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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五胡)의 쟁패 3 - 영가의 난

작성자야스페르츠| 작성시간09.02.23| 조회수464|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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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김준수 작성시간09.02.23 『진서』「왕 미 열전」과『세설신어』에는 왕 미가 고구려를 침공했던 무구 검 휘하의 장수 현토태수 왕 기(王頎)의 손자라고 합니다. 가문으로 보자면 단순한 도적출신은 아니었던 셈이지요. 사실 '도적'이라는 표현도 서진 왕조 입장에서 도적이지 실제와는 좀 달랐던 것 같습니다. 여하간 중원을 이롭게 했던 사람의 자손이 오히려 흉노군의 장수가 되어 중원을 해롭게 하니 참으로 역사의 역설이라 아니할 수 없군요. 반대로 보면 중원을 제외한 여타 국가들에게는 왕 미가 엄청나게 보너스를 팍팍 쓴 셈이 됩니다만.
  • 답댓글 작성자 야스페르츠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09.02.25 앗. 왕미 열전이 있었군요. 재기만 보고 왕미는 안나온다고 생각했었는데.. ㅡㅡ;
  • 작성자 성법맨 작성시간09.02.25 저 시기. 만일 유요나 유총이 북방 유목민족의 대동단결을 추구하면서 대한(?)으로 나갔다면 역사 자체가 바뀌었을지도 모릅니다. 전 중국을 처음으로 지배한 정복왕조가 원제국이 아닌, 북방 유목민족의 한제국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서구 로마제국도 69년, 이런 생각을 가진 율리우스 키빌리스가 바타비 족을 비롯한 전 게르만 제족을 이끌고 반란을 일으킨 적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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