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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사람이 하늘이다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3.03.01 안녕하세요. 좀 긴 글인데 잘 읽었다니 감사합니다. 서안평은 고구려 역사에 아주 중요한 곳이지요.
그런데 『요사지리지』'서문'에 “또 정벌하여 사로잡은 포로들로 요해처에 주를 설치하였는데, (포로들이) 옛날에 살던 곳의 이름으로 삼는 경우가 많았다(又以征伐俘户建州襟要之地, 多因舊居名之)”는 기록이 있습니다. 요나라가 새로운 주를 설치할 때 한나라 포로들이 옛날에 살던 곳의 지명을 쓴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지요. 이로 인하여 요나라 시대에 수많은 지명이동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상경임황부를 한나라 서안평으로 기록한 것도 지명이동의 결과로 보입니다. 『요사지리지』를 읽을 때 주의해야 할 부분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 사람이 하늘이다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3.03.01 『삼국사기』‘고구려본기’에 서안평에 대한 기록이 세 군데 나옵니다.
① 제6대 태조대왕 : “(146년) 가을 8월에 왕은 장수를 보내 한나라 요동의 서안평현을 쳐서, 대방령을 죽이고 낙랑태수의 처자를 사로잡았다(秋八月 王遣將 襲漢遼東西安平縣 殺帶方令 掠得樂浪太守妻子)”
② 제11대 동천왕 : “16년(242) 왕이 장수를 보내 요동의 서안평을 격파하였다(十六年 王遣將, 襲破遼東西安平.)”
③ 제15대 미천왕 : “12년(311) 가을 8월에 장수를 보내 요동 서안평을 공격하여 차지하였다(十二年 秋八月 遣將襲取遼東西安平)” -
답댓글 작성자 사람이 하늘이다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3.03.01 위 세번의 사건 중 김부식은 ① 번은 한나라 요동 서안평이라 하였고, ②③번은 그냥 요동 서안평이라 기록하였습니다. 서로 다른 장소이지요. ① 번의 태조대왕시절에는 고구려가 하북성 요동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을 때입니다. 그때의 한나라 요동군 서안평은 현 하북성 석가장시 부근의 안평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곳이 대방지역이므로 대방령을 죽이고 낙랑태수의 처자를 사로잡은 것입니다. ②③은 고구려가 '발기의 난' 이후 하북성 요동을 완전히 상실했을 때의 일 입니다. 이때의 서안평이 난하하류의 요동 서안평으로 왕망이 북안평으로 부른 곳으로 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