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 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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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신농 작성시간17.08.24 저도 장영주 선생님과 같이 대학원 수업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이번 같은 학기에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선생님께서도 지인이신 줄은 몰랐습니다. ㅎㅎ 저는 장선생님의 논문에 덧붙여, 이유립이라는 사람의 행적을 보면 그와 환단고기를 더욱 믿을 수 없다고 봅니다. 실제 일제강점기에는 친일종교 단군교와 연계된 친일유교단체 조선유교회에서 열성적으로 활동하다가, 해방 이후에는 이에 대한 일언반구도 없이 자신의 경력을 독립운동계열인양 세탁한 사람이 고대 사서라고 남긴 책을 믿는다는 것은 말 그대로 넌센스일 뿐입니다. 그가 고성이씨라고 하지만, 솔직히 대종교도였던 해학 이기나 석주 이상룡과 어떤 직접적인 관련이 있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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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신농 작성시간17.08.24 의심스럽습니다. 같은 본관 아래서도 독립운동가와 친일파가 있기도 했던 현실 속에서, 그들 내지 그 친족들의 직접적인 교류가 없었다면 본관은 큰 의미가 없지 않은가 합니다. 더욱이 그는 대종교의 분파로서 태백교를 창교했다고 주장했지만, 정작 대종교 측에서는 그런 분파 자체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수 년 전 저도 대종교 측에 직접 이런 사실들을 확인하고 이유립과 환단고기에 대한 단편 글을 작성한 적이 있습니다만, 대종교 측에서 환단고기에 옹호적인 내부 교단 일각의 사정상 이 글을 아직 공개하지는 않기를 바라는 까닭에 배포하지 못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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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신농 작성시간17.08.24 암튼 환단고기에 대해서는 지난번 적었던 댓글 내용 중 "환단고기의 인식은 이유립 자신이 과거 경력을 세탁하기 위해 과거 일본 제국주의의 주체를 단지 일본에서 한국으로 치환한 것에 불과한 것으로 보아야 할 정도"라는 말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합니다. 종교사상적 측면에서 그에게 영향을 준 것으로 여겨지는 단재 정훈모(홍암 나철과 더불어 대종교 초기사의 주역이었던 대표적 지식인으로서 대종교 경전의 상당수가 그의 영향이라는 말도 있으나, 대종교 창시 무렵 갈라서 친일종교 단군교의 교주가 됨)의 사상을 연구해볼 필요는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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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신농 작성시간17.08.24 80년대 재야사학에서 예컨대 대종교도였으며 이후 총전교를 역임하기도 했던 안호상의 경우에는 극단적일 망정 민족진영에 속했던 것은 분명하고(대종교도 백산 안희제가 그를 독일로 유학보냈다고 함), 그가 이범석과 더불어 족청계로 불리는 한국 현대사의 대표적인 파시스트였다고 할지라도, 그들에 대한 비판 지점은 친일과는 전혀 달라야 한다는 점에서 과거 재야사학은 다양한 사람들의 집합이었다고 보아야 겠지만, 아무튼 이유립 개인에 대해 제가 오랫동안 파악해온 정보들은 이러한 결론에 도달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