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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귀거래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0.11.13 고구려초기의 역사는 중국의 역사서에 나오니까 대충 짐작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4세기 이전의 백제.신라의 역사는 중국의 역사서에 나오지 않습니다. 물론 삼한은 나오지만요. 2백년대 백제.신라의 역사는 안개속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당유고라는 것은 잘 모르겠지만 그 성립이 최근의 일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남당유고는 그 기사의 원사료가 무엇인지가 밝혀지기 전에는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2차적인 사료의 의미 밖에 없지 않을까요? -
답댓글 작성자 낙랑 작성시간10.11.13 남당유고는 아직 진서라는 근거가 없으니 위서라고 보는 편이 합당합니다. 극소수의 일부 아마추어 분들을 제외하고 학계 연구자들은 화랑세기를 제외하고는(화랑세기 마저도 지금은 부정론쪽에 거의 완전히 기울어진 형국이지만요) 거들떠보지도 않았죠. 이러한 형국이니 독자연구의 범위를 벗어난 역사토론에서는 남당유고 언급을 자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성일님이 남당유고를 토대로 이런저런 열린 가능성을 시사하시는 것은 좋은 태도라고 생각합니다만 요즘은 다소 최소한의 기본적인 틀을 넘으신 듯한 느낌도 듭니다. 덕흥리 벽화 무덤을 근초고왕의 것이라 주장하시는 것도 그렇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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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성일 작성시간10.11.15 남당유고는 일본 궁내성 서릉고에서 남당 박창화 선생이 필사하여 가져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나, 저본을 확인할 수 없는 관계로 위서로 분류되고 있음은 사실입니다.
비록 그렇다고 하더라도 타사서(삼국사기, 중국정사조선전, 일본서기)와 교차검증 또는 고고학적 유물과 비교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이 남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전미추왕릉과 전내물왕릉과 황남대총(실성왕릉)의 피장자의 유전자를 추적하여 내물왕릉의 피장자와 미추왕릉의 피장자를 가려낼 수 있다면 남당유고의 진위여부의 확실한 증거가 됩니다.
만약 내물왕과 실성왕의 부인이 미추왕과 부녀사이가 성립한다면 그 증거가 되겠죠. -
답댓글 작성자 정성일 작성시간10.11.15 현재는 미추왕릉으로 전해지는 대릉은 미추왕의 사망시기와 고고학적으로 1세기 정도가 차이나는 관계로 미추왕릉인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한데, 미추왕릉이라고 주장하는 분들은 남당유고가 진서일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황남대총의 남분의 피장자가 60세 전후 혹은 60대에 죽은 것이며 금동관이 출토되고, 북분의 피장자는 그 보다 20년후에 묻힌 것으로 보이며 여성이라고 하였는데, 탄소연대측정을 통하여 5세기 전반에 죽은 내물-실성-눌지 3분중에서 한 분일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남당유고에 의하면 실성의 무덤이라고 볼 수 있는데, 부정론자들은 왕릉이 아닐 것이라고 주장함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