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태종과의 전투당시 고구려 최전방 접적요새요,
많은 성(城)들 중 가장 전략적으로 중요했던 요동성은 어디인가?
"태종은 요수를 건너자 가교를 철거토록 명하여 병사들이 승전의 결의를 굳게 하도록...이적(이세적)은 군사를 이끌고 요동성을 공격중이었으며....태종은 친히 기병 1만을 이끌고 이적과 합세하여 성을 포위...성내의 가옥이 모두 불타고,죽은 자가 1만, 병사 1만을 포로로 잡았다.
그 성에 요주(遼州)를 설치 하였다."-----구당서 고구려전
요사지리지(遼史地理志) 에서도 당태종이 함락한 고구려 요동성이 요주(遼州)라고 했는데,그 를 증빙하는것이 1270년에 석판에 새긴 "거란지리도(契丹地理圖)"이다.
산서성지도(태원시 좌측 아래에 좌권현이 있다.
산서성지도(좌권현이 요주로 표시되어 있다)
좌권현지도(좌권현 아래에 청장하가 흐른다, 청장하는 고대 요수이다)
좌권현의 지도(당태종은 요수를 건너 그날로 요동성을 포위하였다.)
송시대 추리도에 표시된 요주가 있고 아래에 하류가 있다.
요주가 산서성 태원시의 좌측아래에 있으니 우측 상단쪽의 통주는 현재 북경시 통주구이며 북경좌편을 흐르는 영정하가 압록강이다. 거란의 2차침입시 강조는 군사를 이끌고 통주에 진을 쳤으며 압록강을 넘어온 거란을 막기위해 통주남쪽의 삼하쪽으로 내려가 거란과 대치하였다 기록되어 있다.
요주아래에 하류가 있고 옆에 기산이 있다. 요수는 기산에서 나온다고 했다.
또한 요주아래에 노란색으로 표시한 택은 요택이다.
당태종이 고구려를 침입후 요택을 지나 요수를 지나서 그날에 요동성을 포위하였다고 했으며 요동성 함락후 요주로 개명하였다고 한다.
요주가 요동성이며 요주는 현재 산서성 좌권현이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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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카오스 작성시간 09.08.26 음...좋은 지적인 것 같습니다...별미르님의 글에 조금 더 보탠다면...遼東城이란...근본적으로 '遙水의 동쪽'이 아니라 '遙(遼)라는 지명의 동쪽'에 있는 城을 말하는 것인데,...그 '遼(遼)'라는 곳이 현,태행산맥의 서쪽지역 한가운데 있으니 당연히 遙東城이 현,산서성에 있어야 말이될 것입니다...그런데, 후대 사가들이 이 요동성을 '요수의 동쪽'으로 왜곡함으로서 그 후대에는 요동성이 현,요하의 동쪽으로 억지 비정됨으로서 우리역사가 이렇게 뒤엉키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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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카오스 작성시간 09.08.26 그래서 여기에서 '遙(遼)水'와 '遼河'와 '潦(=潦水)'가 서로 어떻게 다른지를 구분할 수 있어야만 동아시아의 전체적인 고대사가 제대로 보이게 될 것입니다...[참고 : '潦'는 遙(遼)라는 곳에서 발원하는 물을 말하는 것입니다.(혹시 마지막 지도의 요주 좌하쪽에 있는 漳水가 潦(潦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되지만...실제의 위치와는 조금 다를 수도 있으므로 매우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봅니다)]...그리고 현,서요하 중하류를 (한 때의) 압록강으로 보신 것은 아주 정확한 판단입니다만, 이것도 2~3번 이동된 결과이니 참고로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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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카오스 작성시간 09.08.26 또한 '압록水'는 그 물(水)의 사용목적상 언제나 皇城과 인접된 곳에 있었던 '강물(水=water)'이어서 기본적으로 '요수'와는 무관한 것이었습니다만...이 '요수'를 '압록수'와 같은 것으로 만듦으로서 서토(중국)국가들의 강역이 자동빵으로 천여리를 동진하게 되는 것이므로 '요수=압록수'가 동아시아 역사왜곡의 요체가 되는 것입니다...그러다가 결국 또 몇번의 왜곡을 거치면서 요수는 현,요하에 남고 압록수는 현,조-중국경선(압록강)까지 물러나게 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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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용만 작성시간 09.08.27 지도가 언제 누가, 어떤 시기를 그렸는지에 대한 검증도 없고, 과거의 지명이 현재 지명과 어떻게 변했다는 설명도 없이, 단지 지도상의 이름이 같다고 지명을 고찰하는 것은 신뢰성이 전혀 없습니다. 이런 지도만으로 따지면, 손권의 오나라는 지금의 강원도 강릉 땅을 포함하게 되며, 안동 도호부는 경상도 안동에 있다거나, 경상도 상주 등이 다 중국 땅이라는 중국의 극우네티즌의 반격에 대처할 방법도 없게 됩니다. 지명 고찰은 당시 상황에 대한 면밀한 검토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사서를 뒤지고, 여러 정황들을 살피고, 지명의 선후 변동과정까지 다 따져야 하는 복잡한 과정이 필요합니다. 앞으로 이런 글들을 과감히 삭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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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밝은눈 작성시간 09.08.27 글쓴이를 위해 첨언합니다. 아래에서 두번째 지도 오른쪽 밑을 보시면 압록이 있습니다. 글쓴이가 말하는 압록과는 다른 곳에요. 당 태종은 요수를 건너서 주필산에서 고구려와 싸웠는데 압록을 건너기 전이었지요. 그런데 지도를 보면 주필산은 글쓴이의 압록을 건넌 다음이니 글쓴이의 압록은 고구려의 압록일 수가 없습니다. :-) 또, 아래에서 첫번째 지도에 나온 요주는 신당서 지리지 하동도에 나오는 요주입니다. 요동성을 비롯한 고구려 땅은 이와 달리 하북도 - 정확히는 하북도에 설치된 기미주로 되어있습니다. 신당서 지리지 하동도에 관련된 부분을 읽어보시면, 요주낙평군 등등 위 지도에 나온 지명이 다 나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