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3년 7월, 부견은 동진 원정을 공식적으로 선포하고 대규모 징발을 개시한다. 장정 10명 당 1명을 징집하여 보병 60만, 기병 27만의 대군을 구성한 것이다. 그야말로 전례가 없는 엄청난 대군이었다. 여기에 서역으로 원정을 떠난 10만 명, 기타 수비군들까지 합치면 100만을 훌쩍 넘는 경이적인 군대다. 이렇게 엄청난 대군이니 전선의 규모도 압도적이었다.
부견의 본군이 형주와 예주로 진격하고, 촉과 한중의 군사는 각기 장강과 한수를 따라 내려온다. 하북에서 징집된 군대는 연주와 서주로 진격하여 팽성(彭城)으로 향하는 가운데 머나먼 양주(凉州)에서 출발한 군사는 이제 겨우 함양(咸陽)에 이르렀을 정도였다. 동진과의 국경 전체 1만여 리에 걸쳐서 뭍과 물로 압박해 들어갔던 것이다. 부융(苻融)과 모용수가 이끄는 선봉군의 규모만 30만에 이르렀으니 가히 압도적이었다.
이에 맞서는 동진의 포진은 크게 두 방면에 나뉘어 있었다. 환온의 동생 환충(桓沖)이 지휘하는 서부는 형주 지역을 방어하였으며, 사안(謝安)이 지휘하는 북부는 서주와 양주(揚州) 지역을 담당하고 있었다. 환충이 주로 상대하게 될 적은 모용수의 선봉군과 촉·한중의 군대였고, 사안은 부융의 선봉군과 부견의 본군, 하북군을 상대해야 했다. 말 그대로 풍전등화. 언제 꺼질지 모를 위태로운 모습이었다. 사안은 이 시대, 청류파의 모습이라도 보이려는 듯이 태연함을 가장하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방어작전을 전개하였다.
반면 이들을 공격하는 부견은 자신만만했다. 출정하기도 전에 당시 동진의 황제 사마창명과 환충, 사안을 잡아와 살게 할 저택을 짓게 하고, 미리 관직까지 내려놓았을 정도이니 얼마나 기고만장했을까. 어떻게 보자면 적을 얕보았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100만에 가까운 대군을 동원하여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로 전선을 전개하는 것은 적을 얕보는 사람의 작전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자만과 자신감의 미묘한 경계라고나 할까.
마침내 10월, 부융이 이끄는 선봉군이 비수(淝水) 서쪽의 수양(壽陽)을 점령하여 교두보를 마련하였다. 모용수도 운성(鄖城)을 점령하여 환충을 압박했다. 환충의 전략적 위치는 컸지만, 어쨌거나 전쟁의 핵심은 수도 건강을 직접 위협할 수 있는 회수 방면이었다. 그러다보니 모용수는 운성 점령을 끝으로 특별한 군사 활동은 보이지 않고 환충을 압박하는데 전념한다. 반면 전쟁의 중심이 되는 회수 방면에서는 연일 치열한 격전이 계속되었다.
※ 병력 배치도
수양을 교두보로 하여 부융은 협석(硤石)을 포위하였고, 양성(梁成)은 낙간(洛澗)에 목책을 설치하고 구원군의 진격을 막았다. 동진의 사석(謝石)과 사현(謝玄)은 양성과 대치하면서 진격하지 못한 채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협석에서 포위당한 호빈(胡彬)은 양식이 다 떨어져 사석에게 구원을 청하는 밀사를 파견하였는데, 이 밀사가 도중에 부융의 군대에게 포획되고 말았다.
밀사를 통해 동진 군의 포진을 알게 된 부융은 부견에게 사신을 보내 신속하게 적을 격파할 것을 청하였다. 부견 역시 속전속결로 끝내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하여 주력군을 뒤로 한채 경기병 8천과 함께 밤낮으로 말을 달려 수양으로 향했다.
