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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토론방

고구려 연대기 - 영토의 변화 과정 (1)

작성자카론|작성시간13.05.29|조회수2,138 목록 댓글 6

 본 글은 새로운 관점에서 정리해 본 역사입니다. 스스로도 내용을 정리한 후 시간이 흐른 후 다시 보면 잘못 생각한 부분도 나옵니다. 틀리면 조금은 창피하지만 그렇다고 기죽는 성격도 아니어서 그냥 웃고 넘어갑니다. 몇몇 분은 상식 없는 글이라 불편해 하시고, 몇몇 분은 흥미롭게 보고 있다고 쪽지도 주시는데요. 그냥 즐겨주셨으면 합니다. 역사는 재미있는 이야기이니까요. 

 

 역사를 공식적으로 정리하는 것은 역사를 직업으로 하시는 분들이 하십니다. 다른 관점에서 역사를 들여다보고 글을 올린다 하더라도 역사를 정리하시는 분들을 설득시키지 못하면 그저 불필요한 시간 낭비에 불과합니다. 이것을 알기 떄문에 개인 만족 차원에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역사에 관심이 있는 분들께 이런 부분도 한번 생각해 보셨으면 하는 바람으로 글을 올립니다.  

 

먼저 제가 아주 좋아하는 지도입니다.

 

 

 

우리 상고사의 기준은 요동.

 

 고구려가 건국되던 시점에 고구려의 중심지는 현 요하 동쪽 지역이라고 판단합니다. 이는 인문학적으로 접근하여 고구려가 국가로써 생존할 수 있는 최소한의 필요 조건이기 때문입니다. 산악지형은 교통도 불편하고 무엇보다도 곡물을 확보할 수 있는 땅이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이런 등등의 여러 이유로 인하여 산악 지역보다는 평야 지역에서 그 중심지를 찾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하 동쪽 지역이 고구려의 중심지라면, 먼저 이곳이 요동이 아님을 증명해야만 합니다. 학계에서 정리한 요동의 위치가 바로 요하 동쪽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옛 기록을 통해 요동에 대한 논리적 정리를 하였습니다.

 

1. 요동은 연 나라가 동호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설치한 곳입니다. 요동은 연 나라가 고조선을 공격하여 빼앗은 땅에 설치한 곳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2. 연 나라가 요동을 건너 고조선을 공격했다는 기록을 통해 요동은 고조선과 맞닿아 있던 연 나라의 영토에 속한 국경 지역임을 알 수 있습니다.

 

3. 연 나라와 진 나라의 국경은 같습니다. 그러므로 진 나라가 국경으로 삼았던 만리장성을 고려할 때 요동은 만리장성의 서쪽에 있어야 합니다.

 

 이를 통해 “만리장성 서쪽은 요동, 동쪽은 한 4군” 이라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요동성의 위치

 

 요동성은 고구려-수, 고구려-당 사이에 전투가 벌어진 성으로써 요동지역을 파악하는데 매우 중요한 단서에 해당합니다. 저는 요동성을 만리장성 서쪽과 군사적 요충지의 지형적 특징, 그리고 대량수, 실위산, 실위수와 관련된 기록을 참고하여 하북성 진황도시(친왕다오시) 푸닝현(抚宁县/撫寧縣 무령현)인근에 요동성을 비정합니다.

 

 

고구려 이전 시대의 (고)조선의 모습

 

 고조선의 모습은 이후 시대에 해당하는 고구려와 백제, 신라의 모습에서 유추해 낼 수 있습니다. 정치적인 부분만을 떼어놓고 본다면, 고구려의 태왕은 왕들의 왕을 의미합니다. 이 말은 각 지역마다 왕이 있으며 왕을 통솔하는 정치 형태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공식 명칭은 왕이 아닌 단군이 될 것입니다. 


 신라의 화백제도를 통해 고조선에도 만장일치 제도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왕들이 모여 하나의 의견이 될때까지 계속 토론을 한다는 것은 분란을 없애는 정치입니다. 현재 화백제도의 개념을 이해할 수 있는 시스템이  카톨릭 교회의 교황 선출방식입니다. 교황 선출 때 합의에 도출될 때까지 계속 투표를 합니다. 그래서 한번 선출된 교황에 대해 더 이상의 이의를 달지 않습니다. 

 
 그런데 고조선의 세력가들의 의견을 조율하던 정치 체계가 갑자기 무너집니다. 쿠데타에 의한 위만 조선이 성립한 것입니다. 기득권이 무너지고, 힘에 의한 정치 체계로 변화함에 따라 당연히 각 지역을 맡고 있던 왕들의 반발이 발생하였고, 결국 이해관계에 따라 분열이 일어나게 됩니다. 
 

