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연대기
앞에서 태조대왕 때까지 이야기를 전개했습니다.
146년 - 요동의 신안과 거향을 약탈하고 서안평을 공격하여 대방현령을 죽이고 낙랑태수 처자를 생포하였다.
이후 기록은 38년이 훌쩍 지난 후에 등장합니다.
고국천왕
184년 후한 요동태수가 침략해 오자 좌원에서 격퇴시킴
산상왕
198년 환도성을 쌓음
209년 환도성으로 도읍을 옮김
이 부분은 꺼내기가 쉽지 않은 내용입니다. 환도성을 많은 분들이 생각하시는 곳이 아닌 곳에 비정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태조대왕의 활발한 정복활동으로 고구려의 서쪽 영토가 크게 확장됩니다. 그리고 50년 가까이 이곳을 차지하게 됩니다. 지역이 안정화 되자 산상왕이 그 중심지에 환도성을 쌓았고, 도읍을 옮기게 됩니다. 세력 확장을 위한 전진 기지로도 생각할 수도 있고, 지역을 발전시키기 위한 방안일 수도 있습니다. 일단 환도성을 쌓았다는 것은 해당 지역을 장악했다는 의미로서만 정의를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산상왕이 환도성을 쌓고 도읍으로 삼았을 무렵 중국은 한참 위촉오 삼국의 시대입니다. 184년에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고, 208년에 적벽대전이 있었으니 중국은 온통 군웅들이 활보하던 시간이었습니다. 요동 지역도 공손일가가 나도 왕이다 외치며 독립을 하였으니 고구려의 확장도 비교적 순탄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마의가 공손연을 토벌하면서 국경을 마주한 양국은 새로운 갈등을 시작합니다.
동천왕
238년 위나라 사마의가 요동을 정벌할 때 병사 일천을 보내 도움
242년 고구려 서안평 공격
246년
- 8월 유주자사 관구검 고구려 공격 - 고구려 요격 (1회전, 2회전 고구려 승, 3회전 - 고구려 대패)
- 10월 환도성 방어 - 관구검 점령
- 유유가 거짓 항복하여 왕기 암살 - 고구려군 반격에 위나라 추격대 낙랑으로 퇴각
247년 평양성을 쌓고, 수도를 옮겼다.
동천왕의 남옥저를 경유하는 탈출 사건은 기록상 2개월이란 시간의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아, 10월의 환도성 방어에 실패하여 동쪽 아군 영역으로 탈출하는 과정인 것으로 사료됩니다. 위 그림에 그 경로로 표시하였습니다. 추격을 받다보니 우회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 거리는 남옥저까지 약 120km 정도입니다. 30km만 북상하면 고구려 영역에 해당하고 또 남옥저 바로 옆에 낙랑이 있으므로 지형적으로도 납득할 만한 루트라고 생각합니다.
남옥저를 낙랑의 서남쪽에 위치시킨 이유는 임둔군 때문입니다. 사서를 보면 옥저와 임둔이 함께 표현되며 점 1 지역은 임둔군의 봉니가 발견된 곳입니다. 이를 통해 낙랑의 서남지역을 남옥저, 낙랑의 동쪽을 동옥저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앞서 태조대왕때 동옥저를 점령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므로 이 부분도 함께 표현해 보았습니다.
관구검의 침략 이후 상황을 살펴보면 아래 그림과 같습니다.
관구검을 따라 고구려 정벌에 참여했던 목연은 모용외의 조부이고, 증조부 막호발 역시 사마의와 함께 공손연 정벌에 참여한 바 있는 지역의 세력가 입니다. 모용부는 고구려 정벌에서 공적을 인정받으면서 요동 서쪽에서 세력을 성장하게 됩니다. 환도성 유역은 동천왕이 동쪽으로 다시 천도함으로써 선비의 영역 즉, 실질적으로 모용부가 관할한 것으로 보입니다.
중천왕
259년 위나라 장군 위지해가 침략해 오자 기병 오천으로 양맥에서 싸워 8천을 죽음
서천왕
276년 신성 순행
280년 숙신이 침략해 오자 달가를 보내 이를 격퇴하고 단로성을 빼앗고 부락 6~7개를 복속
285년 모용외 부여 공격 -> 부여왕이 자살하고 1만여명 포로로 잡아 감.
288년 신성 순행
봉상왕
293년 모용외 침입 - 신성 피신
296년 모용외 침입 - 고국원(故國原)에서 서천왕릉 도굴후 퇴각 / 고노자 신성태수로 삼아 방비
위 그림에서 모용부가 갈사 지역을 공격하는 것으로 표현을 해 보았습니다. 해당 지역을 갈사 부여로 생각하는 이유는 그곳에 부여 유적이 있으며, 고구려의 확장 경로 위치해 있기 때문입니다. 태조대왕때 갈사국이 항복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항복이라는 의미를 통해 갈사 부여 왕조는 그대로 유지된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갈사 부여의 사람들은 왕을 잃고 동옥저 쪽으로 피신한 후 다시 되돌아 옵니다.
서천왕때부터 신성이 등장하기 때문에 그림에도 해당 지역을 표시해 보았습니다. 모용부의 세력이 성장하자 고구려도 병력을 증원하여 방비를 강화해 모용부의 신성 공격을 막게 됩니다.
위 그림은 고구려가 힘내서 다시 확장을 시작한 내용을 나타낸 것입니다.
