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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토론방

[불펌]고구려가 요동사라고??

작성자고어핀드|작성시간04.04.08|조회수434 목록 댓글 4
네이버 블로그의 진구자 님의 블로그에서 긁은 글입니다. 뭐 썩 잘 써진 글은 아닐지 몰라도, 읽고 한 번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

서강대 김한규교수의 "요동사" 반박!

중국고대사 전공자인 김한규 서강대 사학과 교수가 정말 "호랑이 풀 뜯어 먹는" 말같지도 않는 소리를 했더군요. 일류대학 교수님으로서의 자질이 좀 의심스럽습니다. 술한잔 하시고 글쓰셨나요?

고구려는 한국의 일부도 중국의 일부도 아니었다. 고구려는 요동(遼東)이라는 제3의 영역에서 건립된 국가로 역사에 출현했다.’
-중략-
김 교수는 책 서문에서 “고구려사는 한국사를 형성한 요소일 수도 있고 중국사를 형성한 성분일 수도 있지만 고구려가 한국임과 동시에 중국일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고구려와 한국, 또 고구려와 중국은 각각 언어와 문화가 달랐으며 동류(同類)의식도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
‘요동사’ 원고를 미리 입수해 그 핵심 주장을 정리한다.

주장> [활동 공간이 달랐다=고구려가 강성했던 4세기 초∼7세기 중엽 ‘한국’의 공간적 범주는 삼한(三韓)의 범위, 즉 한반도 중·남부에 국한돼 북쪽으로 대동강을 넘지 못했다.]

반박> =>김교수 저술 맞나요? 혹시 기자가 요점정리 잘못한 것 아닙니까?
고구려멸망 또는 발해멸망 전까지 한국사의 공간적 범주는 만주와 한반도입니다.
통일신라(후신라)를 기준으로 한국사의 범위를 한정한다는 걸 도저히 이해못하겠군요.
그럼, 고려 500년 동안의 북진정책은 침략전쟁이었나요? 세종대왕의 6진,4군 개척도 침략전쟁이었군요. 여진족의 생활터전을 치고 들어갔으니...

주장> [‘중국’의 지배영역도 중원(中原) 지역에 국한돼 동북으로는 요서(遼西) 지역을 넘지 못했다. 즉 고구려는 한국도 중국도 아닌 요동의 국가였다.
수(隋), 당(唐) 시대 중국인들은 고구려를 ‘요동’이라 불렀고 고구려 침공을 가리켜 ‘정요(征遼)’라 했다. 당시의 고구려인들도 ‘요동인’이라 자칭했다.]

반박> 수당시대 중국인들은 고구려를 "고려"라 불렀죠. 요동은 신라를 "계림" 백제를"마한"으로 부른 것처럼 일정지역의 영유권을 인정한 별칭입니다. 요동은 고구려영역의 일부입니다.
무슨 근거로 고구려인들이 "요동인"이라고 자칭했나요? 그럼 대한민국사람이 외국인에게 "난 경기도사람이요" 라고 자칭합니까?

주장> [수, 당 시대 요동은 한반도 북부 이북의 넓은 지역을 가리키는 개념이었는데 이는 고구려의 영토 범위와 거의 일치하는 것이었다. 고구려는 요동에서 출현해 평양 천도(427년) 이후에는 요동과 한반도 일부를 지배한 통합 국가였다.]

반박> 삼국사기나 제대로 읽어 보았는지 의심스럽군요.
고구려의 한반도 진출을 장수왕이전 빌어먹을 한사군이 한반도에 있었다면 미천왕시기로 거슬러올라갑니다.(낙랑국이라면 대무신왕시기)

주장> [종족과 언어가 달랐다=고구려의 주축이 된 인적 집단은 맥인(貊人)이었다. 여기에 예계(濊系)와 말갈 등이 포섭됐고, 평양 천도 이후 한계(韓系)가 포함됐다. 이 가운데 맥과 예계 및 말갈 등은 모두 요동 전역에 분포돼 있었고 한계는 한반도 중남부에 살았다. 따라서 고구려인은 중국인과는 동류의식을 가질 수 없었고, 한국인과도 천도 이전까지는 동류의식을 갖지 않았을 것이다.]

반박> 동류의식과 교류의 개념을 혼동하는 거 아닙니까? 계속 장수왕의 평양천도만을 이야기 하는데 삼국사기 좀 읽어 보시구려. 광개토대왕의 부왕인 고국양왕때 신라의 왕자가 볼모로 왔습니다. 광개토대왕때는 백제,신라는 물론 가야까지 굴복시켰습니다. 광개토대왕비문에는 백제와 신라가 오래전부터 고구려의 속국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죠. 물론 과장된 면도 있지만

주장> [천도 이전 고구려는 퉁구스 계통의 독자적 언어를 사용했고 천도 이후에야 한국어 요소가 고구려어에 혼입됐다.]

반박> 중국사서에 고구려와 백제의 언어가 같았다고 했고 장수왕 당시 고구려가 한반도의 패자였는데 강대국이 약소국의 언어를 받아들인다? 그 반대가 아니고? 내 머리론 도저히 이해가.......

