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900년인가 700년인가?
과연 700년이라고 단정할수 있는가?
900년의 학설의 무게
1.당서와 삼국사기에는 가언충이 당태종 앞에서 <고려 비기>를 언급
하며 고구려가 900년이 되는 시기에 멸망한다는 도참설적 내용을 담고 있다.
고려 비기라는 자체는 다분히 도참적이고 비미신적이고 그것을 포커스로 말하면서
900년은 허구다라는 식은 좀 더 깊은 고찰이 없는 시각이다.
당시대 이후 만들어진 사서들이 고구려를 얼마나 비하하는
춘추필법이 성행했는지 여러 곳에서 발견되는 상황에서 감히 황제 앞에서 남의
나라 역사를 200년이나 늘려 잡아서 더 좋은 식으로 말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분명히 그 나름대로의 그 곳의 분위기와 그들 당의 입장에서 맞는 근거가 있었기
때문에 900년설을 신하가 황제 앞에서 꺼집어 내고 그 당시의 전쟁상황에서 그만큼 당에서는
도참설이라는 미신적 의지를 갈구 하면서 까지 고구려를 멸하고자 한 부분들의
이면을 볼수 있어야 한다.
2. 두번째는 금문..즉 그 역사적 가치가 높은 고고학적 근거인 호태왕비문에
그 진실의 무게가 들어 있다.
동명성왕 이후 광개토 태왕까지 17세 손이라고 새겨져 있다.
광개토 대왕까지 고구려는 19대다
그럼 대와 세는 무슨 차이가 있는가
고구려는 부자의 세습 뿐 아니라 형제간의 세습이다 몇대 이후의 위대 형제의
왕위세습이 나타나고 있다.
즉 형제간의 세습이 예를 들어 두명이라도 대로는 2대이나 1세대가 되고
3명의 같은 항렬 형제의 세습은 3대이나 1세가 된다.
고구려는 광개토대왕까지 쌍으로 12대즉 6세대가 형제 세습의 왕위다.
즉 다시 말하며 대로는 12대이지만 17세손의 전체에서 보면 6대의 시간이
빠져 있다는 뜻이다.
3. 삼국사기 신라 본기 문무왕10년의 기록에
멸망한 고구려 왕손인 고안승에게 문무왕이 고구려왕으로 봉하는 직서에서
900년 보다는 짧지만 800년이라는 기록의 연대가 전한다.
4.고구려현
한서지리지는 기원 108년 현도군의 고구려현을 말하면 고구려가 있었다는 기록이 전한다.
물론 후에 후한서에서는 <한무제가 조선을 멸하고 이로서 고구려를 현으로 하였다>
기록이 또 후대에 나온다.
이것은 사기의 조선열전과 이후 한서 삼국지 위지 동이전과 후한서 동이전의
흐름속에서 역사를 보아야 한다.
사기 조선열전에서는 위만 조선만을 언급하고 있지만
한서와 이후 구체적으로 열국으로 위만조선과 더불어 고구려와 선비.부여, 읍루, 예
삼한, 왜등을 기록하며 한무제 전후의 상황을 후대에 더욱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후한서에서는 고구려현이라는 기록이 다시 나온다.
고구려가 계속 존재했으니 멸망시켰다는 해석는 맞지 않다.
고구려의 일부 지역을 빼앗아서 이후 고구려 현을 두었다는 식이 될것이다.
좀더 들어가면
기존의 우리는 고조선 자체를 무시하며 그 유물적 부분에서도 제대로 해석하려
들지도 사기 내용도 고찰하려 하지 않고 있다. 그러다 보니
삼국시대를 고대 왕국의 시작점으로 삼고 고구려는 당연히 부족 형태에서 나왔다는식이다.
- 이와 연계하여 남한의 세력은 약하다 이후 임나 일본부설의 일제적 발상과 연결된
선 역사의 해석 흐름이다-
그러나 현재 한반도안에서만도 나정유물이나풍납 토성은 기원전에 이미 강력한
정치 체계가 있음을 말한다.
서병국 교수는 기존의 5부족을 부족이 아닌 소국으로 보는 학설은 이런점에서
더욱 타당하며 기타 나오는 연나부소노부..등의 명칭에서도 이것은 나라를 지칭하는
예로 신라와 비교하고 있다.
삼국사기 주몽의 건국신화와 백제 기록을 보더라도 주몽의 초기의 모습이
기존의 세력을 흡수하거나 의지해서 성장했음에 무게가 가진다.
즉 소국적 여러 집합적 형태의 고구려가 있다가 이후 주몽에 의해 더욱 성장한 형태로 설명하며
이런 주장이 점점 설득을 더하고 있다.
이런 전반적 학설을 볼때 과연 700년이라고 단정할수 있는지
다같이 함 생각해 봅시다.
과연 700년이라고 단정할수 있는가?
900년의 학설의 무게
1.당서와 삼국사기에는 가언충이 당태종 앞에서 <고려 비기>를 언급
하며 고구려가 900년이 되는 시기에 멸망한다는 도참설적 내용을 담고 있다.
고려 비기라는 자체는 다분히 도참적이고 비미신적이고 그것을 포커스로 말하면서
900년은 허구다라는 식은 좀 더 깊은 고찰이 없는 시각이다.
