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큰 강을 끼고 있다면 작은 강을 끼고 있는것보다는
수운을 이용한 여러 산업이나 군사적 운용법이 훨씬 더
발전되었겠지요.
일찍부터 수군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을 수도 있고요.
쓸데 없이 유명한 "적벽대전"도 강에서 치고 받은것이죠?
고구려와 백제가 전성기때 황해를 내해로 삼은거나 다름없다는것.
그 자체가 막강한 수군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고,
당과 신라가 마음대로 황해를 왔다 갔다 하는 멸망 직전의
정황은 고구려의 그 막강했던 수군이 그쯤에서 위력을
다 했다는 증거겠지요.
참고로 강유님께서 언급하신 오나라 사신의 말 이야기는
손권이 사굉(謝宏) 진순(陳恂)을 보내서 동천왕을 선우에 봉하는
기사와 함께, 동천왕이 좋은 말 수백필을 줬는데 타고 갔던 배가
작아서 80필만 싣고 돌아왔다는 그 이야기인것 같습니다.
아마도 동천왕께서 기분이 몹시 상하신 나머지
자신의 힘도 과시할 겸, 골탕도 먹일겸 해서 좋은 말
수백마리를 짐짓 보여주면서 오나라 사신을 놀리는게
숨은 내용인것 같네요.
결국 얼마 후에 오나라는 고구려에 사신을 보냈다가 목이 베이는
수모를 당하고 말지요.
사료의 원문을 달아두는것도 좋을것 같아서 三國志 吳書의
해당 기사를 찾아 올립니다.
閒 一 年 , 遣 使 者 謝 宏 、 中 書 陳 恂 拜 宮 為 單 于 ,
加 賜 衣 物 珍 寶 。 恂 等 到 安平 口 , 先 遣 校 尉 陳 奉 前 見 宮 , 而 宮 受 魏 幽 州 刺 史 諷 旨 ,令 以 吳 使 自 效 。
奉 聞 之 , 倒 還 。 宮 遣 主 簿 笮 咨 、 帶 固 等出 安 平 ,
與 宏 相 見 。 宏 即 縛 得 三 十 餘 人 質 之 , 宮 於 是 謝 罪 , 上 馬 數 百 匹 。 宏 乃 遣 咨 、 固 奉 詔 書 賜 物 與 宮 。
是 時 宏 船 小 , 載 馬 八 十 匹 而 還 。
수운을 이용한 여러 산업이나 군사적 운용법이 훨씬 더
발전되었겠지요.
일찍부터 수군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을 수도 있고요.
쓸데 없이 유명한 "적벽대전"도 강에서 치고 받은것이죠?
고구려와 백제가 전성기때 황해를 내해로 삼은거나 다름없다는것.
그 자체가 막강한 수군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고,
당과 신라가 마음대로 황해를 왔다 갔다 하는 멸망 직전의
정황은 고구려의 그 막강했던 수군이 그쯤에서 위력을
다 했다는 증거겠지요.
참고로 강유님께서 언급하신 오나라 사신의 말 이야기는
손권이 사굉(謝宏) 진순(陳恂)을 보내서 동천왕을 선우에 봉하는
기사와 함께, 동천왕이 좋은 말 수백필을 줬는데 타고 갔던 배가
작아서 80필만 싣고 돌아왔다는 그 이야기인것 같습니다.
아마도 동천왕께서 기분이 몹시 상하신 나머지
자신의 힘도 과시할 겸, 골탕도 먹일겸 해서 좋은 말
수백마리를 짐짓 보여주면서 오나라 사신을 놀리는게
숨은 내용인것 같네요.
결국 얼마 후에 오나라는 고구려에 사신을 보냈다가 목이 베이는
수모를 당하고 말지요.
사료의 원문을 달아두는것도 좋을것 같아서 三國志 吳書의
해당 기사를 찾아 올립니다.
閒 一 年 , 遣 使 者 謝 宏 、 中 書 陳 恂 拜 宮 為 單 于 ,
加 賜 衣 物 珍 寶 。 恂 等 到 安平 口 , 先 遣 校 尉 陳 奉 前 見 宮 , 而 宮 受 魏 幽 州 刺 史 諷 旨 ,令 以 吳 使 自 效 。
奉 聞 之 , 倒 還 。 宮 遣 主 簿 笮 咨 、 帶 固 等出 安 平 ,
與 宏 相 見 。 宏 即 縛 得 三 十 餘 人 質 之 , 宮 於 是 謝 罪 , 上 馬 數 百 匹 。 宏 乃 遣 咨 、 固 奉 詔 書 賜 物 與 宮 。
是 時 宏 船 小 , 載 馬 八 十 匹 而 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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