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서기 원전의 판본 문제입니다.
내가 "그 많던 수레는 다 어디로 갔을까"(인물로 보는 고구려사가 아님)의 부록으로 작성한 고구려 인명사전에서 나온 석간, 부간, 아간, 환부는 전용신 선생의 완역 일본서기를 기준으로 작성했습니다. 그분은 흑판승미가 편찬한 훈독일본서기(1914) 암파문고본 등 여러 판본을 저본으로 하여 번역했고, 따라서 한국에서는 그래도 일본서기의 원문에 가장 충실한 판본을 사용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것 외에 가락국사적개발연구원에서 펴낸 일본육국사 한국관계기사 역주본은 암파서점에서 출간한 일본고전문학대계본을 저본으로 하였는데, 전용신 선생의 것과 거의 대부분 유사합니다.
석간, 부간, 환부는 내가 인용한 것이 모두 맞습니다. 다만 아간(干)의 경우는 아우(于)으로 나오는데, 앞의 석간, 부간 등으로 볼 때 간이라고 한 것이 더 사실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합니다. 한자의 경우 옮겨 적는 과정에서 비침 등은 종종 착오가 생기기고 하니까요.
내가 자료실에 올려논 것은 몇년전 일본사이트에서 올라온 자료를 인용한 것인데, 이것은 아무래도 세밀한 부분에 있어서는 착오가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수레책"의 인명대로 쓰는 것이 더 낳을 것입니다.
그리고 687년 기록에서 하부 조유 괘루모절, 또는 하부 조유괘루의 모절 이란 번역과 하부 조유와 괘루 모절 이란 해석의 문제에 있어서는 여러 견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괘루라는 말이 곧 고구려의 계루부를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즉 하부는 남부를 의미하지만, 괘루는 중부(괘루가 왕실을 배출한 부족이기에)를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전용신의 번역은 하부 조유괘루 모절 이라고 했고, 일본육국사 한국관계기사 역주본이 경우는 하부 조유 괘루모절 이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도 조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의 경우는 괘루를 하나의 부로 보고 해석을 한 것입니다. 조유라는 것이 관직으로 보기에는 전혀 유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일본서기에 사신들의 이름을 소개하는 방식이 꼭 정해진 방식만(부명, 관직명, 인명의 순)으로 된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676년의 기록에는 대형 부간, 대형 다무 라고 하여 부명이 빠져있습니다.
또 666년 기록에는 전부 능루 라고 하여 관직명이 빠진체 부명과 인명만이 등장합니다.
즉 내가 해석한 괘루 모절 이란 형식과 같은 예도 있는 것입니다.
자, 이 정도 설명이면 충분하겠지요.
내가 "그 많던 수레는 다 어디로 갔을까"(인물로 보는 고구려사가 아님)의 부록으로 작성한 고구려 인명사전에서 나온 석간, 부간, 아간, 환부는 전용신 선생의 완역 일본서기를 기준으로 작성했습니다. 그분은 흑판승미가 편찬한 훈독일본서기(1914) 암파문고본 등 여러 판본을 저본으로 하여 번역했고, 따라서 한국에서는 그래도 일본서기의 원문에 가장 충실한 판본을 사용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것 외에 가락국사적개발연구원에서 펴낸 일본육국사 한국관계기사 역주본은 암파서점에서 출간한 일본고전문학대계본을 저본으로 하였는데, 전용신 선생의 것과 거의 대부분 유사합니다.
석간, 부간, 환부는 내가 인용한 것이 모두 맞습니다. 다만 아간(干)의 경우는 아우(于)으로 나오는데, 앞의 석간, 부간 등으로 볼 때 간이라고 한 것이 더 사실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합니다. 한자의 경우 옮겨 적는 과정에서 비침 등은 종종 착오가 생기기고 하니까요.
내가 자료실에 올려논 것은 몇년전 일본사이트에서 올라온 자료를 인용한 것인데, 이것은 아무래도 세밀한 부분에 있어서는 착오가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수레책"의 인명대로 쓰는 것이 더 낳을 것입니다.
그리고 687년 기록에서 하부 조유 괘루모절, 또는 하부 조유괘루의 모절 이란 번역과 하부 조유와 괘루 모절 이란 해석의 문제에 있어서는 여러 견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괘루라는 말이 곧 고구려의 계루부를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즉 하부는 남부를 의미하지만, 괘루는 중부(괘루가 왕실을 배출한 부족이기에)를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전용신의 번역은 하부 조유괘루 모절 이라고 했고, 일본육국사 한국관계기사 역주본이 경우는 하부 조유 괘루모절 이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도 조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의 경우는 괘루를 하나의 부로 보고 해석을 한 것입니다. 조유라는 것이 관직으로 보기에는 전혀 유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일본서기에 사신들의 이름을 소개하는 방식이 꼭 정해진 방식만(부명, 관직명, 인명의 순)으로 된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676년의 기록에는 대형 부간, 대형 다무 라고 하여 부명이 빠져있습니다.
또 666년 기록에는 전부 능루 라고 하여 관직명이 빠진체 부명과 인명만이 등장합니다.
즉 내가 해석한 괘루 모절 이란 형식과 같은 예도 있는 것입니다.
자, 이 정도 설명이면 충분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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