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고수전쟁, 즉 대업황제(양제)의 1차 침입때 제가 알기로는 132만이라는 전무후무한(이후로 당,송,명,청에서도 이만한 대군을 동원해본적 없는 엄청난)숫자의 군사로 위풍당당하게 고구려를 침공했다가 백삼십이만대군이라는 어마어마한 대군을 요동성 한곳에 몰아넣고는 다른 성을 치지도 않고 무식하게 계속 요동성만 때리다가 함락안되니까 삼십만 군사를 뽑아 장안 치러 갔다가 살수에서 전멸당해 몇천명만 살아돌아오자 이에 놀란 대업황제가 후퇴한 걸로 아는데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 안되는게 있습니다. 우선 백삼십이만이라는 숫자를 요동성 하나에 몰아넣을 정도로 대업황제가 바보가 아닌이상(어쩌면 정말 바보일지도...) 다른 성들을 같이 치는게 정상인데 기록이 안된 건가요? 아니면 저만 모르는건가요? 그리고 비록 살수에서 전멸당한게 최정예부대라고 해도 심혈을 기울여 수년간 준비해왔던 원정인만큼 나머지 백만도 훈련 잘된 정예부대일텐데 고작 삼십만이 죽었다고 그냥 퇴각해버리는건 이해가 안되네요. 이미 수군의 나머지 백만도 큰 타격을 입어 거의 전멸상황이 아닌 이상 말이죠. 퇴각을 쉽게 한걸로 보면 후방이 안전했다는 거고 후방이 안전했다는 건 보급로가 끊기지도 않았다는 건데... 제 지식이 깊지 못해서 이정도밖에 못 쓰지만 자세한 답변좀 해주세요.
-> 612년 2차 고수전쟁때 동원된 수나라 군대는 113만 8천명으로 기록되어 있지요. 또 전투병 외에 많은 숫자의 보급병이 있어서 자칭 2백만이라 하여, 3백만까지 보는 경우도 있지요.
어쨌든 무식하게 요동성만 때렸다고 하는데, 그것은 아닙니다.
요동성 전투 외에도 요하 전투가 있었지요. 이때 고구려군이 수나라 1군 사령관 맥철장을 화살을 쏘아 죽이지요.
또 잘 알려진 평양성 전투에서 수나라 해군(래호아)과 고구려 군(고건무)가 싸워서 고구려가 승리를 거두지요.
기록이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요동성 전투와 살수 대첩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이 출전할 때 개모도, 부여도, 남소도 이런 이름을 각군 이름으로 사용하는데, 이것은 처음부터 이 방면으로 출격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따라서 요동성 주변 지역도 수나라 군대의 목표가 된 것은 사실이지요. 하지만 그런 곳에서의 전투가 그 다지 크지 않았고, 수나라 입장에서 볼 때 별다른 전과가 없었기에 기록이 되지 않았을 뿐이지요.
수나라가 요동성에서 계속 머물 수 밖에 없던 것도 다른 곳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수나라 30만 별동대와 관련된 전투가 여러 곳에서 벌어지지요. 살수에서만 전투가 벌어진 곳이 아닙니다. 즉 고구려군이 요동성과 평양성, 을지문덕의 군대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고구려군은 오골성 주변에서 수나라 치중군(장비를 다룬느 부대)를 공격하기도 하고, 백석산에서 수나라 설세웅 군과 싸우기도 하지요.
삼국사기나, 25사 동이전류 정도의 널리 알려진 자료만으로는 고-수 전쟁의 전체를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많은 문헌들을 뒤지면 더 상세한 내용이 있습니다.
수나라가 요동성에서 왜 질질 전쟁을 끌었는지도 여러 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수양제가 가진 비효율적으로 명령을 내렸는지도 이유가 있지요. 이런 여러 문제들에 대해서는 현재까지는 우리나라 책에서는 국방전사편찬위원회에서 나온 고구려-수,당 전쟁 연구 책이 가장 자세한 편이나, 몇가지 점에서 큰 결함을 안고 있지요.
나는 이 부분을 연개소문전의 후속 연구과제로 삼고 있으나, 아직 본격적인 집필에는 들어가지 못한 상태입니다. 앞으로 더 연구되어야 할 주제들입니다. 정도만 쓰지요.
-> 612년 2차 고수전쟁때 동원된 수나라 군대는 113만 8천명으로 기록되어 있지요. 또 전투병 외에 많은 숫자의 보급병이 있어서 자칭 2백만이라 하여, 3백만까지 보는 경우도 있지요.
어쨌든 무식하게 요동성만 때렸다고 하는데, 그것은 아닙니다.
요동성 전투 외에도 요하 전투가 있었지요. 이때 고구려군이 수나라 1군 사령관 맥철장을 화살을 쏘아 죽이지요.
또 잘 알려진 평양성 전투에서 수나라 해군(래호아)과 고구려 군(고건무)가 싸워서 고구려가 승리를 거두지요.
기록이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요동성 전투와 살수 대첩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이 출전할 때 개모도, 부여도, 남소도 이런 이름을 각군 이름으로 사용하는데, 이것은 처음부터 이 방면으로 출격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따라서 요동성 주변 지역도 수나라 군대의 목표가 된 것은 사실이지요. 하지만 그런 곳에서의 전투가 그 다지 크지 않았고, 수나라 입장에서 볼 때 별다른 전과가 없었기에 기록이 되지 않았을 뿐이지요.
수나라가 요동성에서 계속 머물 수 밖에 없던 것도 다른 곳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수나라 30만 별동대와 관련된 전투가 여러 곳에서 벌어지지요. 살수에서만 전투가 벌어진 곳이 아닙니다. 즉 고구려군이 요동성과 평양성, 을지문덕의 군대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고구려군은 오골성 주변에서 수나라 치중군(장비를 다룬느 부대)를 공격하기도 하고, 백석산에서 수나라 설세웅 군과 싸우기도 하지요.
삼국사기나, 25사 동이전류 정도의 널리 알려진 자료만으로는 고-수 전쟁의 전체를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많은 문헌들을 뒤지면 더 상세한 내용이 있습니다.
수나라가 요동성에서 왜 질질 전쟁을 끌었는지도 여러 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수양제가 가진 비효율적으로 명령을 내렸는지도 이유가 있지요. 이런 여러 문제들에 대해서는 현재까지는 우리나라 책에서는 국방전사편찬위원회에서 나온 고구려-수,당 전쟁 연구 책이 가장 자세한 편이나, 몇가지 점에서 큰 결함을 안고 있지요.
나는 이 부분을 연개소문전의 후속 연구과제로 삼고 있으나, 아직 본격적인 집필에는 들어가지 못한 상태입니다. 앞으로 더 연구되어야 할 주제들입니다. 정도만 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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