乙弗大王傳 http://mf.history.go.kr/Pdf/MF0020000/00322331.pdf
을불대왕전(乙弗大王傳)
해석 by 하모님.
약로대왕(藥盧大王) 9년 춘정월. 왕은 모든 비빈(妃嬪)들과 단림지궁(檀林之宮)에서 야연을 베풀었는데 홀연 벽력소리가 나고 하늘로부터 화광이 내려와 작은 개같은 것이 돌고(咄固)태자(咄固太子)의 침전으로 날아드는 것이었다. 왕은 크게 놀라 급히 침전으로 가서 안을 살폈는데 별다른 불빛은 없었고, 다만 돌고태자(咄固太子)와 다비(茶妃) 을씨(乙氏)가 교합을 하고 기식이 엄엄하여 용보(龍步)가 지척에 이르도록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 다비(茶妃) 을씨(乙氏)는 주통태후(酒桶太后)의 서자인 을보(乙寶)의 딸이니 현상(賢相) 을파소(乙巴素)의 증손이다. 아름답고 지혜영민(慧敏)하므로 왕이 그를 아끼어 후궁에 들이고 누차 총애를 받아 차비(次妃)의 지위에 올랐던 것인데, 언제부터 돌고(咄固)와 밀통했는지 알지 못했다. 왕이 노하여 을씨(乙氏)를 주살하려하자 태사(太史) 우선(于先)이 상주하였다. “천랑성(天狼星)이 궁중에 떨어졌으니 반드시 귀한 자식이 태어날 것입니다. 아기가 태어나길 기다렸다가 주살함이 가할 것 입니다.” 왕은 노여움을 가라앉혔다.
과연 열달에 이르러서 사내아이를 낳았는데 풍준(豊雋)하고 기걸(奇傑)찼으며 또 오색구름이 산실을 에워싸고 감돌았다. 왕은 하늘이 정한것이라 여기고 마침내 을씨(乙氏)를 돌고(咄固)의 처(妻)로 삼고 아기의 이름을 을불(乙弗)이라 지었다. 때는 황구(黃狗/무술-278)의 10월(孟冬)이었다.
왕은 을불(乙弗)을 아끼고 사랑해서 을씨(乙氏)에게 내리는 작록이 예전과 다름없었다.
을불(乙弗)은 3살에 능히 길흉(吉凶)을 말할 수 있었다. 왕제(王弟) 달가(達賈)가 숙신(肅愼)정벌을 떠나기에 앞서 왕에게 입사(入辭)했는데 왕은 을불(乙弗)을 무릎위에 안고있다가 물었다 “이번 출행이 길(吉)하겠느냐?” 을불(乙弗)은 “길(吉)”이라 답했다. 과연 대승을 거두었다. 왕은 이에 첫승을 올린 땅을 을불(乙弗)의 식읍(邑)으로 삼고 돌고(咄固)에게 명하여 그곳으로 나아가 다스리도록 하였다.
왕은 다시 을씨(乙氏)를 총애하여 딸 단씨(丹氏)를 낳았는데 을불(乙弗)이 단씨를 몹시도 아껴서 그 곁을 떠나지 않았다. 왕은 을불(乙弗)을 놀려서 말하되 “단씨는 내 딸이고 너는 곧 내 손자이니 네가 그 아이를 누이로 할 수 없다.” 을불(乙弗)은 울면서 “나도 왕의 아들이 되고 싶습니다.”하였다. 왕은 측은히 여겨서 그를 허락하고 봉하여 태자로 삼았다.
그때의 궁중은 엄하지 않아서 후비(后妃)들이 행실이 없었다. 돌고(咄固)의 어머니 고씨(高氏) 또한 소후(小后)로써 치갈태자(雉葛太子)와 밀통하고 있었다. 을불(乙弗)이 이를 간하되 “할머니는 어찌하여 치갈(雉葛)과 함께 어울리십니까?”하자 고씨는 말했다. “치갈(雉葛)은 후일의 천자(天子)이다. 어찌 교태를 부려 잘 보이지 않을 수 있겠느냐? 너는 이를 말하지 말라.” 을불(乙弗)이 말했다 “나 또한 태자이니 이는 훗날의 천자가 아닙니까?” 고씨는 크게 놀라 그를 제지하며 말했다. “천위(天位)는 이미 정해졌다. 너는 망령된 말을 하지마라.”
을불(乙弗)은 불복하며 스스로 나는 천자가 될것이라고 자인하였다.
치갈(雉葛)은 다시 을씨(乙氏)와도 밀통하였다. 을씨가 울면서 말했다 “대왕이 이를 알면 반드시 나를 호음(好淫)한다 하여 주살할 것입니다.” 치갈(雉葛)이 말했다 “심야지사를 대왕이 무슨 수로 알겠는가?” 그때 을불(乙弗)이 일어나 말했다. “태형(太兄)은 이미 내 조모와 통하고 다시 내 어머니를 핍박했으니 죄가 큽니다. 내가 마땅히 이것을 부왕께 아뢸 것이오.” 치갈(雉葛)은 크게 놀라 차고 있던 옥도(玉刀)를 끌러주며 말했다. “네가 만약 이 일을 아뢴다면 네 어머니는 주살되고 나는 마땅히 태형을 받을 것이다. 그리 되느니만 못하거든 말을 말거라.” 을불(乙弗)은 어머니가 죽을까봐 두려워서 이를 숨겼다.
뒤에 왕은 옥도를 발견하고 물었다. “이것은 곧 사군의 보물(嗣寶)인데 어찌하여 네가 이것을 차고있느냐?” 을불(乙弗)이 말했다. “나는 연(鳶)이 끈떨어졌는데 그것을 이을수 있어 차지한다면 천명이 없는것도 아니지 않습니까?(飛鳶落之無乃有可嗣之天命乎)???” 왕은 그말을 기이하게 여기고 은밀히 을씨에게 이르되 “네 아들이 식우(食牛:호랑이새끼)의 기상을 가지고 있으니 천명(天命)이 있는게 아닌지 몰라 두렵구나.” 이에 방회(方回)와 대발(大發)을 좌우스승(左右師)으로 삼아 기사(騎射)와 병진(兵陣)의 학문을 가르쳤다. 9세에 능히 3대의 화살을 쏴서 명중시키니 왕은 그에게 상을 내렸다.
