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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락 원년(永樂元年)

작성자정성일| 작성시간10.03.13| 조회수400|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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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明治好太王 작성시간10.03.13 오타가 있네요. 고국원왕-> 고국양왕^^;
  • 답댓글 작성자 정성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0.03.13 수정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 작성자 한단인 작성시간10.03.14 글쎄요. 저로써는 기년 상의 모순을 설명하고 싶어하던 남당의 소설적 장치라고 밖에는... 고국양왕이 태상왕으로 물러났다면 그정도의 정치적 사건이 삼국사기에 기록되지 않는게 더 이상한 일일텐데요. 사실 기년 기록 방법이 두가지가 있다는 것을 사학 전공하는 사람 외에 아는 사람이 적은게 현실 아닙니까? 박창화가 그걸 몰랐거나 알았다더라도 더 그럴싸해보이기 위해 저런 장치를 만들어 냈을 것 같군요.
  • 작성자 정성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0.03.15 한단인님//
    광개토대왕릉비와 삼국사기 고구려본기를 비교해보면 광개토대왕이 왜를 공격한 기록이 빠져 있는지는 궁금하지 않으신지요?
    광개토대왕비에는 신라가 구원요청을 하여 출정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서쪽 모용씨가 아직 강성함에도 불구하고 신라를 구원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요?
    한단인님이 남당유고를 부정적으로 생각하시는 마음이 좀처럼 변화하기는 힘드시겠지만 제가 보기엔 남당유고는 좀 그럴싸 해보이는 정도를 넘어선 사서이지요.
    또 남당유고를 진서로 가정 먼저 인정해주는 분들은 역사학 전공교수님일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 정성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0.03.15 광개토대왕비에는 광개토대왕이 신라를 구원하여 병사5만을 일으킨 것이 영락10년의 일이고 고구려본기의 광개토왕 9년의 일이죠.
    광개토대왕이 신라를 구원하기 위해 왜를 토벌하였다면 서쪽의 공백은 불보듯 뻔한 일이고 모용씨가 고구려의 빈틈을 공격할 일은 예상된 일이죠.
    남당유고는 이런 점까지 정확히 간파하고 있으며, 김성겸 선생의 고구려사초만 연구하다 보면 남당유고의 다른 기록이 있다는 점은 간과하게 됩니다.
    저는 이곳에 유능한 젊은 분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이 카페에서 좀 더 많은 일을 하실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 귀수 작성시간10.03.15 광개토왕이 후방의 강력한 모용선비(후연)을 냅두고 임나가라 원정을 떠난 이유는 ①백제가 가야,왜를 움직여 신라를 침공한 근본적인 원인이 고구려에 있음. ②노객선언 받아낸것 만으로는 백제에 결정적 타격을 주지 못해, 임나가라를 타격하여 백제의 동맹을 붕괴시키기 위해 ③신라 복속 강화. 정도가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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