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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본성, 환도성, 국내성

작성자귀거래사| 작성시간11.06.29| 조회수799|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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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학이 작성시간11.07.01 1. 삼국지 고구려전의 今日은 어떤 원사료의 기사를 그대로 발췌해 옮긴 것으로, 진수가 삼국지를 지은 시기 기준(280년대 말)이 아니라 원사료의 서술 시점 기준이고, 구체적으로는 240년대 또는 250년대 무렵으로 보는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어지는 뒷글에서 동천왕(위궁)을 가리켜 今王이라 표현하고 있는 것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 작성자 학이 작성시간11.07.01 2. 관구검전의 경우는, 직역하면 '刻石紀功하여 (1)丸都之山에 刊하고 (2)不耐之城에 銘했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刊, 銘은 '돌이나 나무 따위를 깎아내 글자를 새긴다'는 서로 비슷한 뜻인데, 중복을 피하기 위해 서로 다른 표현을 사용한 것입니다. 集安에서 발견된 관구검기공비가 바로 (1)인 것으로 보이고, (2)의 경우는 아직 발견되지는 않았으나 삼국지 예전에 나오는 영동예(불내후) 공격과 관련된 듯 합니다. 여담입니다만, 관구검전의 고구려 관련 대목들은 대체로 수사적인 성향이 강한 걸 볼때 그 최초의 원 소스가 관구검의 공적을 치하하는 황제 조서 류의 어떤 문건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 작성자 귀거래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1.07.01 참으로 좋은 지적입니다. 보람이 있군요. '今日'은 관구검의 2차정벌(246) 직후가 되겠네요. 관구검의 고구려정벌 이후 동방의 사정이 중국에 상세히 알려졌고 진수의 삼국지 동이전도 그 지식을 기초로 한 것이라고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원 소스는 황제의 조서 류라기보다 황제에게 올린 전과보고서가 아닐까요?
    관구검전은 제가 조금 잘못 번역을 한 것 같군요. 저도 쭉 기공비는 환도산과 영동 불내성에 각각 세운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만, 관구검의 침입 당시는 국내성의 이름이 불내성이었다는 武田幸男의 글을 읽고 그것은 하나(집안의 기공비)를 가리키는 것으로, 학이님 말씀대로 수사적 이중 표현이 아닌가 생각하는 것입니다.
  • 작성자 학이 작성시간11.07.02 여담으로 덧붙인 말은 동이전이 아니라 관구검전을 두고 한 말인데, 귀거래사님 말씀처럼 관구검 자신 또는 타인 명의의 상주문일 수도 있고 자화자찬하는 어떤 서신 류에서 발췌한 것일 수도 있고 기타 여러가지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겠죠.
  • 작성자 학이 작성시간11.07.02 '환도성(국내성)=불내성(불이성)'은 괄지지 등의 오류가 삼국사기 등을 거치며 계속 답습되어 온 것으로, 아마도 바로 관구검전의 이 대목을 오독한데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귀거래사님이 인용하신 武田幸男의 설도 역시 이런 오류를 범하고 있는것으로 보이구요. 그러나 어쨌든 삼국지(관구검전, 고구려전, 예전 등)에 따르면 환도성(3세기 중엽 당시 고구려의 수도)과 불내성(영동 불내예의 근거지)은 서로 별개의 지명임이 분명하고, 환도성은 지금의 집안, 불내성은 지금의 함경도 안변이나 원산 등으로 비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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