그 때에 왕제(王弟) 일우(逸友)와 색발(索勃)이 반란을 일으키다가 복주(伏誅)되었다. 을불(乙弗)이 왕에게 아뢰었다. “두 숙부는 무(武)를 숭상해서 예양지학(禮讓之學)을 모른 까닭에 저 지경에 이르렀으니 신(臣)은 좋은 스승에게 예양을 배우기를 청하옵니다.” 왕은 그를 옳게 여겨 우선(于先)에게 명하여 효경(孝經)으로 가르치게 했다. 을불(乙弗)이 마침내 왕에게 상주했다. “신이 어리고 예(禮)를 몰라 할아버지를 아버지로 삼고, 아버지를 형으로 삼았으니 지금에야 그 잘못됨을 알았습니다. 청컨대 신의 태자 작위를 삭제함으로써 명분을 바로 잡으소서.” 왕이 말했다. “네 말이 비록 옳다마는 이미 봉한 작위를 어찌 빼앗을 수 있겠느냐? 남의 아들도 내 아들로 삼을 수 있거늘 하물며 내 아들의 아들이겠는가? 다만 네 아비는 돌고(咄固)이니 너는 그 아비를 따름에 네 소원대로 하라.” 이에 을불(乙弗)이 아버지를 섬김에 지성으로 효도하니 돌고(咄固) 또한 인효우애(仁孝友愛)하였다. 국인(國人)들이 이를 우러러 “현태자(賢太子)가 현태자(賢太子)를 낳았다.”라고 하였다.
치갈(雉葛)은 성품이 교만방자(驕逸)한데다 호색(好色)하고 패덕한 소행(悖行)이 많아 국인들이 이를 근심하였다. 안국군(安國君) 달가(達賈)가 일찌기 왕에게 조용히 상주하되 “나라가 의지하는 바는 사군(嗣君)에 있습니다. 이제 을불(乙弗) 부자는 모두 어질고 현명하나 치갈(雉葛)은 불초하니 형왕(兄王)은 모름지기 이를 유념하소서.”하였다. 왕은 말했다. “짐도 그것을 알지만 어찌 차마 장자를 폐하고 소자를 세우겠는가? 네가 그를 잘 가르칠지어다.” 이에 치갈(雉葛)을 불러 꿇어 앉히고 경계하여 말했다. “국인들이 너의 무도함을 근심한다. 안국군은 네가 아버지로 섬김에 나와 같이 할지니 대소사를 막론하고 모두 (그에게) 묻고나서 행해야 가할 것이다.(安國君汝其父之事之如我事無大小皆咨而行之可也)”
치갈(雉葛)은 내심 불평을 품었으나 애써 노력하여 그를 좇았다. 이로부터 안국군이 규제하고 간하는 것이 많았다. 치갈(雉葛)은 이를 괴롭게 여겨 돌고(咄固)에게 말하기를 “내가 천자가 되면 마땅히 먼저 달가(達賈)를 죽이리라.”하였다. 돌고(咄固)가 그 말을 달가(達賈)에게 고하며 이르되 “숙부는 스스로 위태롭게 하지 마소서.”하였다. 달가(達賈)는 말하였다. “나라를 위하는 마음(爲國之心)에 어찌 스스로의 이해를 돌보겠는가?” 돌고(咄固)는 탄식하며 말했다 “군자의 말씀입니다!”
치갈(雉葛)의 어머니 우씨(于氏)는 아름답고 요염 간교(奸姣)하니 왕이 그를 가장 아껴서 정후(正后)로 삼고 그녀가 말하는 바는 모두 들어 주었다. 때문에 치갈(雉葛)의 불초함을 알면서도 그를 폐할 수 없었던 것이다. 우씨(于氏) 또한 국인들이 돌고(咄固)를 많이 추앙함을 알고 돌고(咄固)가 후계(嗣)를 뺏을까 두려워했다. 그의 행실을 훼손코자 거짓으로 부스럼(瘡)이 있다 칭하고 돌고(咄固)를 불러 같은 수레에 타고 온탕(溫湯)으로 들어갔다. 은밀히 돌고(咄固)에게 말하기를 “나의 부스럼은 옥문(玉門)의 해심(荄心)에 있으니 너는 마땅히 양경(陽莖)에다 이 유약(油藥)을 발라서 넣어라.”고 하였다. 돌고(咄固)가 이를 어렵게 여겨 말했다. “신이 어찌 감히 성후(聖后)를 증(烝) 하오리까?” 우씨는 노하여 말했다. “네가 을씨의 젊음은 사랑해서 통하고 나는 늙었음으로 해서 통하지 않겠다는 것이냐? 네가 나와 더불어 알몸으로 탕에 들어왔으니 비록 통정하지 않았다 해도 남이 어찌 알겠는가? 내 당장 네가 나를 핍박하여 간음했다고 성언하여 주살할 것이다.” 돌고(咄固)는 어찌할 수 없어 그를 증(烝)하였다. 이로부터 우씨는 누차 돌고(咄固)를 이끌어 은밀히 그에게 총애를 주고 치갈(雉葛)로 하여금 오게해서 그것을 보게했다. 치갈(雉葛)이 이에 돌고(咄固)를 꾸짖어 말했다. “국인들이 너를 현명하고 호색하지 않는다 하는데 현자(賢者) 역시 모후(母后)를 치붙는가?” 돌고(咄固)는 고개를 숙인채 말을 못했다.
우씨는 또 달가(達賈)의 옹병군권(擁兵)을 두려워해서 늘 달가(達賈)에게 교태를 부려 말했다. “부왕(夫王)의 천추후에 아즈반(叔)은 마땅히 산상왕(山上王)이 될 것이니 첩은 마땅히 그를 따를 것입니다.” 달가(達賈)가 말했다. “왕위를 이을 사군(嗣君)이 수후(嫂后)마마에게 있는데 이 무슨 어지러운 말씀입니까?” 우씨는 즐거워 하지 않고 오히려 왕에게 그를 참소하였다. “달가(達賈)가 나를 유혹해 말하기를 ‘형왕은 머지않아 죽을 것이고 나는 마땅히 산상왕이 되어 형수를 후(后)로 삼을 것이니 이제 먼저 통하여 결친(結親)함이 옳을 것이오’하기에 내가 그 뺨을 때리고 피했습니다.” 왕은 우씨의 거짓말을 알고 웃으며 “네가 달가(達賈)의 처가 되고 싶다면 내 죽음을 기다릴게 무엇이냐? 지금이라도 그에게 갈 수 있다.” 우씨는 울며 말하기를 “그대는 아우는 아끼면서 처는 아끼지 않으니 내가 비록 죽는다 해도 어찌 달가(達賈)의 처가 되겠습니까?”하였다. 왕이 말하였다 “달가(達賈)와 나는 한 몸이니 네가 끼어들 바가 아니다.” 우씨는 참소할 수 없음을 알고 다시는 말하지 않았다.