위만 조선의 멸망과 한 4군의 위치

 

위만 조선은 한나라와 흉노의 패권 전쟁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흉노와 친하게 지내느냐 한나라와 친하게 지내느냐를 두고 이해 관계가 복잡했던 상황에서 흉노를 두려워했던 변방의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잡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외교적 노선을 한나라 대신 흉노로 바꾸게 됩니다. 

 

 이 일로 인하여 고조선을 이루고 있던 왕들 즉 세력가들은 이해관계에 따라 위만 조선과 부여로 갈라서게 됩니다. 부여는 흉노에게 공격을 당해 적봉의 소금 경제지를 잃은 상태였기에 흉노는 멀리, 한나라는 가까웠을 것입니다. 이 시대의 상황을 지도로 나타내면 현 요하를 기준으로 동쪽은 부여, 서쪽은 위만 조선의 세력권이 되었을 것입니다. 

 

 위만 조선은 정통성을 가지지 못했지만 당시 흉노가 동북아시아의 최강자로 굴림하였기에 주변국들을 힘으로 누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계속된 전쟁으로 흉노의 영향력이 크게 약화되었고, 급기야 한나라의 침략에 의해 위만 조선은 멸망하게 됩니다.

 

 한 4군은 위만 조선의 영역에 설치됩니다. 그런데 한가지 집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위만 조선의 영역과 옛 고조선 영역은 분명히 차이가 있어야 한다는 인식입니다. 부여가 역사 기록에 등장하는 시기는 위만 조선이 성립한 이후의 일입니다. 수 많은 왕들이 연대하여 이루어진 고조선이 분열을 시작했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위 그림은 위만 조선과 위만 조선을 따르던 국가들, 그리고 부여로 결성한 국가로 구분하여 한 4군의 위치를 살펴본 것입니다. 전에 한 4군에 대한 정리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와 내용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임둔군 봉니가 발견된 곳이 붉은 점 1 지역이어서 임둔군 위치를 남쪽으로 내렸고, 현도군의 3차 이동지를 푸신 지역에서 요동의 옆으로 대폭 옮겼습니다. 당시 고구려가 현도를 공격할때 부여의 방해가 있었던 기록 때문에 현도군을 푸신 부근에 위치시켰는데 지금은 요동 옆으로 두어도 된다고 판단이 들어 옮기게 된 것입니다.   

 

 한 4군은 위만 조선의 영역에 해당합니다. 위만 조선을 따랐던 국가들은 위만 조선이 멸망하자 A, B, D는 한나라에, C는 부여에 붙게 됩니다. 푸른색 지역은 고구려 성립 이전의 큰 틀의 부여 세력을 의미합니다.  

 

 

고구려 연대기   

유리왕

기원전 6년 - 부여의 대소왕이 5만을 일으켜 고구려를 침공하였지만 폭설로 많은 군사를 잃고 퇴각
3년 - 국내로 천도 / 尉那巖城 위나암성 축성
12년 - 신나라가 고구려 공격하자 이에 반격함. 
13년 - 부여가 고구려 침공하자 무휼이 매복작전으로 부여군에 대승을 거둠
14년 - 양맥(梁貊) 정복, 현도군의 고구려현을 획득.

 

대무신왕

21~22년 - 부여 정벌. 대소왕 사망 이후 부여 분열 
26년 - 개마국 복속 / 구다국 항복
28년 - 요동태수가 침략하자 위나암성에서 농성
32년 - 낙랑국 정복

 

<참고> 한 나라 왕망 치세기 : 9년 ~ 23년

 

모본왕
49년 우북평 어양 상곡 태원 습격 -> 요동태수 제융이 화친을 청해와 화친함

 

태조대왕
55년 요서지역에 10개성 증축
56년 동옥저 병합
68년 갈사국 항복
70년 조나(藻那) 병합
72년 주나(朱那) 병합
105년 요동군 공격
118년 현도군 공격
121년 요동군과 현도군 공격, 선비와 함께 요수현을 공격하여 요동태수 채풍을 살해. 마한 예맥과 함께 현도군을 공격하였으나 부여의 위구태의 방해로 대패
122년 마한 예맥과 함께 현도군 공격 부여의 방해를 받음 - 후한과 화친
146년 요동의 신안과 거향을 약탈하고 서안평을 공격하여 대방현령을 죽이고 낙랑태수 처자를 생포

 

1. 고구려 부여 전쟁.

 

 고구려는 유리왕때 부여와 갈등을 빚게 됩니다. 부여 세력이 둘로 나뉘어 패권 다툼을 벌인 것입니다. 크게 3번의 전투가 있었지만 모두 고구려의 승리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부여왕 대소가 사망함으로써 고구려와 부여의 전쟁을 막을 내리게 됩니다.

