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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토론방

당의 인구대비 병력동원능력

작성자돌부처|작성시간06.12.19|조회수406 목록 댓글 3
강희대제님께서 통계되지 않은 인구에서 어떻게 병력을 뽑아내고 세금을 걷을 수 있느냐

하셨습니다.

저야 지식이 절대적으로 얇으니 여기저기서 귀동냥한 내용을 종합해서 생각해 봤습니다.

잘못된 점이 있다면 지적해주세요.



일단 당나라 초기는, 수당 교체기의 혼란과 지방통제력의 미비로 정확한 호구를 조사할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수나라 4600만의 인구가 불과 1200만으로 줄어든 것은 관중지역을

대상으로 집계된 수치입니다.

따라서 당나라는 병력을 구성할 때에는 호구조사가 분명한 관중지역의 백성들을 중심으로,

대신 군수물자 등을 동원할 때에는 기타 지방에서 세금을 걷었습니다.

즉 관중지역에서는 세금을 덜 걷는 대신에 병력을 약간 무리해서 징집할 수 있었던 것이고

기타 지방에서는 병력을 징집하지 않는 대신에 세금을 보다 무리해서 징수할 수 있었던

것이죠.

또한 부족한 병력은 당나라에 투항한 이민족을 이용해 채웠으니 순수한 군사 30만 정도가

무리한 숫자는 아닙니다.



호구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당나라의 경우는 단순히 유랑민이

많다거나 산속에 숨어 사는 백성이 많아서가 아닙니다. 단지 호구조사를 시작할 통치력이

아직 곳곳에 미칠 수 없었기 때문이죠.

설마 명백히 사람이 사는 곳에 '이곳은 호구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니 세금 걷지는 말자'

하고 넘어가지는 않겠지요.



그리고 또 하나, 2차전쟁에 관해서...

약40만이란 수치는 기록상 명백히 나와있는 것이 아니라 6개 도행군 35행군이란 규모를

토대로 산출해낸 수치입니다. 그러니 중국인들의 수사적 표현과는 상관없을 뿐 아니라

객관적으로 근접한 수치입니다.

또 이 병력의 구성에 비전투병의 비중을 말씀하셨는데 저는 '비전투병'의 비중이 오히려

적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1차전쟁과 비교하더라도 그 양상이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1차 전쟁의 경우 당의 전략은 정공법에 가깝습니다. 주력이 평소대로 요서를 통해 육로로

진격한 것이지요. 이 경우 소위 비전투병이라 말하는, 역부로 동원된 일반 백성들은

식량기지인 영주에서 요동전선까지 보급역할을 맡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2차 전쟁의 경우 주력이 바다를 건너 진격합니다. 4개 도행군 중에서 요동도행군이

퇴각한 후 식량부족으로 신라에 원조를 구하는 등의 과정을 봤을 때에, 3개 도행군은

지참한 식량 외에는 보급을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이 경우 그 보급부대의 역할은

요동도행군이 맡았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굳이 비전투병의 비중이 높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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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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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ZARD | 작성시간 06.12.19 이건 훗날 이야기입니다만 부병제가 747년(천보 6년)에 완전히 무너지기 이전인 726년에는 호구수 707만명에 인구는 4142만명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부병제로 동원가능한 병력이 60만명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태종시기의 인구는 호구수 300만호에 부병제하에서 동원가능한 병력도 35만에서 60만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 작성자국강상대개토지호태성왕 | 작성시간 06.12.20 이미 수나라때 명확한 호구조사가 이루어진 적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수나라 말기에 혼란기를 겪으면서 호구수가 어느정도 차이는 있었을 것입니다. 당태종이 고구려를 침공했을때 정예병 30만을 동원했습니다. 그러니깐.. 당나라의 총병력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 작성자청4대황제강희제 | 작성시간 06.12.21 부병제로 동원가능한 병력의 90~50% 가량을 하나의 전선에만 올인해서 동원한거면 거의 총력전수준이죠 =_=.. 이게 어마어마 하단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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