왕은 달가(達賈)에게 말하였다. “네 형수 우씨가 내게 너를 참소하니 이는 필시 네가 그 청을 따르지 않은 것이다. 무릇 형제동처(兄弟同妻)는 고금에 있어온 것이니 하물며 한 어머니의 아우이겠는가? 아(私)다이 통정하여 그 마음을 즐겁게 함이 가할 것이다.” 달가(達賈)가 대답하되 “남녀의 예(禮)가 무너집니다. 어찌 도(道)로써 남을 책망받도록 하겠습니까?(어찌 남을 책망받도록 하는게 도(道)이겠습니까?”(何以責人爾乎)???? 왕은 그말에 탄복하여 말했다. “어질도다! 나의 아우여. 내가 미칠 수 없구나!”
달가(達賈)의 처 음씨(陰氏)는 상국(相國) 음우(陰友)의 딸이다. 신장이 7척이요 얼굴은 붉은 대추(重棗)와도 같았는데 능히 장창(長槍)을 쓸 수 있었다. 일찌기 달가(達賈)를 따라 출전(出戰)하여 적을 베고 공을 세워서 봉작(封爵)을 받고 장군(將軍)이 되었으나 이를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늘 베치마(布裙) 차림으로 노복 무리들과 더불어 밭에 종자를 심으며 집안에 말하기를 “농사란 천하의 근본이다. 비록 재상의 처(妻)라 해도 알지 않을 수 없다.”라고 했다.
왕이 일찌기 미행(微幸)하여 그 장원에 이르렀는데 하늘에서는 바야흐로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다. 달가(達賈)와 음씨는 진탕에 서서 맨발에 헝크러진 머리로 종묘(種苗)를 하느라 분주하여 어가(駕)가 이르른 것도 알지 못했다. 왕은 웃으면서 말했다. “국왕의 제매(弟妹)가 어찌 수고가 이와 같은가?” 음씨가 말했다.“천자도 친히 밭을 갈아(親藉) 백성에게 보이는데 하물며 제매(弟妹)이리까?” 왕은 음씨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궁중에 비록 미인이 많으나 너와 같은 자는 없다. 이 저녁에 한번 행(幸)할 수 있겠느냐?” 음씨가 말하되 “여자는 정절을 귀하게 여기니 비록 천자라 해도 빼앗을 수 없습니다. 하물며 형제의 처(妻)이겠습니까?”라고 했다.
왕은 크게 부끄러워 말하되 “내가 특별히 농담한 것 뿐이니 누이는 용서하라.”하였다. 음씨 가로되 “천자는 농담(戱言)이 없습니다. 만약 왕명을 좇는다면 부정(不貞)이고, 왕명을 좇지 않는다면 불충(不忠)이니 이것이 첩의 어려움입니다. 만약 행(幸)한다면 난륜(亂倫)이고, 행(幸)하지 않는다면 식언(食言)이니 이것이 왕의 어려움입니다. 어찌 말하기가 쉽겠습니까?” 달가(達賈)가 말했다. “불충(不忠)이 부정(不貞)보다 크니 너는 마땅히 수행(幸)을 받으라.” 왕이 말했다 “내가 차라리 식언(食言)을 할지언정 어찌 난륜(亂倫)의 이름을 받겠는가?” 달가(達賈)가 말했다.“왕(王)이라 함은 참말(信)인 것으로 식언(食言)은 중대합니다.” 끝내 음씨로 하여금 목욕하고 수행(受幸)토록 하였다. 왕이 탄식하여 가로되 “말 한마디의 어려움을 이제야 비로소 알겠다. 누이에게 무슨말을 하겠는가. 형제의 정은 사사로이 다를 바 없고, 누이는 난륜한 것이 없으니 나를 꾸짖으라.”(兄弟之情無所私異妹無以亂倫責我)(何言妹乎)??? 음씨가 말했다. “한번 동침은 백년부부입니다. 지금 이미 이렇게 되었으니 첩은 이로부터 부왕(夫王)을 섬길 것입니다. 폐하는 마땅히 미녀를 택하여 달가(達賈)의 처로 삼아야 옳을 것입니다.” 왕은 이에 장녀 다씨(多氏)를 달가(達賈)의 처로 하였다. 다씨(多氏)는 돌고(咄固)의 포매(胞妹)였다. 어질고 아름다운 까닭에 치갈(雉葛)이 첩으로 삼고자하여 여러차례 고씨에게 말을했었다. 이제 달가(達賈)의 처가 되기에 이르자 더욱 질투심을 갖고 불령지도(不逞之徒)와 더불어 은밀히 죽여 없앨 것을 모의했다. 급기야 왕이 병질로 눕게되자 그 모의는 더욱 급박해졌다. 달가(達賈)의 신하 선옹(仙翁)이 달가(達賈)를 설득해 말했다 “지혜로운 자는 선제(先制)합니다. 지금 치갈(雉葛)이 무고히 우리 군(吾君)을 죽이려하고 대왕은 병질에 빠진지가 수삭(數朔)이니 위태롭기가 누란(累卵)과 같습니다. 우리 군(吾君)은 이때로써 군사를 이끌고 입궁하여 군측(君側)의 간신을 제거하고 돌고(咄固)태자를 세우지 않는다면 가히 국가로 하여금 근심을 없애고 오군(吾君)이 안전할 수 없습니다.” 달가(達賈)는 말하되 “내가 천하에 중시되는 까닭은 장의충군(仗義忠君)하기 때문이다. 만약 지금 스스로 역모를 꾀한다면 위로는 형왕(兄王)의 병을 더하고 아래로는 국민(國民)의 의를 저버림이니 나는 차마 할수 없다.” 선옹은 탄식하여 말하되 “다만 선(善)으로써 악(惡)을 도울뿐이니 저는 떠납니다.”하고는 마침내 처자를 거느리고 달아났다.