미천왕
302년 현도군 공격 - 8000명 포로
311년 서안평 점령 - 낙랑군과 대방군 보급로 차단
313년 낙랑군 군벌 장통 요동으로 퇴각
314년 대방군 병합
317년 현도성 공격
318년 서진 최비와 함께 모용외를 공격 -> 실패
319년 서진 최비가 요동을 잃고 고구려로 망명, 모용외 요동 장악, 고구려 요동 공격.
320년 고구려 요동 공격
미천왕때 비로서 한 4군 지역을 장악합니다. 모용외는 319년에 요동지역을 장악하였고, 이후 국경을 마주한 모용부와 고구려의 전쟁 2 리운드가 시작됩니다.
고국원왕
334년 평양성 증축
335년 신성축성
336년 전연에서 반란세력 곽충, 동수 망명
338년 후조와 전연의 전쟁시 후조와 내통했던 봉추, 송황 망명
339년 전연 신성 함락
342년 환도성, 국내성 증축
342년 전연 환도성 함락 (북쪽길 1만 5천명, 남쪽길 5만명을 진군 - 고구려 전연의 기만전술에 당해 북쪽으로 5만을 보냈다가 환도성 함락됨. 고국원왕 피신, 모후 주씨 포로. 퇴각 미천왕릉도굴, 5만명 포로등)
343년 고국원왕 전연에 신하의 예 취하여 미천왕 시신을 돌려받음
345년 전연 남소 함락
346년 부여 공격 - 5만명 포로
355년 모후 주씨 고구려 반환
369년 2만으로 백제의 치양에 진을 쳤으나 백제의 반격으로 수곡성까지 빼앗김
371년 백제를 재 침공하였으나 백제의 매복에 걸려 대패하였고, 평양성에서 방어하다 전사.
모용외의 뒤를 이은 모용황이 모용부를 장악한 후 고구려와의 결전이 시작됩니다. 고구려는 신성 방어를 강화하였지만 실패하여 화의를 청하였고, 다시 옛 환도성을 수리하여 그곳으로 도읍을 옮겨 전진 기지로 삼았지만 모용황의 계책에 의해 환도성이 점령당하게 됩니다. 환도성은 불타 폐허가 되었고, 고구려 사람 5만여명 포로로 잡혀갑니다. 고국원 왕은 평양성으로 되돌아왔고, 이후 굴욕적인 외교를 당하게 됩니다. 모용황의 공격은 여기에 끝난 것이 아닙니다. 남소를 함락하고 부여까지 집어 삼킨 것입니다. 아래 그림을 통해 양국의 국경 지역을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서 잠시 남소성과 목저성에 대해 군사적 특징을 설명드리겠습니다. 남소성은 옛 구다국 지역이며 오랫동안 낙랑과 경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군사적 요충지가 완비된 상태입니다. 또한 목저성도 마찬가지입니다. 낙랑과 국경에 해당하기 때문에 방어선이 구축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고구려와 전연과의 국경을 다시 정리해 보면 목저성과 서안평 지역이 될 것 입니다. 남소성 영역은 과거 남소성과 낙랑 사이에 전투가 없었던 것으로 보아 전쟁이 발발하기 힘든 지형을 가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고구려를 제압한 전연은 주변 선비족마저 제압한 후 본격으로 서쪽 유주로 향하게 됩니다. 전연은 355년 모후 주씨의 반환을 통해 고구려와의 관계도 개선하여 동쪽 국경을 방비한 후 중국 내륙으로 남하하게 됩니다.
* 참고 : 2013년 12월 10일 현재
고구려의 초기 중심지가 서쪽으로 이동하게 되어 이 부분에 대한 많은 내용들이 변경 될 것 같습니다.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쉰여시 작성시간 13.05.31 지도에 승덕.평천을 표시해 줄 수 있을까요?
집에 굴러다니는 책이 하나 있는데, -잘못된 역사지리 바로잡는 우리나라 강역고-란 것이고, 우연히 펼쳐 들여다 보다가 이상한 구절이 하나 눈에 들어왔습니다.
거기에는 ``만약 열수의 상류로 패수를 삼는다면 험독은 당연히 승덕.평천 근처에 있을 것이고, 만약 대릉하로 패수를 삼는다면 험독은 당연히 조양 근처에 있어야 한다``
대체 이게 무슨 말이지요?
전번 글 댓글에서 푸른 색으로 표시한 a.b.d 지역에 대해 질문했는데,
혹시 그곳이 승덕과 평천이 있는 곳 아닌가요?
저 책 지은이가 남당 박창화라고 하는데, 도통 무슨 이야긴지 헷갈리네요. -
답댓글 작성자카론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3.05.31 마지막 지도에 승덕과 평천지역을 표시하였습니다. 요하의 상류부는 적봉 북서쪽에서 발원하는 강과 승덕,평천지역에서 발원하는 강이 있습니다. 각 강의 이름도 있는데 생각이 나지 않는군요.일단 옛 기록에 도시들을 설명할 때 패수에 대한 내용이 많습니다. 그래서 역사학자들이 여러 강들을 패수로 설정한 다음에 기록에 등장하는 도시들을 찾아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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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쉰여시 작성시간 13.06.01 승덕.평천이 저기군요.
질문 하나 할께요.
요동이라 표시한 지역에 대한 근거가 뭔지 궁금합니다. -
작성자카론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3.06.02 고구려토론방 게시글 6134, 고구려-수 2차 전쟁 편에 요동의 위치에 대한 내용을 정리 하였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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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쉰여시 작성시간 13.06.03 읽고 왔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의문이 드느군요.
그곳이 요동군이라면 요하가 난하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런가요?
또 그곳이 요동군이라면 그곳에 유주의 진산이라는 의무려산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