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알지와 김수로가 같은 계열이었을 가능성인 신화 연구에 대해서는
어떻게 한 말씀도 반박을 안하시네요.
이들이 금궤짝의 알에서 태어났고 따라서 김씨라 했다는 공통점을
무시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걸 보고도 서로 다른 계열이라고 확신할 수가 있는 건가요.
신화는 역사의 산물입니다. 이 공통점을 무시하지 않는 한,
신화에 나오는 이러한 공통점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고민을 해봐야
합니다.
게다가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우리민족은 모두 난생설화라는 특징이
있어 우리민족이라는 공통점을 가지지만
특히 신라 김알지와 가야 김수로는 금궤짝의 알에서 태어났고,
금궤짝 때문에 김씨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저도 전체적인 삼국시대에 대해 자세히는 모르지만,
가야와 고구려의 전쟁이 한반도에서의 두세력 간의 패권 다툼이라고
까지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당시 백제나 신라가 약했다는 말씀이신지요?
그리고 현학계에서는 대체로 백제, 가야, 신라는 같은 한(韓)에서
갈라져 나온 무리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야가 그들 종족의 대표세력은 아니지요.
물론 고구려가 부여의 적통을 이은 국가라고 내세우기는 했습니다만,
가야는 삼한에서 나온 대표세력이 아닙니다.
오히려 마한이 강력했었지요.
님이 그때 동아시아 상황을 어떻게 판단하셨는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제가 볼때는 그정도고 그 전쟁이 두 패를 나눌 정도로
강력했던 전쟁으로는 생각지 않습니다.
그리고 고구려인이 신라에 와서 왕이 되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님이 말씀하신 관구검 이야기는
고구려인이 신라에 흡수되었다는 의미가 있지,
고구려인이 신라에 와서 왕이 되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시 한번 그 사서를 읽어보시지요. 너무 자기에 유리하게 자의적
해석을 해서는 안됩니다. 어디까지나 사실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신라김씨가 고구려왕조를 계승했던 안했던간에 신라김씨가
고구려인이었다면 그 무덤에 고구려양식이 존재해야 합니다.
님의 의견은 이런 부분에서 결정적으로 미약합니다.
제가 이렇게 반박할때 눈썹으로 근거를 제시하진 말아주십시오.
앞서 말씀드렸듯이 눈썹도 같은 종족 내에서 천차만별이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고구려는 맥족입니다. 부여는 대체로 예족으로 보는 것이
옳습니다. 이는 고구려 전문가이신 김용만선생님을 비롯하여
많은 분들도 대체로 수긍하시는 것 같은데
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신지 모르겠군요.
솔직히 신라왕이 고구려인이었다는 님의 말씀에 부여 얘기는 필요
없으니 더이상 말씀은 드리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한가지만 말씀드리죠. 고구려와 부여는 다른 종족인건
확실합니다. 당시의 유물이 결정적인 증거입니다.
그리고 신라왕이 고구려인이었다는 설이 그렇게 확신이 선다면
좀 근거를 더 제시해보세요.
저는 앞서 말씀드렸듯이 다양한 가설을 일단은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님은 타 주장에 대해서 고민해 보신적은 있으십니까.
김알지가 알영계열이라는 주장에 대해서 생각해보신적은 있으신지요.
혼자만의 확신은 역사가의 태도가 아님을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제가 신라와 가야가 그렇게도 연관이 있다고 확신하는 까닭은,
당시 신라와 가야의 신(神)은 동일했던 것으로 압니다.
일본 신화나 이들이 모시는 신의 사당에 신라신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대체로 신라신으로도 보고 가야신으로도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 사서에 가야를 신라라고 표기하고 있는데,
이를 단순한 오기로 보기 어렵습니다.
또, -말씀해두지만 전 상당한 확신이 있습니다.
아시는지 모르지만 금관가야는 흉노/몽골계열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
이부분에 대해서는 스스로도 예의가 없었음을 인정하시겠지요?
다음부터는 이런식으로 쓰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신라가 고구려계였을 가능성은 극히 희박합니다.
오히려 신라는 이후 3세기(기억은 안나지만..이때였던것 같습니다.)
즈음해서 북방계열 유물이 나타날 뿐이지요.