치갈(雉葛)의 신하 원항(猿項)이 기뻐하며 말했다. “안국군에게 선옹이 없으니 쉬워졌을 따름입니다.” 왕은 병이 매우 깊어지자 달가(達賈)를 부르도록 명하였다. 돌고(咄固)태자가 입내(入內)하였으나 우씨가 그를 저지하였다. 거짓으로 조서(詔)를 칭탁하여 달가(達賈)의 병권을 남김없이 우씨의 형제 평자(枰刺?)에게 옮기게 했다. 달가(達賈)의 신하 이경(以竟)이 달가(達賈)에게 간했다 “지금 왕의 병이 깊어 정사를 돌보지 못하는데 홀연 병권을 외척에게 옮기니 필시 속임수가 있는 것입니다. 청컨대 스스로 쥐고 있으면서 변황을 기다리소서.” 달가(達賈)가 말하되 “내가 병권 때문에 수후(嫂后)에게 밉보인 까닭이다. 만약 지금 주저하며 물러나지 않는다면 그 노여움을 더욱 크게 할 뿐이다.”하고는 즉시 인수(印綬)를 풀어서 넘겨주었다. 이경(以竟)은 통곡(哭)하며 “호랑이가 이와 발톱이 빠지면 사람들 모두가 잡아 묶을 수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왕은 달가(達賈)의 입내(入內)를 기다리며 여러번 재촉을 했으나 오지않자 마침내 “달가!”“달가!”하고 부르짖다가 붕하였다. 춘추 53세에 재위는 23년이었다.
우씨(于氏)는 이에 치갈(雉葛)을 세워 대맥대왕(大貊大王)으로 삼았다. 때는 수서(水鼠/임자-292)의 중추(8월)였다. (임자 3월에 문천(門天)을 태보(太輔), 상루(尙婁)를 우보(右輔), 가?방(稼?方)을 좌보(左補)로 삼았다)
치갈(雉葛)은 이에 우씨(于氏)를 태후(太后)로 삼고 연씨(緣氏)를 후(后)로 삼고, 5부(部) 37국(國)의 조하(朝賀)를 받았다.
3월에 달가(達賈)에게 죽음을 내리되 “안국군(安國君)은 오래도록 병권을 장악하면서 안으로 불궤지심(不軌之心)을 품고 당을 결성해 나라를 위태롭게한 까닭에 대의멸친(大義滅親)한다.”라고 하였다. 이경(以竟)은 달가(達賈)에게 출분(出奔)할 것을 권하였으나 달가는 말하되 “나는 형왕(兄王)을 따라 순사해 죽는것이 진실로 소원이다.”하고 곧 조용히 자진하니 사자(使者)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왕은 달가의 처 다씨(多氏)를 소후(小后)로 삼고 그 전처 음씨(陰氏)를 원항(猿項)의 처로 하였다. 음씨(陰氏)가 말했다. “나는 선왕(先王)과 안국군(安國君)의 대은(大恩)을 받았다. 이제 두 지아비의 상(喪)을 입어 빈소를 지키는 몸이니 다시 결혼할 수는 없다.” 원항이 협박하여 말했다. “네가 만약 나를 따르지 않는다면 마땅히 안국군의 모든 자식들을 죽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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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第十三世<西川大帝>紀 제13세<서천대제>기
帝, 初號<藥盧大王>, 諱<若友>, <中川帝>第二子. 母, 曰<椽>太后. 惟貫厚聰悟, 愛民好士, 國人愛敬之.
제의 초호는 <약로대왕>이고, 휘는 <약우>이며, <중천제>의 둘째 아들이고, 모친은 <연>태후이다. 성품은 오직 너그럽고 후덕하였으며 총기 있고 영민하였으며, 백성을 아끼고 뜻있는 인사들을 좋아하였기에, 나라사람{나라를 다스리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들이 그를 사랑하고 존경하였다.
(생략)
◎ 九年戊戌, 春正月, 上與后妃夜宴, 有霹靂之聲, 火光如狗飛入<咄固>太子寢殿. 太史<于先>奏曰; “<天狼星>落于宮中, 必生貴子. 是年十月, <乙>氏生<乙弗>, 五雲繞室而香. <乙弗>豊雋奇傑, 人多稱之.
四月, <羅>有暴風拔木. 十月, <濟>攻<羅><槐谷城>圍之, 甚急. <羅>, 以海湌<正源>領兵, 救之.
以<術>公主妻<穆秫>, <于術>出也.
○ 9년{단기2611년/AD278}무술, 춘정월. 상이 후·비 들과 밤에 연회를 하는 중에, 벽력같은 소리가 나면서 작은 개 모습의 불빛이 <돌고>태자의 침전으로 날아들었다. 태사 <우선>이 아뢰길; “<천랑성>이 궁중으로 떨어졌으니, 반드시 귀한 사람이 태어날 것입니다.”라 하였다. 이 해 10월에 <을>씨 가 <을불>을 낳았더니, 오색구름이 궁실을 감싸고 향기가 있었다. <을불>은 체구가 풍성하고 기이하고 뛰어나서, 많은 사람들이 칭송하였다.
4월, <신라>에서는 폭풍이 불어 나무가 뽑혔고, 10월엔 <백제>가 <신라>의 <괴곡성>을 공격하여 에워싸니, 형세가 심히 위급하였다. <신라>는 이에 해찬 <정원>을 시켜 병사를 이끌고 가서 이를 구하였다.
<술>공주를 <목출>의 처로 주었는데, <우술>의 소생이었다.
을불대왕전(乙弗大王傳)
해석 by 하모님.
