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소가 형이라는 기록은 삼국사기에 없습니다. 주몽이 죽었을 때 대소의 나이가 삼십대 중후반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대소는 무휼의 손에 죽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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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내용은 이도형님이 쓰신 내용의 일부입니다. 답글이 또 달린지 몰랐는데 이제 보니까 있더군요.
물론 님 말씀처럼 "대소는 주몽의 형"이라는 직접적인 표현은 등장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간접적으로 대소와 주몽의 나이차를 알 수 있는 대목은 있지요.
『三國史記』권13「高句麗本紀」제1〈始祖 東明聖王〉원년조(B.C 18)
<金蛙>有七子, 常與<朱蒙>遊戱, 其伎能皆不及<朱蒙>. 其長子<帶素>言於王曰 (후략)
금와에게는 일곱 명의 아들이 있었다. 그들은 항상 주몽과 함께 놀았는데, 그들의 재주가 모두 주몽을 따르지 못하였다. 그의 맏아들 대소가 왕에게 말했다. (후략)
장자(長子)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여기서 장자라는 것은 적자인지, 서자인지까지는 구분할 수 없는 표현이라 하더라도 최소한 금와왕의 아들들 중에서 누가 가장 나이가 많은지는 알 수 있게 해 줍니다. 물론 금와왕의 일곱 아들에 주몽이 포함되어 있지 않고 있기 때문에 주몽이 그 일곱 아들들보다도 나이가 더 많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님의 주장은 지금 이러하지요.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추정일 뿐이지, 님의 추정에 어떠한 문헌사료 한단락, 한단어도 근거로 제시될 수 없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문헌상 문맥으로 살펴본다면 대소가 7명의 왕자들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았으며 더불어 주몽보다도 나이가 많다고 추정할 수 있는 논리적인 전개 정도는 가능합니다.
대소와 그 형제들까지 합쳐서 금와왕에게는 7명의 아들이 있습니다.
일단, 금와왕이 몇명의 부인이 있었는지는 알지 못하며 각각의 부인들에게서 몇명의 아들을 낳았는지도 모릅니다. 또한 쌍둥이가 태어났을 경우도 있을 것이며 2~3명의 부인에게서 몇달간의 시차를 두고 자식들이 태어났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거기다가 딸이 있었을 가능성까지 더한다면 가능성의 여지는 무한대로 늘어날 수 있습니다.
이런저런 가능성을 모두 절충한다고 했을때 대소는 금와왕의 첫째 부인이 낳은 장자, 물론 적장자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뒤에 유화부인이 주몽에게 "國人將害汝. 以汝才略, 何往而不可?", 즉 "나라 사람들이 장차 너를 죽이려 한다. 너의 재능과 지략이라면 어디간들 살지 못하겠는가?"고 말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여기서 국인(國人)이란, 부여의 일반 백성들을 언급할 수도 있지만 조정의 중신들, 즉 국가를 운영하는데 실질적으로 관여하는 대신들을 의미하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했을때 이미 나라 전체가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결국은 이방인 취급하는 주몽의 존재보다는 금와왕의 적장자였을 대소를 지지하고 있었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이런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유화부인은 그렇게 걱정을 했을 것이며 결국 주몽을 따라나선 집단도 극히 소수였을 겁니다.
게다가 금와왕이 유화부인을 데리고 와서 다른 부인들을 얻었다는 기록이 없고, 주몽의 탄생 뒤에 금와왕의 일곱 아들을 언급하였다고 해서 유화부인이 주몽을 먼저 낳고 일곱 아들이 났다고 보기에도 무리가 있겠지요. 이는 문맥상 자연스럽게 해석한다면 이미 금와왕에게 아들(몇명인지 모르지만)들이 있었고 주몽은 그 아들들보다 뒤늦게 유화부인의 배속에서(알이든, 배든) 났다고 봐야 무방할 것입니다. 그렇게 봤을때 주몽이 전체 8명의 아들들 중에서 몇번째 아들이었을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대소보다는 동생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지요.
더불어 추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근거가 있으니 바로 유화부인의 장례에 대한 기록입니다.
『三國史記』권13「高句麗本紀」제1〈始祖 東明聖王〉14년조(B.C 5)
十四年, 秋八月, 王母<柳花>薨於<東扶餘>. 其王<金蛙>以太后禮, 葬之, 遂立神廟. 冬十月, 遣使<扶餘>饋方物, 以報其德.
14년 가을 8월, 왕의 어머니 유화가 동부여에서 죽었다. 그 곳의 왕 금와가 그녀를 태후의 예로 장례지내고, 그녀의 신묘를 세웠다. 겨울 10월, 사신을 부여에 보내 토산물을 주어 그 은덕에 보답하였다.
이 기록을 보면 주몽이 부여를 탈출해 고구려를 세우고 나서 유화부인이 죽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목되는 것은 그녀가 태후의 예로 장례지내졌다는 것입니다. 동부여의 왕인 금와왕에게 있어 엄밀히 말하면 유화부인은 첩일 뿐, 본부인이 아닙니다. 즉, 태후가 아닌 비빈들의 예에 따라서 장례를 지내야만 옳은 것이겠지요. 즉, 이 기록은 그녀가 태후의 신분이 아니었음을 반증하는 기록입니다.
