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료는 2008년 김일경교수와 안시성 답사를 위해 중국으로 갔을때 수집한 자료입니다. 안시성 보루성의 답사는 저에게 아쉬웠지만 기회가 있으면 자일과 장비를 다 준비해서 다시 한번 가 보고싶습니다. 김교수님도 이제 나이가 70세가 넘었습니다. 이제는 답사가자고 제가 부탁드리는 자체가 부담스럽습니다. 제가 생각하기로는 김일경교수님 같은 분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우리가 챙겨야할 중요한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공사방법에 대해 생각해 봤습니다. 김교수님은 중국 조선족 신문에 주필까지 하셨던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제 거두절미하고, 아마 이랬을 겁니다.이제 건축구조에 대해서 이야기 좀 해봐야 할것 같습니다. 우선 맨위 보루성에서 부터 사람이 굴 내부에서 걸어다닐 수 있는 경사로 바위속을 나선형으로 파내려 갔을 겁니다. 굴창이 세개가 났으니 최소한 나선형이 세바퀴 이상 돌았다는 것입니다. 내부굴이 완성된후 그다음 단계로 외부에서 바위를 깨서 내부굴과 만날때까지 파 들어갔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산정상부가 보루성이라서 물을 확보하기위해 굴의 최하부에 물이 모일수 있는 연못을 만들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를 안내해준 중국여인 전언에 의하면 얼마전 어떤 사람이 굴속 연못에 빠져 익사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굴에 들어가기위해 여러번 접근을 시도했으나 실패했습니다. 로프가 없이는 접근이 불가능했습니다. 제가 굴의 개념도를 그릴 수 있었던 것은 굴내부를 조사한 김일경교수의 설명을 듣고 그린 것입니다. 다음에 로프나 사다리를 준비해서 다시 답사해볼 작정입니다. 그리고 산정상 그러니까 보루성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굴입구는 일제시대 만주의 일본군이 메웠다고 합니다. 일본군도 고구려군과 마찬가지로 전방초소로 사용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일경교수의 전언에의하면 나선형으로 돌아가는 굴은 사람이 바로 서서 걸을 수 있는 높이라고 합니다. 산정상부에는 지금도 성돌이 많이 쌓여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성은 성벽에 성문이 없고 바위 아래 뚫어놓은 제 1굴이 성안에 들어가는 유일한 수단입니다. 그것도 제1굴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사다리나 로프가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이런 구조를 보통 현문구조라고 하지만 이는 보통 현문구조와는 또 다른구조라,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지 고민입니다. 이곳은 안시성과는 달리 중국사람들도 잘 몰라 감시원이 없습니다. 우리가 갔을때도 보루성 입구의 마을에 중국 공안의 순찰차가 있었습니다만 아무런 저지도 받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만 이성을 고려성이라고 했습니다. 보루성에서 보면 안시성의 주봉인 안시성 장대가 보입니다. 수, 당, 군사가 쳐들어 오는 길목에 설치된 보루성이라 당시 봉화를 이용하여 안시성에 연락을 하지 않았나 추정됩니다. 세개의 굴입구는 보루성으로 올라가는 입구역활도 했겠지만 채광과 환기를 위한 光窓 역활도 했을것이라고 추정됩니다.
안시성 보루성 가는길, 맨앞에 가는 사람이 길을 안내해준 현지마을에 사는 중국여인이고 가운데 검은옷을 입은사람이 저와 동행한 김란기박사고요, 제 바로앞에 보이는분이 중국 안산 공산당 간부학교 교수이신 김일경교수이고요, 저는 맨뒤에서 김교수님을 보좌하며 올라 갔습니다. 그러나 만만한 산행은 아니였습니다.중간에 길을 잃어버려 한참동안 산속을 헤메었습니다. 저희들을 안내해준 중국여인네가 아니였으면 아마도 안시성 보루성은 우리가 찾지못했을 것입니다.
굴 입구입니다. 굴입구에서 본 모습은 사람이 인위적으로 팠다는 느낌이 역력했습니다.
김일경교수님과 김란기박사가 굴 입구에 ......