약로대왕(藥盧大王) 9년 춘정월. 왕은 모든 비빈(妃嬪)들과 단림지궁(檀林之宮)에서 야연을 베풀었는데 홀연 벽력소리가 나고 하늘로부터 화광이 내려와 작은 개같은 것이 돌고(咄固)태자(咄固太子)의 침전으로 날아드는 것이었다. 왕은 크게 놀라 급히 침전으로 가서 안을 살폈는데 별다른 불빛은 없었고, 다만 돌고태자(咄固太子)와 다비(茶妃) 을씨(乙氏)가 교합을 하고 기식이 엄엄하여 용보(龍步)가 지척에 이르도록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 다비(茶妃) 을씨(乙氏)는 주통태후(酒桶太后)의 서자인 을보(乙寶)의 딸이니 현상(賢相) 을파소(乙巴素)의 증손이다. 아름답고 지혜영민(慧敏)하므로 왕이 그를 아끼어 후궁에 들이고 누차 총애를 받아 차비(次妃)의 지위에 올랐던 것인데, 언제부터 돌고(咄固)와 밀통했는지 알지 못했다. 왕이 노하여 을씨(乙氏)를 주살하려하자 태사(太史) 우선(于先)이 상주하였다. “천랑성(天狼星)이 궁중에 떨어졌으니 반드시 귀한 자식이 태어날 것입니다. 아기가 태어나길 기다렸다가 주살함이 가할 것 입니다.” 왕은 노여움을 가라앉혔다.
과연 열달에 이르러서 사내아이를 낳았는데 풍준(豊雋)하고 기걸(奇傑)찼으며 또 오색구름이 산실을 에워싸고 감돌았다. 왕은 하늘이 정한것이라 여기고 마침내 을씨(乙氏)를 돌고(咄固)의 처(妻)로 삼고 아기의 이름을 을불(乙弗)이라 지었다. 때는 황구(黃狗/무술-278)의 10월(孟冬)이었다.
왕은 을불(乙弗)을 아끼고 사랑해서 을씨(乙氏)에게 내리는 작록이 예전과 다름없었다.
을불(乙弗)은 3살에 능히 길흉(吉凶)을 말할 수 있었다. 왕제(王弟) 달가(達賈)가 숙신(肅愼)정벌을 떠나기에 앞서 왕에게 입사(入辭)했는데 왕은 을불(乙弗)을 무릎위에 안고있다가 물었다 “이번 출행이 길(吉)하겠느냐?” 을불(乙弗)은 “길(吉)”이라 답했다. 과연 대승을 거두었다. 왕은 이에 첫승을 올린 땅을 을불(乙弗)의 식읍(邑)으로 삼고 돌고(咄固)에게 명하여 그곳으로 나아가 다스리도록 하였다.
왕은 다시 을씨(乙氏)를 총애하여 딸 단씨(丹氏)를 낳았는데 을불(乙弗)이 단씨를 몹시도 아껴서 그 곁을 떠나지 않았다. 왕은 을불(乙弗)을 놀려서 말하되 “단씨는 내 딸이고 너는 곧 내 손자이니 네가 그 아이를 누이로 할 수 없다.” 을불(乙弗)은 울면서 “나도 왕의 아들이 되고 싶습니다.”하였다. 왕은 측은히 여겨서 그를 허락하고 봉하여 태자로 삼았다.
그때의 궁중은 엄하지 않아서 후비(后妃)들이 행실이 없었다. 돌고(咄固)의 어머니 고씨(高氏) 또한 소후(小后)로써 치갈태자(雉葛太子)와 밀통하고 있었다. 을불(乙弗)이 이를 간하되 “할머니는 어찌하여 치갈(雉葛)과 함께 어울리십니까?”하자 고씨는 말했다. “치갈(雉葛)은 후일의 천자(天子)이다. 어찌 교태를 부려 잘 보이지 않을 수 있겠느냐? 너는 이를 말하지 말라.” 을불(乙弗)이 말했다 “나 또한 태자이니 이는 훗날의 천자가 아닙니까?” 고씨는 크게 놀라 그를 제지하며 말했다. “천위(天位)는 이미 정해졌다. 너는 망령된 말을 하지마라.”
을불(乙弗)은 불복하며 스스로 나는 천자가 될것이라고 자인하였다.
치갈(雉葛)은 다시 을씨(乙氏)와도 밀통하였다. 을씨가 울면서 말했다 “대왕이 이를 알면 반드시 나를 호음(好淫)한다 하여 주살할 것입니다.” 치갈(雉葛)이 말했다 “심야지사를 대왕이 무슨 수로 알겠는가?” 그때 을불(乙弗)이 일어나 말했다. “태형(太兄)은 이미 내 조모와 통하고 다시 내 어머니를 핍박했으니 죄가 큽니다. 내가 마땅히 이것을 부왕께 아뢸 것이오.” 치갈(雉葛)은 크게 놀라 차고 있던 옥도(玉刀)를 끌러주며 말했다. “네가 만약 이 일을 아뢴다면 네 어머니는 주살되고 나는 마땅히 태형을 받을 것이다. 그리 되느니만 못하거든 말을 말거라.” 을불(乙弗)은 어머니가 죽을까봐 두려워서 이를 숨겼다.
뒤에 왕은 옥도를 발견하고 물었다. “이것은 곧 사군의 보물(嗣寶)인데 어찌하여 네가 이것을 차고있느냐?” 을불(乙弗)이 말했다. “나는 연(鳶)이 끈떨어졌는데 그것을 이을수 있어 차지한다면 천명이 없는것도 아니지 않습니까?(飛鳶落之無乃有可嗣之天命乎)???” 왕은 그말을 기이하게 여기고 은밀히 을씨에게 이르되 “네 아들이 식우(食牛:호랑이새끼)의 기상을 가지고 있으니 천명(天命)이 있는게 아닌지 몰라 두렵구나.” 이에 방회(方回)와 대발(大發)을 좌우스승(左右師)으로 삼아 기사(騎射)와 병진(兵陣)의 학문을 가르쳤다. 9세에 능히 3대의 화살을 쏴서 명중시키니 왕은 그에게 상을 내렸다.