그럼에도 그녀를 태후의 예로 장사지내고 부여에 그녀의 신묘까지 세웁니다. 여기에는 2가지 추론이 가능합니다.
1. 본부인, 즉 부여의 태후 사망 이후 태후 자리가 비어있었기에 유화부인의 태후로의 장례가 가능했다.
2. 태후가 살아있었지만 고구려와의 대외관계를 고려해 예외적으로 태후의 장례로 치렀다.
이 2가지가 모두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은 하고 있지만 어찌했든 결론적으로 유화부인은 금와왕의 첫째 부인이 아니라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주몽을 낳은 유화부인 이전에 여러 부인들이 있었고 거기서 7명의 아들을 얻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일이 걸렸을텐니 주몽이 다른 6명의 동생들보다는 나이가 많을지는 모르나 최소한 대소보다는 나이가 적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대소가 전쟁터에 나갔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주몽보다 어리거나, 그와 비등한 연령층으로 파악하는 것에 굳이 반대할 마음은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답글에 썼듯이 왕인 대소가 죽었음에도 부여군은 결국 고구려군을 격파하고 대무신태왕은 고구려로 돌아와 황급히 전후조치를 취합니다.
『三國史記』권14「高句麗本紀」제2〈大武神王〉4년조(21)
王旣至國, 乃會群臣飮至曰: “孤以不德, 輕伐<扶餘>. 雖殺其王, 未滅其國, 而又多失我軍資, 此孤之過也.” 遂親吊死問疾, 以存慰百姓.
왕이 본국으로 돌아와서 여러 신하들을 모아놓고 음지의 예식을 거행하면서 “내가 부덕하여 경솔하게 부여를 공격하였다. 비록 그 왕을 죽였으나 그 나라를 멸망시키지는 못하였으며, 또한 우리 군사와 물자를 많이 잃었으니, 이는 나의 잘못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곧바로 전사자를 직접 조상하고, 부상당한 자를 문병하여 백성들을 위로하였다.
대무신태왕 스스로 고백하고 있듯이 고구려는 약간 무리수를 둔 부여 정벌전에서 대패하게 됩니다. 앞서 언급했지만 신마 거루와 부정을 잃어버렸고, 병사들은 먹을 것이 없어 사냥으로 배를 채울 정도로 고구려군은 대패를 하게 되죠. 이를 통해 본다면 대소가 나이가 많은 왕으로서 그가 직접적인 전쟁을 지휘했던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가 왕이었고 왕이 친정군을 이끌고 나갔는데 그 왕이 전사하거나 포로로 잡힌다, 그럼에도 전쟁에서 승리한다? 라는 도식이 성립 가능한지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대무신태왕의 말대로 고구려는 적극적으로 전후조치를 취할만큼 국력의 손실이 컸으며 부여왕이 죽었음에도 부여군의 피해는 생각보다 적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대강 이런 근거들을 통해서 저는 대소가 주몽보다 나이가 많았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것도 상당히 많이 말이죠. 물론 이런 제 추정은 이 모든 기록들이 믿을만하다는 전제조건이 밑바탕된 다음에 가능한 것이니까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현재까지는 이 정도 근거나마 남아있는 것이 다행인 듯 싶네요.
그렇게 봤을때 님의 주장처럼 대소의 나이가 삼십대 중후반이라는 것은 어떤 근거로 그렇게 말씀하시는지 이해가 안 갑니다.
또한 대소가 괴유의 칼에 목이 달아난 것은 대소 나이의 여부를 떠나서 역사적 사실이며 이때는 대무신태왕때 일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에 '그렇다면 대소는 무휼의 손에 죽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라고 한 부분 역시 이해가 안 갑니다. 대소의 나이가 꼭 삼십대 중반이여야만 이 역사적 사실이 맞는다는 논리 전개는 조금 수정의 여지가 있다고 보이는군요. 대소가 삼십대 중반이든, 80대 고령이든 무휼, 대무신태왕 휘하의 장수 괴유의 칼에 목이 달아난 것은 사실이니까요.
이상입니다. 저 역시 대부분 추정에 근거했듯이 서로간에 어느것이 맞다고 할 수만은 없습니다. 다만, 어느 누가 더 설득력 있게 자기 견해를 피력하느냐의 차이 뿐이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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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부여, 발해, 고조선방에 가보니까 예전에 제가 썼던 글이 있네요.
그리고 그때도 이도형님과 똑같은 주제로 얘기를 했던 적이 있었네요.
대소가 형이라는 것은 동화나 소설에 근거없이 등장하는 얘기는 아닌 듯 합니다.
문헌에 나오는 長子라는 문구는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니깐요.
대소가 당시 주몽의 손자에 죽었다 해도 이상할 것은 없습니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그에 걸맞는 추론의 근거가 필요합니다.
참고로 전 태조왕, 차대왕, 명림답부의 나이는 모두 100세 이상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후대 사가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추론이지만...그 근거는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장수태왕의 나이는 실제 그대로로 믿습니다. 그에 걸맞는 근거도 있고요.
하지만 대소가 주몽보다 나이가 어리고 주몽이 더 나이가 많다고 볼만한 근거는 없습니다.
그 근거를 제시해주시면 아마 저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다 수긍을 할 듯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