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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루 묘지명에 나온 염모의 활동시기

작성자明治好太王| 작성시간10.07.01| 조회수665| 댓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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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김준수 작성시간10.07.01 저도 개인적으로 동의합니다. 모용선비 관련 논문을 쓸 때 저도 제기했던 부분입니다만 당시 '복심의 우환' 거리가 될 수도 있었던 산서성의 남흉노에 대해서도 방임으로 일관했던 임금이 세조 사마염입니다. 그랬을진대 아무리 당시 우호국이라지만 부여 문제에 깊숙이 간여했다함은 어폐가 있지요.
  • 답댓글 작성자 明治好太王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0.07.01 기회되면 김준수님 논문도 봐야 겠네요, 좋은 정보 감사드립니다.^^
  • 답댓글 작성자 세머리매 작성시간10.07.08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저도 이번에 미천왕 글쓰면서 김준수님 석사학위논문 인용했어요. 어쩐지 눈에 익더라구요. 지금까지 못알아봤네요. 신기하기도 하고 반갑습니다. 많은 공부가 되었어요.
  • 작성자 신농 작성시간10.07.01 새벽녘까지 답변글을 써주실 줄은..;; 제 질문으로 인해 시작된 일인 만큼 제 불찰입니다(저도 잠을 청하긴 했는데, 동이 트는 것을 보고서야 겨우 잠이 들었습니다ㅜㅜ). 그리고 김준수님의 논문에서 해당 부분을 찾아보았습니다. 답변을 남겨주신 두 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 답댓글 작성자 明治好太王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0.07.01 아닙니다. 저도 모처럼 다시 해당 시대 살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야말로 감사드립니다.^^
  • 작성자 가라모리스 작성시간10.07.01 미천왕대에 수실촌 사람 염모가 있었는데, 혹시 그가 염모와 동일인물은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 明治好太王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0.07.01 미천왕 수실촌 사람은 재모(再牟)로 알고 있고, 모두루 묘지명의 정황상 미천왕대는 맞지 않는 듯 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 와카타케루 작성시간10.07.02 참고로 남당유고 고구려사초의 미천왕대 기록에서도 염모가 등장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삼국사기 미천왕대 재모의 오기인 것이 확실해서(고구려사초 미천왕대 기록의 염모가 재모와 똑같은 역할을 하는데,염모의 염자는 冉으로, 재모의 再자와 혼동한 모양입니다.), 고구려사초 진서 주장의 고고학적 뒷받침이 되지 못하지요. 구리넷의 어떤 분은 고구려사초 진서 주장의 고고학적 뒷받침으로 염모 기록을 들고 있던데, 좀 더 신중한 검토를 하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따릅니다.
  • 답댓글 작성자 와카타케루 작성시간10.07.02 잘못된 정보가 있어 지적해드립니다. 수실촌 사람이 염모 또는 재모인것이 아니라, 수실촌 사람은 음모이고 동촌 사람은 재모입니다. 음모는 을불의 고용자이고 재모는 을불과 함께 소금장사를 한 사람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 明治好太王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0.07.02 아, 감사합니다.^^
  • 작성자 와카타케루 작성시간10.07.02 중국의 경철화가 모두루 묘지명을 새롭게 판독하여 몇 자를 보충한 모양인데 참고해보시길 바랍니다.
  • 답댓글 작성자 와카타케루 작성시간10.07.02 우리 카페에서 '경철화 모두루' 라는 키워드로 검색해보니 큰 도움이될만한 글이 두개나 뜨는군요. 모두 읽어보시고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답댓글 작성자 明治好太王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0.07.02 아, 실은 저도 염모 검색하면서 보고, 고구려발해연구회 가서 해당논문 다운 받아 봤었는데, 아직은 좀 이른 감이 없지 않을까 해서요. 부여 한자표기도 광개토태왕비하곤 다른 것도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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