그 때에 왕제(王弟) 일우(逸友)와 색발(索勃)이 반란을 일으키다가 복주(伏誅)되었다. 을불(乙弗)이 왕에게 아뢰었다. “두 숙부는 무(武)를 숭상해서 예양지학(禮讓之學)을 모른 까닭에 저 지경에 이르렀으니 신(臣)은 좋은 스승에게 예양을 배우기를 청하옵니다.” 왕은 그를 옳게 여겨 우선(于先)에게 명하여 효경(孝經)으로 가르치게 했다. 을불(乙弗)이 마침내 왕에게 상주했다. “신이 어리고 예(禮)를 몰라 할아버지를 아버지로 삼고, 아버지를 형으로 삼았으니 지금에야 그 잘못됨을 알았습니다. 청컨대 신의 태자 작위를 삭제함으로써 명분을 바로 잡으소서.” 왕이 말했다. “네 말이 비록 옳다마는 이미 봉한 작위를 어찌 빼앗을 수 있겠느냐? 남의 아들도 내 아들로 삼을 수 있거늘 하물며 내 아들의 아들이겠는가? 다만 네 아비는 돌고(咄固)이니 너는 그 아비를 따름에 네 소원대로 하라.” 이에 을불(乙弗)이 아버지를 섬김에 지성으로 효도하니 돌고(咄固) 또한 인효우애(仁孝友愛)하였다. 국인(國人)들이 이를 우러러 “현태자(賢太子)가 현태자(賢太子)를 낳았다.”라고 하였다.
치갈(雉葛)은 성품이 교만방자(驕逸)한데다 호색(好色)하고 패덕한 소행(悖行)이 많아 국인들이 이를 근심하였다. 안국군(安國君) 달가(達賈)가 일찌기 왕에게 조용히 상주하되 “나라가 의지하는 바는 사군(嗣君)에 있습니다. 이제 을불(乙弗) 부자는 모두 어질고 현명하나 치갈(雉葛)은 불초하니 형왕(兄王)은 모름지기 이를 유념하소서.”하였다. 왕은 말했다. “짐도 그것을 알지만 어찌 차마 장자를 폐하고 소자를 세우겠는가? 네가 그를 잘 가르칠지어다.” 이에 치갈(雉葛)을 불러 꿇어 앉히고 경계하여 말했다. “국인들이 너의 무도함을 근심한다. 안국군은 네가 아버지로 섬김에 나와 같이 할지니 대소사를 막론하고 모두 (그에게) 묻고나서 행해야 가할 것이다.(安國君汝其父之事之如我事無大小皆咨而行之可也)”
치갈(雉葛)은 내심 불평을 품었으나 애써 노력하여 그를 좇았다. 이로부터 안국군이 규제하고 간하는 것이 많았다. 치갈(雉葛)은 이를 괴롭게 여겨 돌고(咄固)에게 말하기를 “내가 천자가 되면 마땅히 먼저 달가(達賈)를 죽이리라.”하였다. 돌고(咄固)가 그 말을 달가(達賈)에게 고하며 이르되 “숙부는 스스로 위태롭게 하지 마소서.”하였다. 달가(達賈)는 말하였다. “나라를 위하는 마음(爲國之心)에 어찌 스스로의 이해를 돌보겠는가?” 돌고(咄固)는 탄식하며 말했다 “군자의 말씀입니다!”
치갈(雉葛)의 어머니 우씨(于氏)는 아름답고 요염 간교(奸姣)하니 왕이 그를 가장 아껴서 정후(正后)로 삼고 그녀가 말하는 바는 모두 들어 주었다. 때문에 치갈(雉葛)의 불초함을 알면서도 그를 폐할 수 없었던 것이다. 우씨(于氏) 또한 국인들이 돌고(咄固)를 많이 추앙함을 알고 돌고(咄固)가 후계(嗣)를 뺏을까 두려워했다. 그의 행실을 훼손코자 거짓으로 부스럼(瘡)이 있다 칭하고 돌고(咄固)를 불러 같은 수레에 타고 온탕(溫湯)으로 들어갔다. 은밀히 돌고(咄固)에게 말하기를 “나의 부스럼은 옥문(玉門)의 해심(荄心)에 있으니 너는 마땅히 양경(陽莖)에다 이 유약(油藥)을 발라서 넣어라.”고 하였다. 돌고(咄固)가 이를 어렵게 여겨 말했다. “신이 어찌 감히 성후(聖后)를 증(烝) 하오리까?” 우씨는 노하여 말했다. “네가 을씨의 젊음은 사랑해서 통하고 나는 늙었음으로 해서 통하지 않겠다는 것이냐? 네가 나와 더불어 알몸으로 탕에 들어왔으니 비록 통정하지 않았다 해도 남이 어찌 알겠는가? 내 당장 네가 나를 핍박하여 간음했다고 성언하여 주살할 것이다.” 돌고(咄固)는 어찌할 수 없어 그를 증(烝)하였다. 이로부터 우씨는 누차 돌고(咄固)를 이끌어 은밀히 그에게 총애를 주고 치갈(雉葛)로 하여금 오게해서 그것을 보게했다. 치갈(雉葛)이 이에 돌고(咄固)를 꾸짖어 말했다. “국인들이 너를 현명하고 호색하지 않는다 하는데 현자(賢者) 역시 모후(母后)를 치붙는가?” 돌고(咄固)는 고개를 숙인채 말을 못했다.
우씨는 또 달가(達賈)의 옹병군권(擁兵)을 두려워해서 늘 달가(達賈)에게 교태를 부려 말했다. “부왕(夫王)의 천추후에 아즈반(叔)은 마땅히 산상왕(山上王)이 될 것이니 첩은 마땅히 그를 따를 것입니다.” 달가(達賈)가 말했다. “왕위를 이을 사군(嗣君)이 수후(嫂后)마마에게 있는데 이 무슨 어지러운 말씀입니까?” 우씨는 즐거워 하지 않고 오히려 왕에게 그를 참소하였다. “달가(達賈)가 나를 유혹해 말하기를 ‘형왕은 머지않아 죽을 것이고 나는 마땅히 산상왕이 되어 형수를 후(后)로 삼을 것이니 이제 먼저 통하여 결친(結親)함이 옳을 것이오’하기에 내가 그 뺨을 때리고 피했습니다.” 왕은 우씨의 거짓말을 알고 웃으며 “네가 달가(達賈)의 처가 되고 싶다면 내 죽음을 기다릴게 무엇이냐? 지금이라도 그에게 갈 수 있다.” 우씨는 울며 말하기를 “그대는 아우는 아끼면서 처는 아끼지 않으니 내가 비록 죽는다 해도 어찌 달가(達賈)의 처가 되겠습니까?”하였다. 왕이 말하였다 “달가(達賈)와 나는 한 몸이니 네가 끼어들 바가 아니다.” 우씨는 참소할 수 없음을 알고 다시는 말하지 않았다.
