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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토론방

고려서기 혹은 삼대경 (3)-유리명왕: 의심스런 明

작성자밸틴|작성시간09.03.05|조회수296 목록 댓글 0

 고구려 신화에서 한가지 이상한 것이 있다. 바로 유리명왕이다. 이유인즉 유리명왕은 삼국사기에서 겉보기에는 明이란 글자에 걸 맞는 업적을 많이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여자들에 대해서는 제 맘대로 못할뿐더러, 대소에게 고개를 숙이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진실이 어땠느냐와는 별개로 유리명왕은 고구려인들에게는 분명 明王이라고 칭송받고 있었다. 광개토호태왕비에서 顧命世子儒留王, 以道興治, ‘(추모왕의)뜻을 이어 받은 세자 유류왕은 도를 이르켜 다스렸고’라 했기 때문이다. 

 道,  道를 일으켜 다스렸다....

 광개토호태왕비에서도 칭송을 받은 대무신왕은 호칭에 걸맞게 삼국사기에서 일관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런 원리를 이용해  삼국사기에 남은 유리왕의 사적에 明이란 글자에 어울리는 어떤 일관성의 흔적 찾아보겠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광개토호태왕비에 적힌 道가 뭔지도 대충이나마 파악해 보겠다.

 

 

 유리명왕의 기록은 어느 하나가 주류라고 하기엔 너무나 많은 이야기가 공존한다. 추모왕과 대무신왕의 기록에서 보이는 일관성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1. 여자들이야기-치희와 화희, 그리고 황조가 

 2. 선비정벌-부분노의 지혜

 3. 돼지와 국내성

 4. 해명태자 

 5. 기타

 

 

 그렇지만 유리왕의 기록에도 일관성은 있다. 일단 유리왕이 나라의 안정을 위해 노력했다는 것이 보이기 때문이다. 기록에서 그는 나라의 안정을 위해 선비족이 노략질 해오는 걸 걱정했고, 이를 부분노의 지혜 덕에 해결했다. 부여가 강한 걸 알고는 대소에게 일단 고개 숙였다. 잃어버린 제사용 돼지를 찾는 과정에서 국내성으로 천도했다. 부여와의 관계와 해명태자와의 관계에서처럼 제 아들을 죽일 정도로 이웃나라와 관계안정에 힘썼다. 특히 국내성 천도에서 설지는 “신이 돼지를 쫓아 국내 위나암에 이르니 그곳은 산수가 심험하고 땅은 오곡에 알맞고, 산짐승(麋鹿)과 물고기(漁鼈)가 많이 나옴을 봤나이다. 왕께서 만일 거기로 국도를 옮기신다면 단지 백성들의 이익(民利)이 무궁할 뿐 아니라 병난을 피하실수 있습니다.”라고 말해 유리왕이 천도를 하도록 설득했다. 또한 해명태자의 이야기에서 유리왕은 해명을 꾸짖을 때 “내가 천도를 한 것은 백성을 편안히 하여 나라의 일을 굳게 하려함이다. 그런데 너는 나를 따라오지 않고 힘센 것만 믿다가 이웃나라와 원한을 맺었으니 자식된 도리가 이와 같을 수 있냐”고 말했다 

 

 

 정리하면 유리왕의 기록 속 일관성은 다음과 같다. 

 1. 주변국과의 갈등을 최소화한다. 

 2. 백성들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데 전념한다.

 이는 대체적으로 맞는 것 같다. 광개토호태왕비에서 “掃除□□, 庶寧其業. 國富民殷, 五穀豊熟.”-“나쁜무리를 모두 쓸어버리고, 백성들이 생업에 종사하며 국가는 부유하고 백성은 윤택하고 오곡이 풍성히 익게 했다”고 광개토호태왕을 찬양한 것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더 나가면 유리왕이 나라를 다스릴 때 쓴 道, 유리왕이 추모왕으로부터 이어받은 도가 ‘우선 백성의 삶을 윤택하게 해 나라를 부강하게 한다. 전쟁은 그 다음에 할 일이다’라고 짐작 할 수 있다.

 한편 치희와 화희이야기는 이야기의 설화적 요소, 황조가라는 노래의 배경이란 점에서 明이란 글자와는 별개로 신화에 포함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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