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멀리 중앙아시아에 자리하고 있는 터어키가 극동의 한국을 형제국으로 인식하는 문제에 대해서 늘 의문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번 역사스페셜에서 연개소문의 외교술을 알게 되면서 어쩌면 고구려와 돌궐은 우리가 알고 있는 면보다 훨씬 더 끈끈한 형제국으로 인식하지 않았나 싶거든요. 중국이라는 거대한 세력에 맞서서 고구려와 돌궐은 언제나 연합전선을 펼치며 운명공동체라는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고 여겨지거든요.
돌궐의 후예를 자처하는 터어키족은 끈끈한 형제국이였던 고구려에 대해서 서쪽으로 이동하면서도 추억하고 있었던데 비해서 우리나라는 고구려와 발해의 멸망과 동시에 돌궐에 대한 추억을 잊어버리게 되었고, 더욱이 신라와 고려, 조선을 거치면서 중화사상에 세뇌되어 북방민족들에 대한 오랑캐관을 가지게 되면서 돌궐에 대한 기억을 완전히 상실해 버렸다고 여겨지거든요.
터어키는 조상들로부터 전해들은 한국(고구려)에 대한 형제의식을 가지고 있다가 한국전쟁으로 위기에 빠진 한국을 구원하고자 많은 병력을 파병하는 원조를 아끼지 않았다고 여겨집니다.
한국사속에서 고구려의 멸망과 더불어 중국독의 폐해로 인하여 한국사의 역대왕조들은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배후세력을 잃어버리고 한반도에 갖혀서 중국에 굴종하며 사는 오욕의 역사를 만들어 내었다고 여겨지네요.
고구려 연개소문시대는 어쩌면 중국을 위협하고 제압할 수 있었던 마지막 한국사의 극성기였다고 사료되는군요.
다음검색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역사님 작성시간 09.11.03 저는 도리어 삼국시대 말기의 당나라에 대해 너무 크게 부풀려 있는 역사관이 문제로 보이군요. 사실 근대 이전까지 서쪽 내륙왕조사에서 가장 큰 규모와 강력한 군대는 다름아닌 수,당 초기 시기인것은 맞지만 수,당의 일원적 세계관은 역사적 흐름에서 보면 한족 역사에서 가장 큰 우를 범한 사건이라고 봅니다. 아시겠지만 수나라 이후의 고구려처럼 다원적 세계관이 아닌 일원적 패권주의의 팽창은 고구려와의 대전으로 망했고 당나라 역시도 고구려와의 대전이나 이후 3여년이 안된 시점에서 만주와 평양일대에서 일어난 고구려 부흥 세력들에 의해 당나라의 군사력과 국력은 끊임없는 손실을 입게 됩니다.
-
답댓글 작성자역사님 작성시간 09.11.03 이런 상황에서 토번등 주변 세력의 성장을 야기시키고 결국 당나라 중기는 이런 당나라 조정의 국력 저하로 인해 거의 유명 무실해지는 시기로 실제 국제 사회에서 그 힘은 초기와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약해집니다. 그러다 보니 발해가 거대해지는 것을 막지도 못했고 신라는 동북아의 해상 무역을 장악하며 번성합니다. 내부적으로 당나라는 그런 조정의 현저한 체력 저하로 절도사제도라는 악수가 이후 이정기의 제나라등 세금도 내지 않는 독립된 번국들의 거의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하는 시대 상황으로 흐르게되죠. 이는 결국 이후 송나라시대로 가면 군사력 약화의 한 계기를 마련합니다. 결국 요나라와의 굴욕적 전연의 맹이나 이후
-
작성자역사님 작성시간 09.11.03 금나라에 의해 1127년에 송나라 수도 개봉이 함락되며 휘종, 흠종 포로로 끌려가는 <정강지변(靖康之變)>이라는 한족에게는 치욕적 역사의 수레바퀴가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금나라는 이후 100여년을 북방의 패자로 대륙을 지배했고 이후 몽골의 원나라에 의해 강남까지 흡수되며 한족은 최하층 노예층으로 전락해버립니다. 송황제의 송환을 위해 송나라 사람 <홍호>라는 이가 금나라에 갔다가 억류되어 10여년의 생활을 적은 글이 <송막기문>이라는 책입니다. 학계에서도 나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서지요
-
답댓글 작성자광개토태왕 작성시간 09.11.07 역교론 책의 동아시아 관련 논문에도 역사님의 주장과 비슷한 대목이 소개되어 있더군요. 고구려, 발해의 멸망은 결과적으로 북방 유목, 수렵 세력을 통제할 '북방의 정주민' 세력의 약화로 이어져 거란, 여진 제국의 실마리를 제공했고, 나아가 중국사의 재앙으로 작용했다는 식의 내용이었는데, 상당히 흥미로웠습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자승자박이었달까요.
-
작성자현무 작성시간 09.11.12 국제관계는 정(情)보다는 국익과 양국간의 이해관계가 더 우선입니다. 저는 돌궐과 고구려는 끈끈한 형제국이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단지 우호적인 외교관계를 지속적으로 맺고 있었다는게 더 타당하다고 봅니다만.. 어쨌든 거대해지는 중원세력을 견제하기 위해서 그 관계를 적절히 이용했고 당시 고당 전쟁 때에도 돌궐은 고구려의 외교적 부탁이 자신들의 실리와 맞아 떨어졌기에 허용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돌궐에게는 고당전쟁 사이에 중원을 칠 수 있는 기회가.. 그리고 고구려는 돌궐을 이용해서 적의 배후를 치게끔 해서 전세를 역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 즉 서로가 Win-Win 하는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