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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최초의 도읍 졸본은 환인이 아니다

작성자카라바타르| 작성시간12.11.02| 조회수1081|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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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파사 작성시간12.11.02 위당의 글은 그렇지 않을텐데요.

    위당이 지목한 곳은 위당 당시의 해성현에 있는 遊泥河를 浿水로 보았고,
    그 해성을 험독이며 평양으로 비정했습니다.
    위당의 비정이 옳은 것도 아니지만,
    제시하신 지도의 그 수분하 지역 보다는 훨씬 서쪽에 있으며 또 사실에 근접합니다.
    위당의 글을 크게 곡해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 카라바타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2.11.02 예, 저건 제가 쓴 <조선사연구> 해제 부분입니다. 파사님께서는 어떤 부분을 말씀하시는지 잘 접수가 안됐습니다 죄송하지만 자세하게 말씀해 주시면 아는 대로 대답해 드릴께요..
  • 답댓글 작성자 카라바타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2.11.02 아 저건 고구려 최초의 도읍 졸본에 대한 고증에 한정된 것입니다.
    평양이라는 것은 그보다 한참 후의 도읍이지요.
    제가 듣기로는 고구려는 총 7-8번 도읍을 바꾸었습니다.
    님이 말씀하신 평양과 패수의 위치는 제가 번역한 내용과 일치합니다.
    다만
    위당이 수분하를 거론한건 졸본에만 한정된 거니까 오해 없으시기 바래요^^
  • 작성자 파사 작성시간12.11.10 졸본 고증에 한정한다는 말씀 수긍합니다.
    문제는 위당이 졸본을 솔빈.소빈.휼품으로 본 것까지는 옳으나 수분이나 아란으로도 해석한 것입니다.
    다산의 <아방강역고/백산보>에는 백산 북쪽 지역에서 북쪽으로 흐르는 물길을 대략 3 개로 대별하였고,
    서쪽에서부터 동쪽으로 가면서 혼동강(송화강),호이합하,오소리강이 있다고 하였으며 모두 흑룡강으로 흘러든다고 하였습니다.
    수분하는 오소리강 남쪽에나 있을 법하며 남류하는 듯한 설명이 있습니다. 그런데 <금사>의 휼품로란 송화강 변 길 일체를 말하며 <원사>의 호리개로는 호이합하 부근 도로를 말하는데, 이 말은 원 시기 합란부수달달로의 동쪽 끝 경계가 호이합하 부근이라는 것
  • 작성자 파사 작성시간12.11.10 이고 졸본을 휼품로 부근이라 할 수는 있을지언정 수분하라 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한편 휼품.소빈.송화강 과 요하를 가르는 분수령이 한 시기의 요산, 명 시기의 금산, 청 시기의 장백산인데 고구려의 초기 도읍지 졸본은 요산 동쪽인 소빈이 아니라 서쪽인 한 시기 현토군 고구려현 부근으로 보아야 하며,
    그래야만 이후의 도읍지 위나암.환도.평양과 중진인 압록강 변 국내성 등 고구려의 중심지와도 지리적으로 자연스럽게 연계됩니다.

    따라서 요하와 송화강을 나누는 장백산의 서쪽 현토군 고구려현 부근을 초기 도읍지 졸본으로도 비정하는 상황에서 본다면 더더욱 수분하의 음운학적 연구는 공허하게 될 것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 카라바타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2.11.11 파사님 오랫만에 인사드리네요.
    님의 문제 제기 정말 감사합니다.
    먼저 수분하에 대한 음운학적 접근 자체에는 큰 문제가 없지 않나 싶습니다.
    지정학적 위치 역시 도시냐 지역이나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서로 겹치고
    음운학적으로는 앞뒤 글자가 서로 동일계열의 소리이고 음운현상에서도 서로 공통점이 많기 때문입니다.
    음운학적 견지에서는 여러가지 정황증거상 수분(하)보다 더 졸본에 근접한 지역은 어디서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음운학적으로는 이렇다. 다른 분야는 결론이 어떻게 나오냐?"
    하는 식의 문제 제기 정도로 이해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 카라바타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2.11.11 또..
    제가 이미 <조선사연구> 후기에서도 밝힌 것처럼
    졸본과 기타 지역에 대한 정확한 위치의 비정과 검증 작업은
    아무래도 그리고 너무도 당연하게
    역사학-지정학-고고학 분야의 전문가 학자 분들이 직접 검증하고 또 해명을 하셔야 될 부분이라고 봅니다.
    저는 비교언어학을 연구하는 사람의 하나로서 음운학적 견지에서 제 소견을 말씀드린 것입니다.
    지정학-고고학-인류학 쪽은 비전문가에 가까우니까 제가 함부로 주제넘게 나서면 안되겠지요.
    이 점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 작성자 카라바타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2.11.11 오늘날도 그렇지만 그게 누구든지 간에 100% 진리나 100% 절대선이란 있을수 없지요.
    위당선생이 <조선사연구>에서 개진한 주장도 마찬가지로 맞는말씀도 있고 틀린말씀도 있습니다
    문제는 다른 카페에 갔더니 거기서는 위당선생의 일부 주장을 물고 늘어지면서 일방적으로 공격을 해대더군요.
    위당선생의 틀린 주장은 당연히 버리거나 비판해야 하지만
    맞는 주장은 아무리 자기 학파의 해석과 다르더라도 수용-활용할줄 알아야 한다고 봅니다.
    요즘처럼 자기 스승 자기 코드만 내세우고 반대편은 무조건 적으로 돌리는 삭막한 세상에서는 더더욱 말씀입니다.
    아뭏든 번번히 소중하고 매서운 지적과 가르침에 거듭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 작성자 파사 작성시간12.11.12 저는 위당의 열렬한 팬입니다.
    그 이유 첫번째가 후조선의 정통 성리학사 무리 중에서 유일하게 단군조선을 명실상부하게 이 땅의 시조와 첫 국가로 자리매김했다고 보며,
    두번째로는 기자 동래를 부정했다는 점,
    세번째로는 왕검성을 가장 가깝게 비정했다는 점 때문입니다.

    단군조선에 관한 인식에 있어서는 미수 허목.수산 이종휘.단재 신채호를 넘어 행촌 이암이나 북애자 級이고,
    기자 동래 부정에 관해서는 약천 남구만과 .단재.육당이 있었으나 가장 격렬한 `날조`라는 표현을 구사하여 시원함을 주었고,
    왕검성에 대해서는 요동군의 험독현이나 국경선을 흐르는 浿水가 될 수 없음에도 비정한 것이 안타깝지만,
  • 작성자 파사 작성시간12.11.11 그래도 16.17.18 세기 역사지리학 전문이라는 구암.여암.순암.수산.다산 등이
    한반도 평양으로 본 것은 위당에 비교조차 하기 어렵고,
    그나마 막연하게 패수를 압록강 북쪽에 비정하는 성호나
    연행로 중 동팔참 첫 참인 봉황성을 안시 혹 평양으로 본 연암 보다야 백배 정확하다고 봅니다.

    이리 장황하게 변무하는 것은
    제가 위당의 음운 접근법을 마냥 비판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모쪼록 님의 건필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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