신라는 가야인을 왜로 표기했고, 일본은 가야를 임나, 신라로도
표기했습니다.
그리고 이말씀은 순 억지군요.
-신라는 가야인을 왜로 표현했습니다.
그럼 간단히 가야=왜=흉노란 공식이 나오지요.
신라인이 흉노면 흉노가 흉노를 왜라고 부를까요?-
님은 가야가 흉노계라고 해서 가야=흉노라고 생각하시는 모양인데...
가야나 신라나 같은 삼한, 즉 한에서 나온 종족입니다.
즉 신라김씨나 가야김씨가 흉노족이었다고 해서
이 두국가가 흉노의 분국인 것처럼 말씀하시는 것은 위험한 행위입니다.
님도 보셨겠지만 중국정사 백제전에 "백제의 출자"를 마한과 색리국으로
같이 쓰고 있습니다.
이 두 국가는 전혀 다른 계통의 국가입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색리국=백제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성안에 왜가 가득찯다. 신라인은 천민이 됬다.. 신라는 고구려한테 도움을 청한다"
이 말은 광개토태왕비문에서 인용하신듯 한데...
이 왜라는 정체는 아직도 학계에서 논란이 많습니다.
가야라고 어떻게 단정을 지을수 있지요?
님이 만약에 광개토태왕비문을 예로 들어 고구려와 가야가 전쟁을 했고,
가야=왜라는 주장을 하신 것이라면
님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광개토태왕비문은 논란이 매우 큽니다.
그리고 광개토태왕비문 자체가 광개토태왕의 공적을 기리는 비문이기
때문에 일부러 왜(일본)를 커다란 세력으로 적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물론 일각에서는 왜를 가야라고도 보지만, 그렇다고 가야가 고구려와
한반도에서 자웅을 겨룰 만한 나라는 아닙니다.
님의 단도직입적이고 이상한 논리는 절대 받아들일수 없습니다.
딴데가서 그런 주장을 해보세요. 누가 님의 주장을 받아들일지.
혼자 만족하고, 혼자 이상하게 논리를 펴는 주장이라면 아무도
그런 주장을 받아들여 주지 않을 것입니다.
어떻게 한 말씀도 반박을 안하시네요.
이들이 금궤짝의 알에서 태어났고 따라서 김씨라 했다는 공통점을
무시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걸 보고도 서로 다른 계열이라고 확신할 수가 있는 건가요.
신화는 역사의 산물입니다. 이 공통점을 무시하지 않는 한,
신화에 나오는 이러한 공통점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고민을 해봐야
합니다.
게다가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우리민족은 모두 난생설화라는 특징이
있어 우리민족이라는 공통점을 가지지만
특히 신라 김알지와 가야 김수로는 금궤짝의 알에서 태어났고,
금궤짝 때문에 김씨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저도 전체적인 삼국시대에 대해 자세히는 모르지만,
가야와 고구려의 전쟁이 한반도에서의 두세력 간의 패권 다툼이라고
까지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당시 백제나 신라가 약했다는 말씀이신지요?
그리고 현학계에서는 대체로 백제, 가야, 신라는 같은 한(韓)에서
갈라져 나온 무리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야가 그들 종족의 대표세력은 아니지요.
물론 고구려가 부여의 적통을 이은 국가라고 내세우기는 했습니다만,
가야는 삼한에서 나온 대표세력이 아닙니다.
오히려 마한이 강력했었지요.
님이 그때 동아시아 상황을 어떻게 판단하셨는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제가 볼때는 그정도고 그 전쟁이 두 패를 나눌 정도로
강력했던 전쟁으로는 생각지 않습니다.
그리고 고구려인이 신라에 와서 왕이 되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님이 말씀하신 관구검 이야기는
고구려인이 신라에 흡수되었다는 의미가 있지,
고구려인이 신라에 와서 왕이 되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시 한번 그 사서를 읽어보시지요. 너무 자기에 유리하게 자의적
해석을 해서는 안됩니다. 어디까지나 사실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신라김씨가 고구려왕조를 계승했던 안했던간에 신라김씨가
고구려인이었다면 그 무덤에 고구려양식이 존재해야 합니다.