왕은 달가(達賈)에게 말하였다. “네 형수 우씨가 내게 너를 참소하니 이는 필시 네가 그 청을 따르지 않은 것이다. 무릇 형제동처(兄弟同妻)는 고금에 있어온 것이니 하물며 한 어머니의 아우이겠는가? 아(私)다이 통정하여 그 마음을 즐겁게 함이 가할 것이다.” 달가(達賈)가 대답하되 “남녀의 예(禮)가 무너집니다. 어찌 도(道)로써 남을 책망받도록 하겠습니까?(어찌 남을 책망받도록 하는게 도(道)이겠습니까?”(何以責人爾乎)???? 왕은 그말에 탄복하여 말했다. “어질도다! 나의 아우여. 내가 미칠 수 없구나!”
달가(達賈)의 처 음씨(陰氏)는 상국(相國) 음우(陰友)의 딸이다. 신장이 7척이요 얼굴은 붉은 대추(重棗)와도 같았는데 능히 장창(長槍)을 쓸 수 있었다. 일찌기 달가(達賈)를 따라 출전(出戰)하여 적을 베고 공을 세워서 봉작(封爵)을 받고 장군(將軍)이 되었으나 이를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늘 베치마(布裙) 차림으로 노복 무리들과 더불어 밭에 종자를 심으며 집안에 말하기를 “농사란 천하의 근본이다. 비록 재상의 처(妻)라 해도 알지 않을 수 없다.”라고 했다.
왕이 일찌기 미행(微幸)하여 그 장원에 이르렀는데 하늘에서는 바야흐로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다. 달가(達賈)와 음씨는 진탕에 서서 맨발에 헝크러진 머리로 종묘(種苗)를 하느라 분주하여 어가(駕)가 이르른 것도 알지 못했다. 왕은 웃으면서 말했다. “국왕의 제매(弟妹)가 어찌 수고가 이와 같은가?” 음씨가 말했다.“천자도 친히 밭을 갈아(親藉) 백성에게 보이는데 하물며 제매(弟妹)이리까?” 왕은 음씨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궁중에 비록 미인이 많으나 너와 같은 자는 없다. 이 저녁에 한번 행(幸)할 수 있겠느냐?” 음씨가 말하되 “여자는 정절을 귀하게 여기니 비록 천자라 해도 빼앗을 수 없습니다. 하물며 형제의 처(妻)이겠습니까?”라고 했다.
왕은 크게 부끄러워 말하되 “내가 특별히 농담한 것 뿐이니 누이는 용서하라.”하였다. 음씨 가로되 “천자는 농담(戱言)이 없습니다. 만약 왕명을 좇는다면 부정(不貞)이고, 왕명을 좇지 않는다면 불충(不忠)이니 이것이 첩의 어려움입니다. 만약 행(幸)한다면 난륜(亂倫)이고, 행(幸)하지 않는다면 식언(食言)이니 이것이 왕의 어려움입니다. 어찌 말하기가 쉽겠습니까?” 달가(達賈)가 말했다. “불충(不忠)이 부정(不貞)보다 크니 너는 마땅히 수행(幸)을 받으라.” 왕이 말했다 “내가 차라리 식언(食言)을 할지언정 어찌 난륜(亂倫)의 이름을 받겠는가?” 달가(達賈)가 말했다.“왕(王)이라 함은 참말(信)인 것으로 식언(食言)은 중대합니다.” 끝내 음씨로 하여금 목욕하고 수행(受幸)토록 하였다. 왕이 탄식하여 가로되 “말 한마디의 어려움을 이제야 비로소 알겠다. 누이에게 무슨말을 하겠는가. 형제의 정은 사사로이 다를 바 없고, 누이는 난륜한 것이 없으니 나를 꾸짖으라.”(兄弟之情無所私異妹無以亂倫責我)(何言妹乎)??? 음씨가 말했다. “한번 동침은 백년부부입니다. 지금 이미 이렇게 되었으니 첩은 이로부터 부왕(夫王)을 섬길 것입니다. 폐하는 마땅히 미녀를 택하여 달가(達賈)의 처로 삼아야 옳을 것입니다.” 왕은 이에 장녀 다씨(多氏)를 달가(達賈)의 처로 하였다. 다씨(多氏)는 돌고(咄固)의 포매(胞妹)였다. 어질고 아름다운 까닭에 치갈(雉葛)이 첩으로 삼고자하여 여러차례 고씨에게 말을했었다. 이제 달가(達賈)의 처가 되기에 이르자 더욱 질투심을 갖고 불령지도(不逞之徒)와 더불어 은밀히 죽여 없앨 것을 모의했다. 급기야 왕이 병질로 눕게되자 그 모의는 더욱 급박해졌다. 달가(達賈)의 신하 선옹(仙翁)이 달가(達賈)를 설득해 말했다 “지혜로운 자는 선제(先制)합니다. 지금 치갈(雉葛)이 무고히 우리 군(吾君)을 죽이려하고 대왕은 병질에 빠진지가 수삭(數朔)이니 위태롭기가 누란(累卵)과 같습니다. 우리 군(吾君)은 이때로써 군사를 이끌고 입궁하여 군측(君側)의 간신을 제거하고 돌고(咄固)태자를 세우지 않는다면 가히 국가로 하여금 근심을 없애고 오군(吾君)이 안전할 수 없습니다.” 달가(達賈)는 말하되 “내가 천하에 중시되는 까닭은 장의충군(仗義忠君)하기 때문이다. 만약 지금 스스로 역모를 꾀한다면 위로는 형왕(兄王)의 병을 더하고 아래로는 국민(國民)의 의를 저버림이니 나는 차마 할수 없다.” 선옹은 탄식하여 말하되 “다만 선(善)으로써 악(惡)을 도울뿐이니 저는 떠납니다.”하고는 마침내 처자를 거느리고 달아났다.
