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주필산 전투에서나 임무형 전술 언급에서등을 제가 분석한대로를 고려한다면.. 실상 주필산 전투등에서나 1차 고당전쟁에서의 고구려군의 현장 야전지휘관의 재량권한은 거의 임무형 전술에서 언급하는 바로 지휘관의 임무에서의 자유행동의 부여가 매우 명확하다고 생각합니다. 우선적으로 1차 고당전쟁에서 그러한 사례를 보여주는건..
1. 고구려 요동방어선에서 함락되지 않은 고구려군 성들의 당군의 기동로 차단.
2. 주필산 전투에서의 고연수/고혜진의 선제타격급의 기습공격.(작전술 차원)
3. 요동성-안시성간의 당군의 이동로+보급로의 고구려군의 야간 기습.
4. 지속적인 고구려군의 역습.
총 4가지가 1차 고당전쟁에서 고구려군의 지휘관들의 형태에서 보는 임무형 전술에 해당하는 지휘관의 임무에서의 자유행동권한 부여가 매우 강한 성격을 띈다 봅니다. 이는 고구려군의 지휘체계가 매우 정밀하고 세밀한 군사제도및 지휘체계를 갖고있었다는 이야기도 함께 포함이 되는 셈입니다. 하나하나 나누어보면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1. 고구려 요동방어선에서 함락되지 않은 고구려군 성들의 당군의 기동로 차단.
1차 고당전쟁에서 당군은 요동방어선에서 전진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요동방어선의 고구려군의 네트워크 형태의 방어체계가 구축되어 있음과 동시에 중앙에서의 임무에 충실하게 움직였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요동방어선에서 함락되지 않은 성들에서는 지속적으로 기병대를 이용한 보급로를 수시로 공격한바 있습니다. 명령형 지휘체계라면 사실상 고구려군은 성에서 단 한발자국도 나가서는 안됩니다. 그들의 명령형 지휘체계에 따른 지휘관의 자유행동권은 억제됨으로 스스로 적의 보급로를 절대 공격할수 없는 셈이며 동시에 자유적으로 당군의 보급로가 수시로 봉쇄되는 일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은 좀더 봐야겠지만 아무리 평양성이나 국내성등에서 연개소문이 전쟁을 지휘한다고 해도 이는 분명하게 연락이 오고가는 것의 시간이 존재함으로 사실 고구려군이 그렇게 움직이는 체계였다면.. 당군은 보급로는 오히려 안정되어있어야 정상입니다. 수시로 보급로가 차단되지 않고 말이죠.
따라서 고구려군의 성들에서의 기병대의 존재는 공성전에서의 역습/적의 보급로 차단이나 배후 공격등을 고려한다면 이는 고구려성에서의 현장지휘관들의 임무부여에 따른 자유행동이 매우 활발하고 적극적이었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봅니다. 우선적으로 침략군이 왔으니 중앙의 임무는 성을 지키며 반격할때까지 대기하는 것이겠지만.. 거기에 따른 수시로의 적을 공격하라는 것또한 임무로서 나왔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습의 원칙에 따른 배후의 타격/보급로 봉쇄등의 자유행동에 따른 전술적 작전술적 활동은 전적으로 사실상 고구려군은 현장지휘관에게 전적으로 위임상태였다고 판단할수 있다고 봅니다.
2. 주필산 전투에서의 고연수/고혜진의 선제타격급의 기습공격.(작전술 차원)
아래 개념적에 의거해서 설명은 해봤습니다만.. 고연수/고혜진의 작전활동은 분명하게 작전술 차원에서의 거의 적극적 방어개념도 포함되지만 동시에 작전술 차원의 기습 선제공격도 해당합니다. 당군은 기본적으로 적의 전력을 파악하기 위해서 탐색전 목적으로 돌궐기병대 1천명을 동원하여 탐색전을 취한후 무엇인가를 결정하려고 하려고 한 모습을 볼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고구려군은 탐색전 직후 바로 기습의 원칙을 살려서 최대한 선제공격이라는 군사적 이득점을 보려고 했다는 점을 볼때 이는 분명하게 지휘관 재량이 어느정도인지를 볼수 있다고 봅니다.
15만 대군의 지휘관인 고정의의 전략은 분명하게 지구전즉 지연전에 해당하지만 결과적으로 방어전에 해당하는 적극적 방어개념의 선제타격개념 수준이상의 공격을 주저하지 않았을 것이라 봅니다. 이는 임무로서 없다고 고연수/고혜진이 결코 움직일수 없었다고 봅니다. 사극에서 드라마가 보면 현장지휘관이 중앙의 명령의 무시하는 결과가 있으나 이는 결코 실제에서는 사실 불가능한 일이기도 합니다. 1940년 2차대전에서의 서부전선에서 연합군의 현장지휘관들의 행동을 보면 고대만큼 철저하게 통제에 두는 군체제에서는 더더욱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고연수/고혜진은 작전술 차원의 기습의 원칙의 기동작전을 수행했다는 점에서 이는분명하게 임무상 그들에게 적의 예봉을 꺾는등의 공격임무가 주워졌다고 볼수 있습니다. 전략에서 아무리 방어전을 언급했다고 해도 방어에서는 반드시 역습이라는 분명한 공격이라는 개념이 존재합니다.
따라서 고연수/고혜진의 작전역시 임무에 따른 지휘관의 자유행동에서 부과된 작전형태이라는 점을 볼수 있다고 봅니다.
3. 요동성-안시성간의 당군의 이동로+보급로의 고구려군의 야간 기습.