 

 전쟁 이후 부여는 분열되어 크게 위축됩니다. 고구려가 사실상 패권을 차지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후 한동안 역사에 등장하는 부여는 고구려의 서쪽 지역에 위치해 있는 부여를 의미합니다. (고구려의 동쪽에 위치해 있던 고구려에 편입되어 등장)

 

2. 역사의 방향성   

 

 학계에서 정리한 내용대로 고구려의 연대기를 들여다 보면 이해하기 힘든 내용이 있습니다. 바로 모본왕의 행적입니다. 느닷없이 우북평, 어양, 상곡, 태원을 공격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기록이 잘못되었다고 하기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태조대왕 때 요서지역에 10개 성을 쌓았다는 내용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역사의 방향성을 추적해 보았습니다. 고구려는 13년에 부여가 진격해 오자 매복하여 대승을 거두게 됩니다. 그리고 그 여세를 몰아 양맥과 현도군까지 점령하게 됩니다. 대무신왕때 부여와 전쟁을 벌인 후 고구려의 동쪽이 정리되자 서쪽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개마국을 복속하고, 구다국이 항복합니다. 그림대로 정리해 보니 고구려가 어느덧 만리장성 근처까지 가 있게 됩니다.

 

 이는 모본왕의 기록이 잘못된 것이 결코 아니다를 의미합니다. 또한 55년 이후 태조대왕이 복속한 국가들이 구다국 서쪽에 위치해 있을 수 있는 가능성도 크게 높아진 것입니다. 그리고 만리장성 서쪽에 있는 요동군과 현도군의 공격도 충분히 가능하게 됩니다.

 

 고구려 영역에 대한 정리가 힘들었던 이유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위구태의 부여 때문입니다. 위구태를 길림시 쪽에 넣어서는 도저히 스토리가 만들어지지 않더군요. 그래서 고민끝에 백제의 위구태 신화를 토대로 낙랑 서쪽 대방군 지역으로 위치시켰더니 막힌 것이 모두 풀리게 됩니다. 지금 부여사를 읽어보면 여러개의 부여의 역사가 하나인 것처럼 연결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즉, 대소왕을 끝으로 고구려 동쪽 부여의 역사는 일단락 되고, 부여에서 나와 전혀 엉뚱한 곳에 자리를 잡았던 갈사부여와 위구태의 부여가 기록에 등장했던 것입니다.

 

이를 그림으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추가로 E 지역에 대하여 설명을 드립니다.

 

앞에서 고구려 성립 이전, 위만조선과 부여 세력으로 구분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부여 세력이 다시 분열이 되는데 이를 구분한 것이 북부여, 남부여, 동부여라고 생각합니다. 북부여는 주몽이 고구려를 세우기 이전 단계의 세력, 남부여는 고구려와 분리된 백제, 동부여는  대소왕의 부여가 아닌가 추정합니다. 그림의 E 지역은 백제의 소서노 신화의 관련된 백제의 영역으로 생각합니다.

 

 

 

* 추신. 2013년 12월 9일 현재.

윗 글은 고구려의 초기 중심지가 집안이 아닌 그 서쪽의 심양 유역일 것으로 가정하에 연대기를 분석한 것입니다.

그런데 삼국지 위지동이지의 내용을 정리하다 보니 고구려의 초기 중심지가 훨씬 서쪽으로 이동해야 할 것 같습니다.

또한 고구려의 초반 확장 방향도 서에서 동으로 변하면서 지명이 많이 변할 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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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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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바람의 계절 | 작성시간 14.01.20 ㄴ여러글들에 있는 조수아님의 답글들을 보았습니다.
    한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조수아님의 주장이나 이론에 이의를 달려는 것이 아니라 여러 답글들을 읽을 때 마다 느끼는 것인데..
    역사를 어떠한 틀을 만들어 놓고 그 안에서 모든것을 논하거나 결론을 내린다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생각됩니다.
    적어도 그 시대를 우리들이 살지 않았기에 발견된 유물, 유적을 가치고 추정하는 것이고 그 연구들의 결과물로 결론을 내려야 된다고 생각됩니다.
    그러자면 먼저 왜(?) 또는 이럴수도 있겠구나(!)라는 가정은 당연한 과정이라 생각됩니다.
    무조건 정해진 틀에 맞지않는다고 부정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생각됩니다.
  • 답댓글 작성자조수아 | 작성시간 14.01.20 바람의 계절 말이 통하지 않는군요. 같은 말은 반복하지 않겠습니다.
  • 작성자쉰여시 | 작성시간 13.05.29 흥미롭습니다.
    질문 하나 합니다.
    청색으로 표시한 a.b.d 지역은 설명이 없네요.
    무엇때문에 색을 구분하여 표시한 것인가요?
  • 답댓글 작성자카론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3.05.29 A, D 지역은 인구도 많고 경제 활동도 활발했던 곳 같은데 아직 공부가 미진하여 이곳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만 후에 사료에 등장하는 주요 장소로 설명드리기 위해 구분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B 지역은 교통로이며 군사적 요해처 정도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 작성자이용현2 | 작성시간 13.05.30 잘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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