당시대 이후 만들어진 사서들이 고구려를 얼마나 비하하는
춘추필법이 성행했는지 여러 곳에서 발견되는 상황에서 감히 황제 앞에서 남의
나라 역사를 200년이나 늘려 잡아서 더 좋은 식으로 말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분명히 그 나름대로의 그 곳의 분위기와 그들 당의 입장에서 맞는 근거가 있었기
때문에 900년설을 신하가 황제 앞에서 꺼집어 내고 그 당시의 전쟁상황에서 그만큼 당에서는
도참설이라는 미신적 의지를 갈구 하면서 까지 고구려를 멸하고자 한 부분들의
이면을 볼수 있어야 한다.
2. 두번째는 금문..즉 그 역사적 가치가 높은 고고학적 근거인 호태왕비문에
그 진실의 무게가 들어 있다.
동명성왕 이후 광개토 태왕까지 17세 손이라고 새겨져 있다.
광개토 대왕까지 고구려는 19대다
그럼 대와 세는 무슨 차이가 있는가
고구려는 부자의 세습 뿐 아니라 형제간의 세습이다 몇대 이후의 위대 형제의
왕위세습이 나타나고 있다.
즉 형제간의 세습이 예를 들어 두명이라도 대로는 2대이나 1세대가 되고
3명의 같은 항렬 형제의 세습은 3대이나 1세가 된다.
고구려는 광개토대왕까지 쌍으로 12대즉 6세대가 형제 세습의 왕위다.
즉 다시 말하며 대로는 12대이지만 17세손의 전체에서 보면 6대의 시간이
빠져 있다는 뜻이다.
3. 삼국사기 신라 본기 문무왕10년의 기록에
멸망한 고구려 왕손인 고안승에게 문무왕이 고구려왕으로 봉하는 직서에서
900년 보다는 짧지만 800년이라는 기록의 연대가 전한다.
4.고구려현
한서지리지는 기원 108년 현도군의 고구려현을 말하면 고구려가 있었다는 기록이 전한다.
물론 후에 후한서에서는 <한무제가 조선을 멸하고 이로서 고구려를 현으로 하였다>
기록이 또 후대에 나온다.
이것은 사기의 조선열전과 이후 한서 삼국지 위지 동이전과 후한서 동이전의
흐름속에서 역사를 보아야 한다.
사기 조선열전에서는 위만 조선만을 언급하고 있지만
한서와 이후 구체적으로 열국으로 위만조선과 더불어 고구려와 선비.부여, 읍루, 예
삼한, 왜등을 기록하며 한무제 전후의 상황을 후대에 더욱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후한서에서는 고구려현이라는 기록이 다시 나온다.
고구려가 계속 존재했으니 멸망시켰다는 해석는 맞지 않다.
고구려의 일부 지역을 빼앗아서 이후 고구려 현을 두었다는 식이 될것이다.
좀더 들어가면
기존의 우리는 고조선 자체를 무시하며 그 유물적 부분에서도 제대로 해석하려
들지도 사기 내용도 고찰하려 하지 않고 있다. 그러다 보니
삼국시대를 고대 왕국의 시작점으로 삼고 고구려는 당연히 부족 형태에서 나왔다는식이다.
- 이와 연계하여 남한의 세력은 약하다 이후 임나 일본부설의 일제적 발상과 연결된
선 역사의 해석 흐름이다-
그러나 현재 한반도안에서만도 나정유물이나풍납 토성은 기원전에 이미 강력한
정치 체계가 있음을 말한다.
서병국 교수는 기존의 5부족을 부족이 아닌 소국으로 보는 학설은 이런점에서
더욱 타당하며 기타 나오는 연나부소노부..등의 명칭에서도 이것은 나라를 지칭하는
예로 신라와 비교하고 있다.
삼국사기 주몽의 건국신화와 백제 기록을 보더라도 주몽의 초기의 모습이
기존의 세력을 흡수하거나 의지해서 성장했음에 무게가 가진다.
즉 소국적 여러 집합적 형태의 고구려가 있다가 이후 주몽에 의해 더욱 성장한 형태로 설명하며
이런 주장이 점점 설득을 더하고 있다.
이런 전반적 학설을 볼때 과연 700년이라고 단정할수 있는지
다같이 함 생각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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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밀우 작성시간 06.01.09 공감이 가는 부분도 있지만 고구려현에 대한 이야기 같은 경우, 본래 고구려라는 지명이 있을 수도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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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광개토경평안호태왕 작성시간 06.01.09 고구려족이라고 일컫어서 말할수 있겠는데.. 고구려족은 기원전 75년에 현도군을 몰아낸 예맥 세력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고구려현이라는 지명이 있다고 해서 고구려의 역사를 앞당기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요.. 아직 확실한 증거가 제시되지 못한 상황이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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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조 작성시간 06.01.10 신라는 부족국가 사로국 시절부터 역사가 시작되는데 주류인 주몽계가 남하하기 전 고구려의 전신인 구려국은 역사에서 빠졌습니다. 구려국 시절만 넣어도 900년은 될 듯 합니다. 고구려와 같은 잦대를 적용하면 신라사는 주류인 경주김씨가 집권한 시기부터 잡아야 합니다. 200년은 바로 기준의 문제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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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고스트 작성시간 09.06.14 고자의 비에 보면 고구려가 707년 존속했다고 나옵니다. 그러니 삼국사기 705년존재와 흡사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