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태왕비에는 추모왕을 유류왕이 잇고, 대주류왕이 그 뒤를 이었는데..
삼국사기에는 주몽왕, 유리왕, 대무신왕입니다.
삼구사기에도 '유리'가, 유류, 주류로 불렸고, 주몽도 추모라고도 불렸으니, 이해가 갑니다.
그런데 대주류왕은 대무신왕과 통하질 않습니다.
그리고 유리가 주류로 불린다고 했던것을 떠올린다면, 뭔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이것이 왜 그런걸까요?
삼국사기에는 주몽왕, 유리왕, 대무신왕입니다.
삼구사기에도 '유리'가, 유류, 주류로 불렸고, 주몽도 추모라고도 불렸으니, 이해가 갑니다.
그런데 대주류왕은 대무신왕과 통하질 않습니다.
그리고 유리가 주류로 불린다고 했던것을 떠올린다면, 뭔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이것이 왜 그런걸까요?
다음검색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광개토경평안호태왕 작성시간 06.02.02 아마도 漢化하는 과정에서 글자들이 달라졌다고 생각합니다.. 당시에 있었던 말들을 한화시키는 과정에서 각자의 해석에 따라 표기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
작성자신농 작성시간 06.02.03 제가 기억하기로는 어떤 기록에 대무신왕이 대해주류왕으로 기록되어 있기도 한 것으로 압니다. 그래서 유리명왕~모본왕까지를 해(解)씨라고 말하는 것이지요. 이전에 올라온 글들을 종합해서 생각해보면, 해씨->고씨로의 왕조교체는 계루부 내부에서의 변화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