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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당유고에 대한 궁금증

작성자이도형| 작성시간09.03.18| 조회수333|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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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정성일 작성시간09.03.19 일본인 권등성경이 쓴 팔린통빙고라는 책에는 제목을 밝히지 않고 단순히 ‘傳曰/世曰/一書云’이라 하는 곳도 있고, 중국 사료들 인용도 있지만, ‘三韓記/韓史/新羅志/任那志/諸蕃志/百濟志/高驪記/高驪志/日羅傳/聖德太子傳/新羅傳說(曰)/蝦夷傳...’등 알 수 없는 사료들이 줄줄이 인용되고 있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 정성일 작성시간09.03.19 이 말이 무슨말이냐면 일본 황실서고에는 남당이 본 책보다 더 A급인 사서가 있다는 것입니다. 남당이 본 책들은 B급으로 출처를 알 수 없는 책으로, 절친한 일본인이 자랑삼아 보여주었을 것입니다. 남당이 필사한 것처럼 뒤죽박죽 섞여 있었고, 체계도 없었던 것이죠. 어느 것이 같은 사람이 쓴 것인지 알수도 없는 그런 종류의 사서가 많았을 것입니다. 님이 말하는 것처럼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이지만, 한국인에게 내어줄 사서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 정성일 작성시간09.03.20 저는 한문의 해독과 해석을 위해 날을 꼬박 샌것이 여러날입니다. 사명감과 역사의식이 있는 사람은 그럴 수 있죠. 사실 근무시간에는 잡무에 쫓기느라 작업하는 양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엔 일본인들이 집에 가서 하라고 적정량의 필사량을 맡기고 회수하였을 것입니다. 수시로 남당의 집에 불이 몇시에 꺼지는 확인하고 수시로 일본이 남당의 거주지에 나타났을 것입니다. 남당은 매일같이 날을 새가며, 2부를 필사하여 집안의 어느곳에 감추어 두었을 것입니다. 사실 처음의 필사는 해독하는 작업이 먼저라 3시간이 소요되지만, 두번째의 필사는 이미 판독이 된 상태라 1시간이면 끝이 나죠.
  • 답댓글 작성자 정성일 작성시간09.03.20 그리고 남당이 필사를 위해 가져가는 종이도 일일이 확인했을 것입니다. 남당이 다른 종이에 쓰지 못하도록 종이라고 생긴 것은 가져가버리는 못된 짓도 했겠죠. 남당의 필사본을 살펴보면 궁내성의 것도 있고, 원고지도 있고, 심지어 뒷면에 어떤 다른 내용이 적혀 있는 것이 보입니다. 아마도 파본까지 제출을 요구당하였을지도 모릅니다. 아마도 사무실에서 쓴 것과 집에서 쓴 것이 자료의 질적인 차이가 있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남당이 필사가 가능했는지의 여러 경우의 수를 추측해 본 것입니다.
  • 작성자 소호금천씨 작성시간09.03.20 남당유고가 스스로 창작된 것이 아닌 필사된 것에 무게를 잡는다면 단순히 그냥 버려 둘게 아니라 화랑세기 필사본 처럼 제대로 해석되어 철저한 검증작업과 사료비판등이 이루어지고 난뒤에 소설로써 문학적인 가치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누가 쓸대없이 호작질해놓은 것을 우리가 마치 정사인 것 처럼 착각 하는 것인지?를 판단되어야 할 문제라고 봅니다.
  • 답댓글 작성자 정성일 작성시간09.03.20 제가 남당유고의 진정성 여부는 신라사초에 등장하는 껴묻기 한 여러유물의 이름과 사망원인, 사망 당시의 나이, 키, 사망의 해, 순장된 사람들의 나이등을 통해 밝혀질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신라왕들의 시신에 대해 더 관심이 많습니다. 도대체 자료를 알려주는 곳이 없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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