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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토론방

[스크랩] 담징(曇徵)과 아미타정토도(阿彌陀淨土圖)

작성자麗輝|작성시간06.06.24|조회수633 목록 댓글 2

『日本書紀』권22卷「推古天皇」18年(610).

 

春三月 高麗王貢上僧曇徵. 法定. 曇徵知五經. 且能作彩色及紙墨. 幷造□□. 盖造□□始于是時歟.

 

『일본서기』를 보면 다음과 같은 문구가 있다. 해석하자면 '고구려왕이 승려 담징과 법정을 보내왔다. 담징은 오경을 알고 있었다. 또 채색 및 지묵을 만들고 아울러 수력의 맷돌을 만들었다. 아마 수력의 맷돌을 만드는 것은 이때가 처음인가'라는 뜻이다. 당시의 고구려왕은 영양태왕으로서 610년은 태왕 21년째 되는 해이다. 이때 고구려에서 담징과 법정이라는 스님이 일본으로 건너가 불교 경전과 종이 제작 기법 및 맷돌 만드는 법을 알려주고 왔다고 적고 있다. 아마도 고구려가 수의 침입에 대비해 천하관 내의 모든 세력들에 대해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싶다. 실제로 우리가 알고 있는 담징과 호류지 금당벽화에 관한 일화 역시 수나라의 고구려 침입과 연관이 있으니 우연치고는 묘하다 할 수 있겠다.

 


 

위의 그림은 너무나도 유명한 호류지[法隆寺]의 <아미타정토도>라는 그림이다. 현재 담징이 그렸다고 전하고 있는데 위에서 살펴봤듯이『일본서기』에 기록된 담징의 행적이라곤, 경전과 제지기법, 멧돌 제작기법을 전수해준 것 이외에는 남아있지 않고 있다. 이때의 기록이 일본에 있어서의 종이의 제조에 대한 최초의 문헌기록이기 때문에 담징과 관련된 이 기록은 굉장히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으며, 또한 현재 일본에서 담징은 종이제작의 신으로 추앙받고 있다고 한다.

 

왜 갑자기 담징과 호류지의 아미타정토도를 언급했냐 하면, 이번 학기 '미술사연습'이라는 수업 시간에 이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갑자기, 고정관념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이 이야기를 꺼내셨던 것이다. 여러분들은 담징에 대해서 많이 들어보셨죠? 네! 그럼 담징에 대한 이야기가 어디서 나왔을까요? 1번 삼국사기, 2번 삼국유사, 3번 고등학교 국사책.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 질문에 술렁거리면서 1번 아니면 2번을 꼽았다. 하지만 정답은 어디에도 없었다. 선생님 하시는 말씀이 담징에 대한 기록은『쇼토쿠태자 전기』라는 문헌에 수록되어 있다고 했다. 그리고 거기에 나온 인물 역시 담징이 아니라 담휘라는 사람인데,『日本書紀』의 기록을 갖고 담징이라고 부르기 시작해 오늘날 보편화된 것이라고 했다.

 

그때 2번 삼국유사라고 생각했던 주인장이었기 때문에 선생님의 이런 말씀은 주인장에게 충격적이었다. 왜냐하면 주인장 역시 담징에 대한 이야기를 막연히 들어서 알고 있었지, 그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했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일단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능허스님의 블로그 예천 삼천선원(http://blog.naver.com/y3004k/60024349158)의『불광사전』이라는 게시판에서 담휘(曇暉)와 담징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 있었다.

 

담휘(曇暉)는 422~504년까지 생존한 인물로서 南朝梁代比丘尼. 成都人, 俗姓靑陽, 名白玉. 十一歲從西域禪師畺良耶舍諮受禪法, 便欲出家, 其母不允, 遂投於法昱尼門下, 誓不染俗. 後得刺史甄公之助, 始得遂願. 住於成都長樂寺, 有德行, 明經論, 諸名師雖極力問難, 不能屈之, 由是名聞遠近, 門徒達千餘人. 天監三年示寂, 世壽八十三라는 설명이 있었는데 보아하니 남조 양나라때의 비구니로서 우리가 생각하는 호류지의 금당벽화와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그 다음 담징도 있었는데 그는 日本推古天皇十八年至日本. 將儒敎(以五經爲主)□彩色(繪□)□紙墨之製法及農具等傳於日本. 爲日本初期文化輸入者之一이라고 쓰여있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내용과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럼 대체 위의 화려한 불화는 누가 그렸단 말인가???

 

주인장은 수업시간에 이 이야기를 듣고 와서 바로 책을 뒤져봤다.

주인장이 답으로 꼽았던『三國遺史』는 물론이고『三國史記』도 찾아봤지만 어디에도 담징에 대한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 다음에 찾아본 책은『海東高僧傳』이었다. 비록 그 안에 수록된 고승들 대부분이 상당히 후대의 인물들이긴 했지만 삼국시대 승려에 대한 기록도 꽤 있었기 때문에 찾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결과는 똑같았다. 허탈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지. 그동안 상식이라고 믿어왔던 사실이 여지없이 거짓으로 판명나는 순간, 기분이 이상했다. 평생을 하나의 주제로 연구해온 원로선생님들이 왜 자신의 주장을 약간 고집스러울 정도로 주장하는지 알 것 같았다. 믿었던『해동고승전』에서조차 담시(曇始), 담육(曇育), 담화(曇和) 등 이름이 비슷한 승려들은 있었지만 출신지나 행적 등에 있어서 담징과는 너무나도 차이가 났다.

