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부여 북부의 약수에 대해서 궁금하네요.
2. 부여 사출도에 대한 간단한 설명 부탁드려요
3. 태조왕이 한나라와 연합해 부산의 적을 격파했는데 부산은 어디로 고증되고 있죠?
4. 고구려의 개마대산은 현재 북한의 개마고원으로 봐야하나요?
5. 삼국지 동이전에 나오는 조선은 대체 뭔가요?
6. 고구려를 일명 맥이라 하는 이유는 뭐죠?
7. 진서 동이전 부여기록을 보면 예성이 있고 그 성은 예맥을 성이라 하는데 무슨소리죠?
8. 삼국사기 태조왕기 마지막부분을 보면 "해동고기엣는 고구려 국조왕 고궁은 후한 건무 29년에 계사에 즉위하니, 이 때 나이가 7세였기에 때문에 그 어머니가 섭정하였다. 효환제 본초 원년 병술에 이르러, 동복 아우 수성에게 왕위를 내어주니 이 때 궁의 나이가 1백세로서, 재위 94년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니 건광 원년은 곧 궁의 재위 69년에 해당한다. 한서의 기록과 고기의 기록이 서로 다르니, 혹시 한서의 기록이 틀린 것이 아닌가?" 라고 김부식은 글을 남겼는데, 태조왕 재위 69년은 서기 121년으로 태조왕이 11월에 부여에서 돌아와 수성에게 군사와 정권에 대한 전권을 물려준 시기입니다.
이 시기에 대한 해동고기와 한서와의 기록이 다르고 김부식은 한서의 기록이 틀린게 아닐까 하고... 말하는데... 그러면 역시... 내부분열로 인한 고구려와 한나라 사관이 각기 다르게 적을수 밖에 없었던 것이 되겠네요.
9. 거도는 간이었고 우시산국과 거칠산국을 토벌했습니다. 탈해 이사금 시절의 인물인데 당시 간은 어떤 직위였고 우시산국과 거칠산국은 어디 있던 거죠?
10. 수성왕 점토문을 다운 받았는데 수성왕 점토문 맨 첫 글자가 정시 연간에.. 라고 시작되는데 누가 주석을 달았는지 모르겠지만 동천왕이 위나라의 연호를 바꾼걸 축하하였다고 해서 고구려가 위나라 연호를 사용했을거라 글을 남겼는데 과연 옳은 해석인가요?
11. 수성왕 점토문 마지막 부분에 수성왕 10년 동서남북의 수가 명제를 이어 영동을 몰아내고 개척하였다... 라는 글이 나오는데 이때의 명제는 과연 누구를 지칭할까요? 明帝는 추모왕으로 볼 수 없는게 그 다음줄에 추모왕의 뜻을 이어.. 라는 글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럼 대체 추모왕이 아닌 다른 황제는 누굴까요?
12. 맨 마지막... "국도를 건설하고 현토군을 넘겨 받았다." 무슨 말이죠?
요렇게 12가지가 의문입니다.
2. 부여 사출도에 대한 간단한 설명 부탁드려요
3. 태조왕이 한나라와 연합해 부산의 적을 격파했는데 부산은 어디로 고증되고 있죠?
4. 고구려의 개마대산은 현재 북한의 개마고원으로 봐야하나요?
5. 삼국지 동이전에 나오는 조선은 대체 뭔가요?
6. 고구려를 일명 맥이라 하는 이유는 뭐죠?
7. 진서 동이전 부여기록을 보면 예성이 있고 그 성은 예맥을 성이라 하는데 무슨소리죠?
8. 삼국사기 태조왕기 마지막부분을 보면 "해동고기엣는 고구려 국조왕 고궁은 후한 건무 29년에 계사에 즉위하니, 이 때 나이가 7세였기에 때문에 그 어머니가 섭정하였다. 효환제 본초 원년 병술에 이르러, 동복 아우 수성에게 왕위를 내어주니 이 때 궁의 나이가 1백세로서, 재위 94년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니 건광 원년은 곧 궁의 재위 69년에 해당한다. 한서의 기록과 고기의 기록이 서로 다르니, 혹시 한서의 기록이 틀린 것이 아닌가?" 라고 김부식은 글을 남겼는데, 태조왕 재위 69년은 서기 121년으로 태조왕이 11월에 부여에서 돌아와 수성에게 군사와 정권에 대한 전권을 물려준 시기입니다.
이 시기에 대한 해동고기와 한서와의 기록이 다르고 김부식은 한서의 기록이 틀린게 아닐까 하고... 말하는데... 그러면 역시... 내부분열로 인한 고구려와 한나라 사관이 각기 다르게 적을수 밖에 없었던 것이 되겠네요.
9. 거도는 간이었고 우시산국과 거칠산국을 토벌했습니다. 탈해 이사금 시절의 인물인데 당시 간은 어떤 직위였고 우시산국과 거칠산국은 어디 있던 거죠?
10. 수성왕 점토문을 다운 받았는데 수성왕 점토문 맨 첫 글자가 정시 연간에.. 라고 시작되는데 누가 주석을 달았는지 모르겠지만 동천왕이 위나라의 연호를 바꾼걸 축하하였다고 해서 고구려가 위나라 연호를 사용했을거라 글을 남겼는데 과연 옳은 해석인가요?
11. 수성왕 점토문 마지막 부분에 수성왕 10년 동서남북의 수가 명제를 이어 영동을 몰아내고 개척하였다... 라는 글이 나오는데 이때의 명제는 과연 누구를 지칭할까요? 明帝는 추모왕으로 볼 수 없는게 그 다음줄에 추모왕의 뜻을 이어.. 라는 글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럼 대체 추모왕이 아닌 다른 황제는 누굴까요?
12. 맨 마지막... "국도를 건설하고 현토군을 넘겨 받았다." 무슨 말이죠?
요렇게 12가지가 의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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