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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노하라신노스케 작성시간16.03.02 당시 평양에는 한이 설립한 낙랑군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낙랑군이 케어하는 범위가 생각보다 큽니다. 당장 백제가 충돌하고 있으니까요. 옥저 지역에 있었다는 근거로 들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일단 전한이 망하고 왕망의 신이 들어설 때 낙랑군 역시 일시 본국의 혼란상을 등에 업고 독립합니다. 물론 정신을 차린 본국이 재수습하는데.. 이 때 동부도위 지역을 본국인 한이 포기합니다. 이 동부도위 지역이 옥저 지역이고... 이 동부도위가 낙랑국이었다 보는 것입니다. 실제 삼국사기에도 호동이 옥저를 순행하다 낙랑왕을 만났다고 하지요. 이 점도 그런 해석을 뒷받침해주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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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王運 작성시간16.03.04 노하라신노스케 참 웃긴 게 저런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과 맞지 않는 사람들을 툭 하면 식민사학으로 몰고가지요.
(마치 자신과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고 너 빨갱이지? 너 반동분자지? 하면서 몰고가는 것처럼.)
게다가 토론을 벗어나서 이상한 꼬투리를 잡기도 하고...
노하라님이 꼬투리 잡힌 닉네임의 경우 일본 만화 캐릭터 이름을 닉네임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한국이든 서양이든 얼마나 많은데... 그럼 그 사람들은 다 친일파 내지 의심스러운 사람인가 봅니다.
무엇보다 낙랑군 평양설은 정약용, 한백겸 등 조선 후기 실학자들도 주장한 내용이니 저 주장대로라면 실학자들도 식민사학에 물들었다는 굉장히 어처구니 없는 주장이 되지요. -
작성자 효도지성 작성시간16.03.12 저는 평해거사님에 한표!! 평양이란 지명은 아사달과 같습니다 그것을 한자식으로 표현 했을뿐입니다
지금 평양이 낙랑군이라는 말은 당치도 않습니다 유물이 나왔다고 거기가 낙랑이 될수는 없지요
하기사 경주에도 흉노 아띨라 칼과 비슷한것이 발견 되었는데 그렇다면 아띨라가 경죽까지 지배 했다는 말인가?
공주에도 양나라식 문물이 발견 되엇다면 양나라가 백제를 지배했다는 논리와 같습니다 진니라 한나라 시절 중국에서 전쟁을 피해 이주를 많이했고 그들 후예가 교역을 통해 얼마든지 반입할수 있습니다 윤내현 교수님 논문도 요동에 낙랑과 평양에 낙랑은 다르다고 하는 논문이 있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