 

선생님도 하시는 말씀이 최근에 아는 분이 담징에 대해서 연구논문을 쓰려고 준비했기 때문에 그 분에게서 들어서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 이전까지는 선생님 역시 위에서 선생님이 내놓았던 질문과 같이 알고 있었다고 했다. 미술사학을 전공하는 선생님조차 그러할진대 일반 학부생들이야 오죽하겠는가, 싶어서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정말인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이런저런 논문 검색 싸이트를 찾아봤다. 그러다가 '학술 Database 서비스'(http://www.dbpia.co.kr)라는 싸이트에서 담징이라는 단어로 검색한 결과, 화가 홍용선의 '법륭사에 살아있는 고구려의 예술혼 담징'이라는 짤막한 글을 찾을 수가 있었다.

 

하지만 4페이지 정도 되는 이 글에서도 역시 주인장이 원하는 정보를 얻기는 힘들었다. 당시 일본에 기부미노에시[黃文畵師]와 야마시로노에시[山背畵師]라고 하는 고구려계통 화가집단이 있었다는 정보는 얻을 수 있었지만 그 이상은 없었다. 담징과 담휘, 혹은『聖德太子傳曆』과 같은 쇼토쿠태자 관련 전기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성과는 커녕, 담징과 아미타정토도에 대한 개설적인 내용을 담은 논문조차 구할 수가 없었다. 순간, 사람들이 너무나도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담징과 호류지 금당벽화가 오히려 학계에서는 별로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대상이라는 것을 알고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원문과 관련 논문을 다 찾아본 주인장은 이제 회화사 혹은 미술사 관련 개설서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역시나 결론은 마찬가지였다.『동양미술사』에서는 아예 호류지의 금당벽화를 일본 미술사를 설명하면서 언급하지 않는가 하면,『한국회화사』는 담징이 호류지 금당벽화를 그린 것을 전제조건으로 제시하고 고구려 회화와 일본 회화를 비교 언급하기까지 했다.『인물로 보는 한국 불교사』역시 마찬가지였다. 모든 책에서 담징은 누가 봐도 호류지 금당벽화를 그린 사람임에 틀림없었다. 정말 암담했다. 26년 동안 살면서 담징과 호류지 금당벽화의 관계에 대해서 그런 비밀(?)이 숨어있는지 들은 것도 놀랄만한 일인데 그런 사람이 비단 주인장만이 아니었다는 것이 주인장으로 하여금 더 놀라게 만들었다.

 

그나마 솔직한(?) 답변을 들을 수 있는 책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임혜봉 스님이 쓴『불교사 100장면』이라는 책에서 저자는 "그런데 호류지 금당벽화와 관련되어 담징에 대한 아무런 설명이 없다"고 언급하고 있어 문헌상 담징에 대한 정보가 굉장히 부족함을 시인했다. 기실, 호류지 금당벽화를 보면 삼국시대의 거의 유일한 불교회화 작품이기 때문에 사료적인 가치뿐만 아니라 예술작품으로서의 가치 또한 어마어마하다. 그리고 작품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섬세하면서도 웅장한 필체가 고구려 고분벽화와 일맥상통하는 경향이 없는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추정에 불과할 뿐이다.

 

이상이 주인장이 수업 시간에 얼핏 들은 담징에 대한 이야기를 갖고 쓴 글의 전부이다.『쇼토쿠태자 전기』라 할만한 원문을 구해보지 못한 상태에서 현재 갖고 있는 자료들만 갖고 글을 쓰다보니 분명 주인장이 빼놓고 쓰지 않은 부분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냥 간단한 주인장의 생각만 쓴 것이기 때문에 내용이 전체적으로 가벼울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가장 상식적인 내용에 대한 의문을 품으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주인장 스스로 가장 중요한 걸 잊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 짧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것들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담징에 대해서 앞으로 얼만큼의 연구성과가 더 나올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앞으로 연구성과가 더 나온다면 이제는 극히 제한적인 문헌에 의존하지 말고, 그리고 기존 학계의 연구성과를 그대로 답습하지 말고 보다 다양한 접근방법을 통해서 연구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예를 들어, 호류지 금당벽화가 1949년 화재로 인해 진본이 소실되어서 14명의 화가들이 재현해낸 모사품이긴 하지만 그 회화 기법이나 전체적인 불화의 구도 등을 구체적으로 분석하는 것도 필요할 듯 싶다. 아무래도 미술사학이라는 학문도 1차 사료인 미술품(설마 그게 전작이나 모사품이라 하더라도)을 갖고 연구하는 학문이기 때문에 문헌이라는 부차적인 자료의 도움 없이도 그 자체만으로도 연구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암튼, 짧은 시간에 짧게나마 생각한 문제였지만 주인장에게는 나름대로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 부분이었다. 차후 이 부분에 대해서는 관련 연구 성과를 구해서 한번 확인해봐야 겠지만, 비단 주인장 뿐만 아니라 앞으로 이런 당연하게 여겨지는 상식에 도전하는 연구 성과들이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램이다.

 

- 참고문헌 -

 

『三國史記』『三國遺史』『海東高僧傳』

『日本書紀』

김청강, 1998,『동양미술사』, 을유문화사.

안휘준, 2000,『한국회화사』, 일지사.

정의행, 1994,『인물로 보는 한국불교사』, 밀알.

홍용선, 2001,「법륭사에 살아있는 고구려의 예술혼 담징」『미술세계 통권』203, 미술세계.

마츠바라 사브로 編 / 김원동 외 5인 譯, 1998,『동양미술사』, 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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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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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조의선인화랑 | 작성시간 06.06.29 좋은 게시물 감사여
  • 작성자麗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6.06.29 아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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