굴입구에서 김일경교수와 안내해준 중국여인
굴입구입니다
굴입구에서 김일경교수와, 굴입구 양쪽 벽을 보면 사람이 인공적으로 깬 흔적이 많이 보입니다. 사진 뒤에 가운데 시커먼 곳이 제 1굴의 입구입니다. 아마 그곳에는 사다리가 설치되어 있어서 보루성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굴속으로 들어 갔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3 굴입구 제3굴은 바위산의 최상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저희들이 자일을 가져가지 않은 상황에서 제일 먼저 접근을 시도했던 곳입니다만 접근자체가 너무 힘들어 제가 김란기박사의 도전을 말렸습니다.
굴 입구에 쌓여있는 성돌, 굴입구에도 성벽을 쌓아 적군의 접근을 막은듯 합니다.
왼쪽에 히미하게 보이는 봉우리가 안시성의 주봉인 장대입니다. 보루성에서 동쪽으로 4km 떨어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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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麗輝 작성시간 11.06.02 그럼 우물물을 뜨려면 저 아래까지 내려와야 한다는 소리시죠? 저는 보루가 있는 정상부부터 우물 입구가 시작해서 저 아래까지 연결된 걸로 이해했습니다. 흐음. 산 정상부에 있는 보루 내에 우물이 확인된 경우가 없어서 말이죠...흐음. 사면 말단에 우물이 있다면 충분히 가능성은 있을 것 같습니다. 암튼, 추가 자료를 기다리겠습니다. 정말 흥미롭네요. ^^ 좋은 자료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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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똥깡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1.06.02 당연히 우물은 하단부에 있어야 겠지요. 먹고 살려면 우물을 떠려고 지하 최하부에 위치한 웅덩이로 갈 수 밖에 없었겠죠. 그런데 제가 가서 봤더니 보루성이 있는 최정상과 우물지가 있는 곳이 100M 이상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고구려성을 연구한다고 얼마나 답사를 다녔습니까요?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야 할 곳이 우리가 생각했던것보다 훨씬 많다는 것을 느꼈습닏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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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麗輝 작성시간 11.06.02 우물과 보루의 고도차가 100m 정도면 그건 상당한 높낮이입니다. 고대부터 군대에서 물긷는 일과 땔감을 구해오는 일은 중요한 작전으로 취급되었습니다. 보루 주변의 지형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보루에서 접근성이 좋은 지점에 우물이 있다면 상당히 주목할만한 사실인 듯 합니다. 어쨌든, 전체적으로 구조 자체도 특이한 것 같습니다. 아직 고구려 관방시설에 대해 알려진 바가 많지 않기 때문에 자꾸 새로운 자료가 나와야 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안시성 주변에서 확인되었다는 보루는 시사하는 바가 많을 듯 합니다. 그나저나 보루는 이 곳 한 곳 뿐입니까? 보루는 일반적으로 단독으로 축조되지는 않는데 말입니다. 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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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똥깡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1.06.02 우물에서 정상부의 보루성까지의 표고차가 얼마인지 정확하게 재 보지는 않아 뭐라고 말씀드리기가 곤란하나, 제 느낌으로는 대략 50m정도 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른 보루성 이야기인데 제가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안시성은 그 서남으로 건안성과 25km에 위치하고 서쪽으로 고구려 백채(白寨)산성과 17km 거리에 있으며 건안성의 동쪽에는 5km마다 한 곳 고구려의 보루성이 대석교 부근까지 설치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보루성 말고도 4-5개정도가 더 있다는 것입니다. 이곳 보루성에서는 실제로 건안성이 25km 밖에 희미하게 보여서 망원레즈로 촬영을 했습니다만 사진을 찾을 수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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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똥깡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1.06.02 1989년도에 고구려산성 답사를 김일경교수와 한달간 하여 슬라이드필림 2000여장을 찍었습니다만 마지막 답사여정인 환도산성에서 중국 공안에 걸려 필림을 다 빼았겼습니다. 아쉽습니다. 안시성 관련 필림은 최근에 다시가서 찍은 필림입니다. 다른 보루성은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몰라서 답사를 못했습니다. 이 안시성의 보루성도 김일경교수의 안내가 없었으면 찾기가 힘들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