당군이 안시성에 온 이후에는 요동성을 거점을 두고 보급로를 확보했습니다만.. 고구려군의 기습이 워낙 심해서 당군이 파수병들이 배치함으로서 안전해졌다는 기록이 있다는거 아실겁니다. 이는 고구려구은 이미 기습의 원칙의 최대한 살려서 적의 보급로를 수시로 봉쇄시켰다는 이야기인 셈이라 생각합니다.
기습의 원칙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얼마나 빠르게 적이 예측할수 없게 하며 사실상 주도면밀하게 진행되는 존재입니다. 적을 파악해야한다는건 기습의 원칙에서 중요원칙에 해당합니다. 분명하게 고구려군은 정보전을 최대한 활용해서 적을 파악했다는 점에서 또한 기습에서 지휘관의 창의적 발상과 주도면밀함에서 결정됨으로 이는 임무형 전술에서 고구려군의 지휘관의 재량권이 거의 동일한 수준이라는 점을 볼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습이 심했기 때문에 파수병들을 배치했다는 것은 결국 기습이 얼마나 자주 그리고 대담하게 또 주도면밀하게 이루어졌는지를 알수 있는 분야라고 봅니다.
결국 기습의 원칙에서 지휘관의 자유행동이 지속적으로 보인다는건 고구려군의 지휘관의 임무에 따른 자유행동권한의 범위가 매우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고 볼수 있는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1940년 2차대전 서부전선에서의 아벤에서의 롬멜의 단독작전에서의 활동에서 중요하게 본것이 바로 기습의 원칙이었습니다.
4. 지속적인 고구려군의 역습.
고구려군은 전쟁을 시작하면서 끝날때까지 지속적으로 역습을 가했습니다. 역습자체의 범위는 사실상 적극적인 방어개념에 해당합니다. 현재 한국군이 도입하고 있는 적극적 방어개념에서의 가장 강한 공격성향을 갖고있는 개념입니다. 여러가지 정황을 보면 고구려군은 끊임없이 역습하기 위해서 구원군을 파병하면서 적들과 싸워왔습니다. 대표적인 역습은 두가지로..
1. 요동성 전투에서의 4만 증원군.
2. 안시성 전투에서의 주필산에 고구려 15만 대군
이 두가지가 서적에 있는 대표적인 사례이며 1차 고당전쟁에서의 고구려군의 대표적인 방어전 수행에서의 역습이라고 할수 있다고 봅니다. 고구려군의 지속적인 역습은 당군의 발목을 매번 붙잡았을 뿐만 아니라 주필산 전투의 경우 아예 당군에게 대놓고 선제공격까지 할정도로 당군에게 심각한 위협을 주었습니다.
이러한 고구려군의 역습 역시 역습 자체는 신속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사실 효용을 보기 어렵습니다. 방어선을 뚫고 들어오는데 명령 기다리면서 일일이 통제상황에서 있다면 사실 역습하기도전에 부대 와해가 될수도 있는 셈이되죠. 아니면 적은 준비 다해놓고 있거나 말입니다. 대표적인 사례를 꼽는다면 1940년 서부전선에서 그유명한 됭게르크 철수의 기적을 만들어준 독일군의 정지명령에 해당합니다.
독일군의 정지명령은 사실상 됭게르크의 철수의 기적을 가능하게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2차대전에서의 전략적 패배를 이미 만들어버린 사례이죠. 당시 됭게르크의 방어선은 연합군 매우 취약했습니다. 독일군 기갑사단 기동로의 방어선은 연합군 2개 중대일정도였죠.. 시간을 3일 이상을 허비한 독일군은 재공격에 들어갔지만.. 그때는 2개 중대가 아니라 2개 사단으로 보강되어있는 방어선과 싸워야했습니다.ㅡ_ㅡ. 히틀러의 정지명령이 대단하게도 2차대전의 이미 독일의 전략적 패배를 불러왔던 셈입니다.
하지만 고구려군은 요동성 전투의 증원군이나 안시성 전투에서의 증원군은 연개소문의 명령에 의한 것이지만 명령 자체에서의 세부적인 상황까지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물론 좀더 기록이 더 나와야겠습니다만.. 그렇기 때문에 증원군은 지휘관의 임무에 따라서 행동했고 실제로 주필산 전투에서 고구려군의 행동만해도 현장지휘관의 재량권에 따라서 당군을 괴롭혔다는 점을 볼수 있는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결론.
고구려군의 당시 현장지휘관의 재량권의 자유행동이 매우 높은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할때 이는 고구려군의 지휘체계는 거의 임무형 전술과 비슷한 수준까지 와있었다는 셈이됩니다. 물론 명령형 전술등이 당연하게 강한 모습을 보였겠지만 고구려군은 지휘관에게 현장에서의 자유행동 즉 임무에서 필요한 모든 자유행동을 되도록이면 많이 부여함으로서 지휘관의 재량에 따라서 작전활동을 수행하려고 만들었다는 점을 볼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1차 고당전쟁때부터 고구려군은 현장지휘관에게 임무에 따른 자유행동권한이 강화되었다는게 사실이라면.. 그전부터 고구려군은 현장지휘관에게 임무에 따른 자유권한부여가 매우 성실하게 이루어졌다는 점을 볼수 있는 대목이 될 것입니다. 물론 고구려의 서적들이 나와야 되겠지만 말이죠. 아니면 지휘체계 자체에서의 고유권 차원에서의 활동일수도 있을수도 있습니다만..
1차 고당전쟁에서의 여러가지 상황을 본다면.. 고구려군은 현장지휘관에게 임무에 따른 자유행동에 의거한 지휘관의 재량을 매우 중시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