님의 의견은 이런 부분에서 결정적으로 미약합니다.
제가 이렇게 반박할때 눈썹으로 근거를 제시하진 말아주십시오.
앞서 말씀드렸듯이 눈썹도 같은 종족 내에서 천차만별이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고구려는 맥족입니다. 부여는 대체로 예족으로 보는 것이
옳습니다. 이는 고구려 전문가이신 김용만선생님을 비롯하여
많은 분들도 대체로 수긍하시는 것 같은데
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신지 모르겠군요.
솔직히 신라왕이 고구려인이었다는 님의 말씀에 부여 얘기는 필요
없으니 더이상 말씀은 드리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한가지만 말씀드리죠. 고구려와 부여는 다른 종족인건
확실합니다. 당시의 유물이 결정적인 증거입니다.
그리고 신라왕이 고구려인이었다는 설이 그렇게 확신이 선다면
좀 근거를 더 제시해보세요.
저는 앞서 말씀드렸듯이 다양한 가설을 일단은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님은 타 주장에 대해서 고민해 보신적은 있으십니까.
김알지가 알영계열이라는 주장에 대해서 생각해보신적은 있으신지요.
혼자만의 확신은 역사가의 태도가 아님을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제가 신라와 가야가 그렇게도 연관이 있다고 확신하는 까닭은,
당시 신라와 가야의 신(神)은 동일했던 것으로 압니다.
일본 신화나 이들이 모시는 신의 사당에 신라신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대체로 신라신으로도 보고 가야신으로도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 사서에 가야를 신라라고 표기하고 있는데,
이를 단순한 오기로 보기 어렵습니다.
또, -말씀해두지만 전 상당한 확신이 있습니다.
아시는지 모르지만 금관가야는 흉노/몽골계열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
이부분에 대해서는 스스로도 예의가 없었음을 인정하시겠지요?
다음부터는 이런식으로 쓰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신라가 고구려계였을 가능성은 극히 희박합니다.
오히려 신라는 이후 3세기(기억은 안나지만..이때였던것 같습니다.)
즈음해서 북방계열 유물이 나타날 뿐이지요.
신라는 가야인을 왜로 표기했고, 일본은 가야를 임나, 신라로도
표기했습니다.
그리고 이말씀은 순 억지군요.
-신라는 가야인을 왜로 표현했습니다.
그럼 간단히 가야=왜=흉노란 공식이 나오지요.
신라인이 흉노면 흉노가 흉노를 왜라고 부를까요?-
님은 가야가 흉노계라고 해서 가야=흉노라고 생각하시는 모양인데...
가야나 신라나 같은 삼한, 즉 한에서 나온 종족입니다.
즉 신라김씨나 가야김씨가 흉노족이었다고 해서
이 두국가가 흉노의 분국인 것처럼 말씀하시는 것은 위험한 행위입니다.
님도 보셨겠지만 중국정사 백제전에 "백제의 출자"를 마한과 색리국으로
같이 쓰고 있습니다.
이 두 국가는 전혀 다른 계통의 국가입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색리국=백제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성안에 왜가 가득찯다. 신라인은 천민이 됬다.. 신라는 고구려한테 도움을 청한다"
이 말은 광개토태왕비문에서 인용하신듯 한데...
이 왜라는 정체는 아직도 학계에서 논란이 많습니다.
가야라고 어떻게 단정을 지을수 있지요?
님이 만약에 광개토태왕비문을 예로 들어 고구려와 가야가 전쟁을 했고,
가야=왜라는 주장을 하신 것이라면
님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광개토태왕비문은 논란이 매우 큽니다.
그리고 광개토태왕비문 자체가 광개토태왕의 공적을 기리는 비문이기
때문에 일부러 왜(일본)를 커다란 세력으로 적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물론 일각에서는 왜를 가야라고도 보지만, 그렇다고 가야가 고구려와
한반도에서 자웅을 겨룰 만한 나라는 아닙니다.
님의 단도직입적이고 이상한 논리는 절대 받아들일수 없습니다.
딴데가서 그런 주장을 해보세요. 누가 님의 주장을 받아들일지.
혼자 만족하고, 혼자 이상하게 논리를 펴는 주장이라면 아무도
그런 주장을 받아들여 주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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