주장> [‘삼국지’의 ‘동이전(東夷傳)’에는 “읍루(중국의 고대부족)의 언어는 부여나 고구려와 같지 않다”고 기록돼 고구려 부여 옥저 동예 등이 같은 언어를 사용하면서 중국과는 다른 역사공동체를 이뤘음을 시사했다.
북한 남포시 덕흥리 고분벽화에 그려진 고분의 주인공 유주자사(幽州刺史) 진(鎭)의 초상화.
‘유주’는 요동 지방이고 ‘자사’는 지방장관으로 지금의 도지사에 해당한다. 5세기 초 고구려가 요동을 지배해 지방관을 파견했음을 알 수 있다.]

반박> 유주(幽州)라고 하면 요하를 경계로 지금의 발해만을 둘러싼 요서지역을 말합니다. "유주"가 "요동"이라니 중국 고대의 영토나 제대로 알고 있어요?

주장> [역사적 경험도, 동류의식도 없었다=고구려는 중국에서 성립된 한(漢) 조위(曹魏) 서진(西晉) 북위(北魏) 북제(北齊) 수 당 등의 직접 지배를 받은 적이 없고, 삼한연맹체나 백제 신라 등 한국 국가들의 정치적 지배하에 있었던 적도 없다. 역사의식 공유가 없었다는 뜻이다.
고구려인은 부여와 관련된 건국신화를 가졌다. 또 기자신(箕子神)에게 제사함으로써 (기자)조선을 계승했다는 역사의식을 표현했고 고구려가 멸망한 뒤에는 발해인이 다시 고구려 계승의식을 표명함으로써 고조선과 부여, 고구려, 발해로 이어지는 요동사적 역사의식이 형성됐다.]

반박> 고구려인이 기자에게 제사지냈다는 것은 고구려가 본래 한사군의 땅이라고 억지부리던 수나라가 한술 더떠서 지어낸 이야기인걸 모르십니까?
기자를 제사지냈던 건 고려지 고구려가 아닙니다.

주장> [요동공동체론=요동은 역사공동체로서의 자립성이 약해 요동에서 출현해 번성한 국가는 예외 없이 중국이나 한국 등 주변지역으로 진출해 통합국가를 이뤘다. 고조선과 고구려 발해 등은 한국의 북부를 통합 지배했고 요, 금, 원, 청 등은 모두 요동을 장악한 뒤 중국의 일부 혹은 전체를 통합 지배했다.
고구려 멸망 후 그 유민과 영토의 일부가 한국이나 중국으로 편입되고, 그 문화가 한국과 중국문화의 형성에 일정한 영향을 미쳤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고구려라는 요소는 아무리 높게 평가해도 한국과 중국의 주변적 성분에 지나지 않는다.]

반박> 고구려문화가 우리민족문화의 원류가 아닌가요? 모르시면 좀더 연구하시던가.그딴 말도 안되는 결론내리시지 말구.

통일신라의 민족구성에 대해 지금까지의 통설에 강한 의문을 제기합니다.
고구려멸망후 통일신라 신문왕7년에 완성된 9서당을 보면 9개의 서당 중 녹금·자금·비금서당은 신라인으로, 황금·벽금·적금서당은 고구려인(안승의 보덕국 포함)으로, 백금·청금 서당은 백제인으로, 흑금서당은 말갈인으로 편성되었죠.
특수부대도 아닌 신라중앙군의 편제가 이랬다면 그 당시 통일신라의 인구를 추정해보면 신라인과 고구려인의 비율은 3:3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흥미로운건 말갈인군단이 9서당에 포함되었다는 건데 삼국사기에 통일전쟁시 말갈인의 내투기록이 적음에도 하나의 군단이 생겨날 정도로 말갈유민이 많았다는 증거죠.
말갈족의 주거주지가 만주지역이므로 그지역의 고구려인들도 같이 따라 왔을 겁니다.
삼국사기의 고구려인 내투는 연정토의 고구려 남부지역 13개성 주민, 안승의 고구려인 5천여호 등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으나 전쟁시에 제대로 집계가 됬겠습니까? 신문왕7년이면 통일신라의 안정기로 고구려,백제유민의 내투가 끝난 것으로 보입니다. 아무튼 통일신라 9서당을 비롯 고구려유민에 대해 연구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김교수님! 중국고대사 전공하셨다고 고구려사를 남의나라 역사보듯이 하시면 안됩니다.
지금 제머리속엔 북한 박시형박사가 중국학자들에게 한말이 떠오릅니다.
"영토가 변했다고 역사가 변하느냐?"

(출처: 하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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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백듀산텬디 | 작성시간 04.04.09 김교수님께 한마디, "즐!" (게임상 용어로)
  • 작성자백성 | 작성시간 04.04.12 우리나라 역사교과서가 삼국사기대로나 되어있나요! 국사 전공 학자들도 삼국사기 제대로 안 읽고 국사 교과서 편찬하는데 하물며, 동양사 전공교수야 뭐하려고 삼국사기를 읽겠어요??
  • 작성자천재이루♡ | 작성시간 04.04.13 머냐. 김교수 이사람 진짜 사학과 교수 맞아? 이런사람은 사학과 교수할 자격없다. -_-!
  • 작성자박혁거세 | 작성시간 04.04.14 한중관계사 책 쓰신분도 김 교수님이시죠... 흠... 아무리 역사가 해석학이라고 하지만... 고구려가 요동사라 중국만 좋아라 할 일이죠. 고구려는 한국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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