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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몽 유리 소서노 온조의 가족관계는 실제 특정인물관계가 아닌 정치세력간 관계를 함축의인화한것으로 보아야

작성자선구자| 작성시간10.11.08| 조회수566|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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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돌부처 작성시간10.11.08 추모왕이 한순간에 제비가 되었군요. ^^;; 제 생각엔 아마도 소서노 측에서도 추모의 힘이 필요해서, 서로의 필요에 의해 힘을 합쳤다고 볼 수 있을것 같은데요.
  • 작성자 역사정의남 작성시간10.11.09 역사에 대해 우리가 여러모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제가 읽은 책에는 소서노의 남편인 우태는 북부여의 왕자로 나오며 추모성왕과는 같은 혈족이라고 써있습니다. 우리가 우태 왕자를 잊고 있는건 아닐까요?
  • 답댓글 작성자 聖君 仁宗大王 작성시간10.11.09 아마 해부루의 서손으로 나오죠? 금와왕의 이복동생의 아들 정도로 보고 싶네요..연타발도 동부여의 신하였겠죠? 그러니까 호족의 딸 소서노에게 장가 보낸 거나 비슷하다는..ㅋ
  • 답댓글 작성자 역사정의남 작성시간10.11.17 맞습니다. 성군 인종대왕님! TV의 모든 대하사극은 TV 시청률이라는 제약으로, 가공된 역사내용이 많아 조금 안타깝네요!
  • 작성자 정성일 작성시간10.11.09 삼국사기 백제본기에는 온조왕의 가계와 관련하여 추모왕의 아들 혹은 해부루의 서손 우태의 아들이라고 하였습니다.
    남당유고에를 살펴보면 고구려사초(략)에는 추모왕의 아들로, 백제왕기에는 우태(해부루의 서손, 금와의 아들)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남당유고에 소서노, 비류, 온조의 나이가 제각각으로 기록되어 있어, 온조의 생부가 누구인지 판단을 흐리게 합니다.
    그러나 작성주체가 고구려사초(략)은 고구려의 입장을 반영한 것이고, 백제왕기는 백제의 입장을 반영된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온조의 가계를 고의적으로 손질한 나라가 어디인가를 파악하면 고대사의 미로에 대한 해답을 구할 수 있지 않을 까 합니다.
  • 작성자 정성일 작성시간10.11.09 또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이 있죠.
    유리명왕의 어머니 예씨는 금와왕의 딸입니다.
    그렇게 보면 유리명왕은 금와왕의 외손자, 비류와 온조는 친손자가 됩니다.
    그러므로 고구려나 백제 모두가 부여에서 나왔다는 것은 허언이 아닙니다.
  • 답댓글 작성자 역사정의남 작성시간10.11.17 그런가요~ 정말 모르는 내용이었네요. 소중한 정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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