치갈(雉葛)의 신하 원항(猿項)이 기뻐하며 말했다. “안국군에게 선옹이 없으니 쉬워졌을 따름입니다.” 왕은 병이 매우 깊어지자 달가(達賈)를 부르도록 명하였다. 돌고(咄固)태자가 입내(入內)하였으나 우씨가 그를 저지하였다. 거짓으로 조서(詔)를 칭탁하여 달가(達賈)의 병권을 남김없이 우씨의 형제 평자(枰刺?)에게 옮기게 했다. 달가(達賈)의 신하 이경(以竟)이 달가(達賈)에게 간했다 “지금 왕의 병이 깊어 정사를 돌보지 못하는데 홀연 병권을 외척에게 옮기니 필시 속임수가 있는 것입니다. 청컨대 스스로 쥐고 있으면서 변황을 기다리소서.” 달가(達賈)가 말하되 “내가 병권 때문에 수후(嫂后)에게 밉보인 까닭이다. 만약 지금 주저하며 물러나지 않는다면 그 노여움을 더욱 크게 할 뿐이다.”하고는 즉시 인수(印綬)를 풀어서 넘겨주었다. 이경(以竟)은 통곡(哭)하며 “호랑이가 이와 발톱이 빠지면 사람들 모두가 잡아 묶을 수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왕은 달가(達賈)의 입내(入內)를 기다리며 여러번 재촉을 했으나 오지않자 마침내 “달가!”“달가!”하고 부르짖다가 붕하였다. 춘추 53세에 재위는 23년이었다.
우씨(于氏)는 이에 치갈(雉葛)을 세워 대맥대왕(大貊大王)으로 삼았다. 때는 수서(水鼠/임자-292)의 중추(8월)였다. (임자 3월에 문천(門天)을 태보(太輔), 상루(尙婁)를 우보(右輔), 가?방(稼?方)을 좌보(左補)로 삼았다)
치갈(雉葛)은 이에 우씨(于氏)를 태후(太后)로 삼고 연씨(緣氏)를 후(后)로 삼고, 5부(部) 37국(國)의 조하(朝賀)를 받았다.
3월에 달가(達賈)에게 죽음을 내리되 “안국군(安國君)은 오래도록 병권을 장악하면서 안으로 불궤지심(不軌之心)을 품고 당을 결성해 나라를 위태롭게한 까닭에 대의멸친(大義滅親)한다.”라고 하였다. 이경(以竟)은 달가(達賈)에게 출분(出奔)할 것을 권하였으나 달가는 말하되 “나는 형왕(兄王)을 따라 순사해 죽는것이 진실로 소원이다.”하고 곧 조용히 자진하니 사자(使者)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왕은 달가의 처 다씨(多氏)를 소후(小后)로 삼고 그 전처 음씨(陰氏)를 원항(猿項)의 처로 하였다. 음씨(陰氏)가 말했다. “나는 선왕(先王)과 안국군(安國君)의 대은(大恩)을 받았다. 이제 두 지아비의 상(喪)을 입어 빈소를 지키는 몸이니 다시 결혼할 수는 없다.” 원항이 협박하여 말했다. “네가 만약 나를 따르지 않는다면 마땅히 안국군의 모든 자식들을 죽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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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第十三世<西川大帝>紀 제13세<서천대제>기
帝, 初號<藥盧大王>, 諱<若友>, <中川帝>第二子. 母, 曰<椽>太后. 惟貫厚聰悟, 愛民好士, 國人愛敬之.
제의 초호는 <약로대왕>이고, 휘는 <약우>이며, <중천제>의 둘째 아들이고, 모친은 <연>태후이다. 성품은 오직 너그럽고 후덕하였으며 총기 있고 영민하였으며, 백성을 아끼고 뜻있는 인사들을 좋아하였기에, 나라사람{나라를 다스리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들이 그를 사랑하고 존경하였다.
(생략)
◎ 九年戊戌, 春正月, 上與后妃夜宴, 有霹靂之聲, 火光如狗飛入<咄固>太子寢殿. 太史<于先>奏曰; “<天狼星>落于宮中, 必生貴子. 是年十月, <乙>氏生<乙弗>, 五雲繞室而香. <乙弗>豊雋奇傑, 人多稱之.
四月, <羅>有暴風拔木. 十月, <濟>攻<羅><槐谷城>圍之, 甚急. <羅>, 以海湌<正源>領兵, 救之.
以<術>公主妻<穆秫>, <于術>出也.
○ 9년{단기2611년/AD278}무술, 춘정월. 상이 후·비 들과 밤에 연회를 하는 중에, 벽력같은 소리가 나면서 작은 개 모습의 불빛이 <돌고>태자의 침전으로 날아들었다. 태사 <우선>이 아뢰길; “<천랑성>이 궁중으로 떨어졌으니, 반드시 귀한 사람이 태어날 것입니다.”라 하였다. 이 해 10월에 <을>씨 가 <을불>을 낳았더니, 오색구름이 궁실을 감싸고 향기가 있었다. <을불>은 체구가 풍성하고 기이하고 뛰어나서, 많은 사람들이 칭송하였다.
4월, <신라>에서는 폭풍이 불어 나무가 뽑혔고, 10월엔 <백제>가 <신라>의 <괴곡성>을 공격하여 에워싸니, 형세가 심히 위급하였다. <신라>는 이에 해찬 <정원>을 시켜 병사를 이끌고 가서 이를 구하였다.
<술>공주를 <목출>의 처로 주었는데, <우술>의 소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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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성법맨 작성시간 07.09.08 그런데 전한무제의 태자가 38세로 무고의 옥에 걸려서 위험에 처할 당시에 이미 손자가 있었습니다. 54년 차이니까 전혀 허황되지는 않은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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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조선국왕 인종 작성시간 07.09.09 계산상으로는 문제가 없네요..중천왕 224년 서천왕 244년 돌고 264년 미천왕 27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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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라디오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7.09.10 을불대왕전은 8편으로 나뉘어 하모님이 해석하셨다가 중단되었습니다. 2~8편이 궁금하신 분들은 검색으로 찾을 수 있으니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허락없이 퍼온 거라 나머지는 올리기가 곤란하여 멈춥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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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을불 작성시간 07.09.11 에이 여기서는 무슨 말을 못하겠습니다 ..눈팅이나 하던지 나가던지 해야지 원...이런 식으로 댓글 문화가 달려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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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소호금천씨 작성시간 07.09.11 을불님 너무 언짢아 하지 마세요. 항상 사료적인 문제에서 단정적으로 주장하실때는 그에 준하는 인용사료나 근거적인 자료를 가지고 하시면 반론에 대한 최소한의 감정적인 논쟁은 피할 수가 있지요..님께서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