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당서(新唐書)』 동이전에는 고구려 여자들이 건괵(巾幗)이란 헝겊 장식을 머리에 맸다는 기록이 나온다. 『삼국연의』에는 유비 사후 북벌에 나선 제갈량이 상대인 사마의가 싸움에 응하지 않자 그에게 여자들이 쓰는 건괵을 보내 화를 돋우는 장면이 나온다. 당시까지 여자의 장식물이던 건괵은 이후 여걸(女傑)의 대명사로 바뀐다. 미국 디즈니사에서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져 유명세를 탄 뮬란이 대표적인 건괵영웅(巾幗英雄)이다. 병든 아버지를 대신해 남장을 하고 전쟁터에 나가 혁혁한 전공을 세운 화목란(花木蘭)이 실제 주인공이다. 남송(南宋)시대에는 목계영(穆桂英)이라는 걸출한 여장부가 등장한다. 무예와 지략, 용기까지 겸비한 목계영은 집안의 며느리들을 이끌고 서하(西夏)와의 전투에서 큰 무공을 남겼다. 그녀는 이후 경극의 주인공으로 부활해 민간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한편 여성의 드높은 기세는 ‘하동사후(河東獅吼)’라고 했다. 송(宋)의 대문호 소동파(蘇東坡)가 함께 술로 밤을 지새다 사자의 울부짖음 같은 부인의 목소리에 혼비백산하는 공처가 친구를 그린 시에서 나온 말이다.
건괵을 매던 고구려의 후예 대한민국 낭자군의 활약이 눈부시다. 우승컵을 들고 금의환향한 17세 이하 여자월드컵 대표팀이 청와대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고 한다. 워낙 여풍(女風)이 거세기에 이대로 간다면 ‘자웅(雌雄)을 겨루다’는 말은 곧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 신경진 연구원의 글에 따르면 건귁이 고구려에서도 사용되었다는 점에 의거해서, 고구려에 낭자군이 있었다고 암시하고 있다. 물론 위 기록에는 고구려에 낭자군 존재 여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중국측 기록만 이야기한다.
하동사후 라는 예만 해도, 그것이 아니라, 발해의 여성들이 남자들을 투기하지 못하게 하는 이야기를 드는 것이 더 적절했을 것인데, 위 글이 아쉽기도 하다.
낭자군에 대해 이야기 하려면, 차라리 백제 전설이 의자왕의 딸인 계선공주, 또는 연개소문의 여동생 연개수영 이야기를 했었으면 좋았을 텐데, 전설이니까 좀 그런가. 그래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여성 무사에 대해서는 김해 예안리 57호분에 가야의 여성 무사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도 있다. 또 말갈의 이근행 부인이 성을 지킨 이야기 등 우리와 관련있는 이야기를 좀 예로 들었으면 좋았을 것을,
너무 중국측 이야기만 하다가, 고구려에 건귁이 있으니, 고구려의 후예인 우리나라 낭자군이라는 이야기가 좀 억지스럽게 이야기가 전개되고 말았다. 그래서 이 기사는 매우 매우 아쉽다. 우리 이야기를 하려면, 우리 것부터 알고 쓰면 좋았을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