과 삼한민족과는 어떻한 차이가 있을지?
이 두가지 부류를 동일한 민족으로 봐야 하는지? 아니면 고대에는 서로 다른 민족으로 인식해야 할지?
삼한계통 민족국가로는 신라, 백제, 가야등이 있고 예맥/부여족은 고구려가 있습니다. 백제의 왕실도 예맥/부여계이고.
삼국통일이후로 삼한민족을 중심으로 고구려 민족의 일부분은 신라로 편입되고 상당수 고구려 민족은 당으로 끌려가 흡수되었습니다.
발해가 건국되었다고는 하나 발해의 중심지는 동만주내지는 북한 함경도 지역이므로 고구려 민족의 주류지인 평양 - 압록강하류- 요동에 이르는 지역주민들은 흡수되지 못하고 고구려 민족중에서도 일부 변방호족층과 여진족 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발해의 주민구성이 여진족이 더 많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발해지역에서는 고구려민족이 원래 거주하였던 비중이 작았다는 것이되죠.

보통 한국이라는 국호를 사용하는데 통일신라 이후 통일신라지역을 그대로 이어받아서 전개된 고려 조선왕조를 거치면서 형성되었던 한국민족이라는 범위가 지금 입장에서 본다면 분명 삼한지역 한반도 남부종족을 중심으로 일부 부여예맥족을 흡수한 형태라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이미 고구려가 망할적에 태반의 고구려 민족은 중국으로 들어갔고 일부분은 신라에 흡수되고, 또다른 일부는 발해를 건국했다가 발해멸망후 고려로 내려오거나 정안국등의 별도 국가운영을 하고 그 이후에 고려로 들어오거나 여진족화가 되거나 하였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현재 한국민족국가의 범위와 그 시발기를 찾는다면 고구려 멸망후 신라영역에 들어있던 주민들을 근간으로 하고 통일신라성립기 부터 통일된 형태의 한국민족 국가가 시작되었다고도 볼수 있습니다.

사실 민족이라는 범위는 오랜세월을 지나는 동안에 그 존재와 영역이 절대로 고정불변일수는 없다고 봅니다.
이동및 정복전으로 인한 민족간 분열및 타민족과의 합병등으로 인해서 고대와 현대에 이르는 기간동안 어떤 특정 민족이 그대로 그 순수한 영역을 보전하는 경우는 거의 드물고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삼한민족과 부여족을 동일민족으로도 볼수 있다면 일본민족역시 한국과 동일한 민족국가로 취급할수도 있습니다.
일본도 엄연히 한반도에서 건너한 도래인들의 비중이 상당하기에 일본과 한국을 아예 딴민족이라고 생각하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4~6세기경에 일본민족이 한국민족에서 분파되었고 삼한족과 부여족을 동일민족군으로 볼경우 고구려멸망기에 이 두부류가 또다시 분리되어 부여족의 태반은 중국민족에 흡수되었다고 볼수 있습니다.
때에 따라서 같은 민족도 분리되었다가 또 다른 이민족과도 합병될수도 있고.

그래서 제가 주장하고 싶은것은 어느민족국가던 고대로 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절대 순수불변하게 하나의 민족국가로만 유지된것이 아니니 예를 들어서 고대때 고구려를 보고 한국민족이 강대했다느니, 만주가 상실되어서 아쉽다느니 하는 식의 집착에 얽매일 이유는 없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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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광개토대왕 | 작성시간 03.04.15 얽매이자는게 아니고 재조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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