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明治好太王작성시간10.10.27
역시 이타인은 1차 고당전쟁 때 투항했다는 견해에 비판이 있었군요. 저도 윤용구 선생님의 논문을 읽고 망명시기 부분이 미심쩍어서 원문을 살펴봤었는데, 아무리 봐도 645년으로 볼 건덕지를 찾을 수 없었거든요.ㅋ 그때 윤용구 선생님이 이타인의 망명시기를 1차 고당전쟁으로 본 손철산 선생의 논문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서 매우 실망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무튼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작성자돌부처작성시간10.10.27
12개주와 37개 말갈부락의 규모를 보았을 때, 고구려의 책성을 통한 흑수지역 말갈의 통치를 추측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리고 계루라는 단어는 묘지명에서 처음 보는군요. 단지 고구려를 뜻한다고 볼 수 있을까요? 후기에 간간이 계루라는 것을 접하게 되는데, 어떤 부서의 명칭이 아닐까도 생각되는군요. 여하튼 전체적으로 해석이 되었으면 좋겟는데 어렵긴 정말 어렵네요. 한편, 이문진과의 관계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