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식의 기원은 보호설(Protect rheory), 정숙설(Modesty theory), 장식설(Decoration theory) 등으로 설명되고 있다.
보호설의 경우
신체적 보호설-환경 및 기후로부터 보호하기 위함이라는 설
심리적 보호설-의복을 통해 심리적 안정이나 만족을 취하거나 복식의 토테미즘(악귀를 쫓기 위한 상징적인 의복) 복식의 트로피즘(용맹, 힘, 우월성, 사회적 지위를 강조하기 위해) 복식의 테러리즘(상대방에게 위압감을 주기 위해)을 추구하기 위함이라는 설
크게 신체적 보호설과 심리적 보호설로 나뉘며
정숙설의 경우
신체적 노출에 대한 수치심에서 의복을 착용했다는 이론이나, 정석성에 대한 개념이 문화마다 다르며(누군가는 발을 노출하는게 수치로 여겨질 수도 어떤 문화에서는 손을 노출하는게 수치인 곳도 있음) 연령에 따라서 다르기에 이차적인 동기로 여겨진다.
반면 이 비정숙설(Immodesty theory)의 경우 정숙설과 반대되는 이론으로 의복이 오히려 신체 특정 부분에 주의를 끌기 위함이라는 이론이 있다.
장식설의 경우
인간의 신체를 아름답게 장식하고 거기에 기쁨을 얻고자 하는 욕구에서 의복이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다. 가령 선사시대때도 쓰인 목걸이나 장신구류가 그런 예이다.
장식 방법으로 신체장식(상흔이나 문신, 채색이나 제거-부족에 따라서 코나 입술을 뚫는 경우 변형-가령 편두처럼 이마를 누르거나...), 복식을 통한 방식으로 나뉠 수 있다. 복식을 통한 방식은 가령 동물의 뿔이나 나뭇가지로 관모를 만들거나 방향적인 장식을 사용하는 등의 형태를 말한다.
복식의 형태적으로 보자면
●봉재의(tailored garment):동물의 가죽 등을 재료로 재단과 봉합을 거쳐 만듬. 주로 한대지방에서 발전(에스키모복장, 인디어 복장)
●권의(draped garment):직물을 길게 짜서 그대로 몸에 두르는 형태. 아열대 지방에서 발전한 형태(이집트의 센티, 그리스의 키톤, 로마의 토가, 인도의 샤리)
●복합의(composite garment): 봉재의와 권의 두가지 특성을 가진 형태로 온대 지방에서 발전한 형태이다.
전합의(caftan)와 통형의(tunic)로 구분된다.
전합의는 좌우를 앞에서 여미는 형태로 주로 한복, 몽고, 중국과 일본의 복식이 이러한 전합의의 특성을 나타낸다.
통형의는 트임이 없이 머리에서 아래로 내려입는 형태인데 원피스와 같은 착용방식이다. 유럽 민속의상이 통형의를 띈다고 한다.
상대사회의 복식
한국 의상의 기원은 북방 호복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청동인물상이나 고분벽화로 나온 바지를 입는 형태로 보아 스키타이계나 기마민족의 영향을 받았다는게 다수를 차지하는 모양이다.
의복구성은 보통 상의와 하의, 장유로 나눌 수 있다.
1. 상의
유(襦 저고리)의 경우 사서에서는 유(襦), 삼(衫), 단의(短衣), 저고리(赤古里)로 기록되어있다. 문헌에서 저고리라는 말이 처음 기록된건 1420년(세종 2) 원경왕후 천전의(遷奠儀)에 나오는 ‘赤古里’ 또는 ‘短赤古里’라는 기록이다.
유(襦)라는건 중국에서 그들의 긴 길이의 포(袍)에 비해 짧은 상의를 가리키는 말이었던걸로 생각되며 우리나라에서 착용된 상의는 좌임(左衽)이며, 적령교임식의 엉덩이선까지 길이로 소매통은 좁고 보통 옷의 가장자리에 선을 두르고 있었다. 허리에는 띠를 둘렀다.
다만 중국과의 교류로 갈수록 우임으로 변해갔다는걸로 보인다.
삼국시대의 벽화 등을 보면 좌임과 우임이 혼용되던 때도 있던걸로 보이나 고려때가 되면 우임으로 정착된다.
2. 하의-바지
우리나라의 바지의 원형은 가죽제의 통이 좁은 형태가 기본형으로 보이나 재료의 변천에 의해 약 3가지로 나눠진다.
세고-바지통이 좁은 형태의 가죽으로 만든 복장
궁고-직물을 사용하면서 말을 탈때 밑이 터지지 않기 위해 당을 따로 부착한것이 궁고이다.
관고-외관이 직선적이고 여유있는 형태. 궁고와 같은 재료의 변천으로 발생한 양식으로 보인다.
사서에서는 고, 곤, 가반, 파지 등으로 기록되어있다.
바지를 가반이라고 지칭한건 신라어의 기록으로 보이며 양서 제이전(諸夷傳)과 남사 동이전(東夷傳)의 신라조에는 신라인들이 유를 위해 고(袴)를 가반(柯半)이라고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남자는 바지를 겉옷으로 입었고 여자는 겉옷으로도 입었지만 속옷의 성격도 갖고 있다.
3. 하의-치마
사서에서는 상또는 군으로 기록되어있고 여성의 경우 바지와 치마를 혼용해서 착용하였다.
9년(서기 32).... 임금은 6부를 정하고 나서 이를 두 편으로 나누고, 임금의 두 딸로 하여금 각각 부내의 여자들을 거느려 편을 짜게 하였다. 이들 두 편은 가을 7월 16일부터, 매일 새벽에 큰 부의 뜰에 모여 길쌈을 시작하여 밤 열 시경에 끝냈다. 그들은 8월 15일이 되면 길쌈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를 헤아려서, 진 편에서 술과 음식을 차려 이긴 편에 사례하였다. 이때 노래와 춤과 여러 가지의 놀이를 하였는데, 이 행사를 가배(嘉俳)라고 하였다. 이때 진 편에서 한 여자가 일어나 춤을 추면서 탄식하는 소리로 “회소, 회소!”라고 하였다. 그 소리가 슬프고도 우아하여, 뒷날 사람들이 이 곡에 노랫말을 붙이고, 회소곡(會蘇曲)이라고 하였다.
이 이야기의 구성을 정리하면 이렇다.
①6부를 정하고 이를 두편으로 나눈다.
②임금(유리왕)의 두 딸로 하여금 부 내의 여자들을 거느려 편을 짜게 함.
③두 편은 가을 7월 16일부터 새벽에서 밤 열시경에 길쌈을 함.
④8월 15일에 길쌈을 얼마나 했는지 헤아리고 승패를 가림.
⑤진편에서 이긴편에게 술과 음식을 차려서 사례함. 이 행사가 가배
⑥진편에서 춤을 추며 탄식하는 소리가 ‘회소, 회소!’라고 하여 훗날 회소곡이 됨.
초기 사로국 시절의 신라가 국가 차원에서 방직을 장려했으며 왕의 딸까지 참여하여 방직활동을 했다는게 흥미로운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행사는 여성들의 방직활동을 장려하기 위한 국가정책의 일환었다고 해석된다. 그리고 6부 여인들이 한 달간 동원되어 직조하는 노동을 집단적으로 했던것은 일종의 요역(沓役) 내지는 신역(身役)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여기에서 생산된 베는 왕실이나 관청의 필요에 충당되었을 것이다.
한때 정리한 내용을 만화로 설명했을 때 더 이해도가 높아지고 몰입도가 높아지지 않을까싶어서 계획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