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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토론방

고구려의 요서 진출에 대하여 1.

작성자김용만|작성시간03.08.13|조회수623 목록 댓글 4
고구려 요서 진출에 대하여

고구려의 서쪽 경계는 어디일까. 대체로 현재의 요하를 경계로 보고 있지만, 반드시 요하가 고구려의 서쪽 경계라고 하기에는 많은 문제가 따른다.
먼저 고구려의 면적에 관한 기록들은 여러 사서에서 찾아 볼 수가 있다.

후한서, 삼국지, 양서 : 사방 2천리
위서, 주서 : 동서 2천리, 남북 1천리
북 사 : 위나라 때에 비해 3배, 동서 2천리, 남북 1천리,
수 서 : 동서 2천리, 남북 천리
구당서 : 동서 3100리, 남북 2천리
신당서 : 요수를 건너 영주와 접함.
통 전 : 隋至漸大 동서 6천리

이 가운데 우리는 종종 위서나 수서의 동서 2천리, 남북 1천리를 기준으로 고구려의 영토를 보려고 한다.
1971년 천관우 편 <한국상고사의 쟁점>에서는 고구려의 동쪽을 책성으로 보고, 서쪽을 요하로 표시하고, 이의 근거로 동서 2천리, 남북 1천리 기록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고구려의 영역은 시기별로 변화가 있는 것이어서, 구당서의 동서 3,100리 기록이나, 통전의 동서 6천리 기록은 사방 5천리라고 한 발해의 면적보다 더 넓은 면적을 차지한 것으로 보게 한다.
신당서에는 고구려가 요수를 건너서 대릉하 주변의 영주와 국경을 접하였다고 기록되고 있으며, 특히 통전의 기록은 고구려의 영역이 커진 명확한 시점인 수나라가 등장할 무렵에 이르러 동서 6천리라고 하고 있음에도 우리 학계에게는 이에 대한 세밀한 검토를 해본 적이 없다.

재야역사가들이 고구려의 영토를 지나치게 크게 보는 것도 문제이지만, 반대로 기존 학계에서는 고구려의 영토를 축소시켜 보려는 것 또한 옳지 못하다. 고구려가 요하를 건너지 않았다면 그 곳까지 서방세력이 왔단 말인가. 흔히 역사부도에 마치 수와 당이 요서지역에 확고한 영토를 갖고 고구려를 공격한 것처럼 묘사되고 있는 것은 명확한 잘못이다.

고구려가 요하를 넘어 요서지역으로 진출한 사례는 기록들을 검토해보면 의외로 많다.

모본왕 (49년) 후한의 우북평, 어양, 상곡, 태원 공격
태조대왕 (55년) 요서에 10성을 쌓음
태조대왕 (121년) 후한을 습격. 후한의 광양, 어양, 우북평, 탁군, 요동속국의 군대가 동원된 것으로 볼 때 전쟁 무대가 요서 일대로 확전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큼.
미천왕 (319년) 모용선비의 책성을 공격
광개토대왕 (395년) 거란을 정벌. 부산을 지나 염수에 이름
광개토대왕 (402년) 후연의 숙군성 공격
광개토대왕 (404년) 후연의 연군 공격
광개토대왕 (406년) 후연의 군대를 3천리나 쫓아다님
광개토대왕 년간. 유주자사 진이 북경 일대 지배 (덕흥리 고분)
장수왕 (436년) 북연을 접수하며, 북위군과 대치
장수왕 (479년) 유연과 함께 지두우 분할
문자명왕 (502년) 북위의 변방을 공격
안장왕 (520년대) 유성을 공격하여 평주사마 한상을 잡아 옴
평원왕 (560년 무렵) 돌궐을 격파, 거란 지배력 강화
평원왕 (578년) 북주군과 맞서 승리함.
영양왕 (598년) 수나라 요서지방을 선제 공격, 요서와 발해만에서 수군 격파
영양왕 (612년) 수나라 대군 격파 후, 요서 추격
보장왕 (644년) 영주 공격, 요하 서쪽 무려라성에서 적과 대치
보장왕 (650년대) 요서 북부에서 당나라와 거란 쟁탈전. 홍산진에 고구려군 주둔

이 가운데 가장 논란이 된 것은 1979년 발견된 덕흥리고분에 등장하는 유주자사와 그의 부하 13태수에 관한 문제다. 유주자사와 낙랑, 요서, 어양, 계, 상곡 등 13태수가 다스린 지역은 현재의 북경 일대다. 고구려가 이곳을 적극 지배했다는 북한학계의 통설과 이인철의 논문이 발표된 바는 있지만, 아직 학계의 대세는 고구려가 요하를 넘어 이곳까지 진출할 수가 있었는가에 대해 회의적이다.

고구려의 요서 진출 기록이 그동안 제대로 평가되지 못했던 것은 크게 볼 때 고구려식 유물이 요서 지역에 별반 출토되지 않았다는 것과, 고구려의 요서 지역 진출 기록이 단편적이라, 극히 일시적인 진출 이상으로는 여겨지지 못했다는 점을 제시하곤 한다. 하지만 당군이 고구려를 멸망시킨 후, 주변의 여러 지역에 대한 통제력이 거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마치 실현된 것처럼 보는 것과 비교해본다면 도리어 고구려의 요서진출은 당군의 고구려 일시 거점 확보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장기간이며, 지속적이었다.

고구려의 요서 지역 지배 자료가 단편적이라고 하지만 반대로 서방 농경제국 및 북방 유목제국측이 요서 지역에 세력을 자리 잡은 것과 비교해서 살펴본다면 요서 지역 지배의 형태와 기간, 목적 등이 좀 더 분명히 드러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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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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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박혁거세 | 작성시간 03.08.13 다른 말로 해석한다면 고구려가 요서지방을 자주 공략했다는 의미로도 풀이되네여... 요서지방에 고구려 관련 유물이 쏟아져야 할터인데...
  • 작성자不死魂™ | 작성시간 03.08.19 음.....유물이...나오게하려면...발굴을 해야할텐데...중국당국에서....발굴한것을 숨겼을수도 있겠죠...
  • 작성자ZARD | 작성시간 06.09.27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퍼가겠습니다~
  • 작성자홍준민 | 작성시간 17.07.25 좋은 정보를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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