부견이 수양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은 사석은 지구전을 펼치려고 하였는데, 마침 바로 그때 부견이 파견한 사신이 진중에 찾아왔다. 사신으로 온 사람은 주서(朱序), 과거 양양 공방전에서 끝까지 항복하지 않고 싸웠던 사람이다. 주서는 일단 부견의 말을 전했다.
강약의 기세가 다르니 빨리 항복하는 것만 못하다.
强弱異勢,不如速降。
일단 임무를 마친 주서는 즉각 옛 조국이었던 동진의 신하로 돌아섰다. 부견이 본군을 후방에 남겨두고 빠르게 말을 달려 전선으로 나온 것을 밝히고, 본군이 도착하기 전에 먼저 선봉을 격파하는 것이 낫다고 고한 것이다. 사석은 급히 작전을 바꾸어 신속히 유뇌지(劉牢之)를 보내 양성의 봉쇄군을 공격하게 하였다. 유뇌지는 열세한 병력을 가지고도 저돌적으로 공격하였다. 병력도 압도적이었고, 도하를 저지하는 입장에 서 있었던 양성이었지만 저돌적인 유뇌지의 공격은 전략·전술적인 법칙을 깨부셔버렸다. 양성을 비롯하여 여러 장수들이 죽거나 포로로 잡히고, 진의 군대는 1만 5천 명의 인명피해를 입은 채 패주하고 말았다.
사방에서 압박을 당하고 있던 동진군에게는 그 어떤 것보다 희망적인 승전보였다. 부견은 승승장구하던 기세를 꺾였고, 사안은 봉쇄를 뚫고 진격할 수 있게 되었다. 사석은 유뇌지를 협석으로 보내 지원하도록 하고 자신은 본군을 이끌고 수양을 향해 진격하였다. 사석의 군세는 8만, 아직 부견의 본군이 도착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병력 면에서는 여전히 압도적인 열세였다. 그러나 최초의 승리로 격하게 고무된 사석의 군사는 거리낌없이 진격했다. 마침내 비수의 동쪽, 팔공산(八公山)에 이르러 군사를 포진한다.
부견과 부융은 수양성에서 동진의 군세를 살펴보았다. 풀숲이 울창한 팔공산에 포진한 동진군의 수는 정확하게 알기 어려웠다. 산을 뒤덮고 있는 숲 속에 얼마나 많은 군사가 있을까? 숲의 나무들이 모두 적군으로 보일 정도로 부견은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 괜히 애꿎은 부융에게 호통을 칠 뿐이었다.
이 또한 강한 적인데, 어찌 약하다고 했는가!
此亦勁敵,何謂弱也!
※비수전투 상세도
부견은 비수를 사이에 두고 널리 포진했다. 지난 전투에서 도하하는 적에게 격파당하는 수모를 겪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전술적으로 압도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는 것은 분명했다. 사석 역시 도박은 한 번으로 족했다. 강을 건너다가 공격이라도 받았다가는 일패도지하는 수 밖에는 없다. 사석은 적의 진중으로 사절을 보냈다.
그대의 현군(懸軍)이 깊이 들어왔는데 물에 가까이 진지를 치니, 이는 곧 지구전의 계책이고 빨리 싸우고자 하는 것이 아니군요. 만약 진지를 옮겨 조금 물러나면 진(晉)의 병사가 건널 수 있게 되니, 이로써 승부를 결정하는 것이 역시 좋지 않겠습니까?
君懸軍深入,而置陳逼水,此乃持久之計,非欲速戰者也。若移陣小却,使晉兵得渡,以決勝負,不亦善乎!
공격해 들어온 적이 지구전을 펼치고 수비하는 측이 전면전을 요구하고 있으니 주객이 전도된 꼴이었다. 엄친아 부견에게는 배알이 뒤틀리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여러 장수들이 계속 막고 있을 것을 주청하였지만, 부견에게는 한수 위의 계책이 있었다. 군사를 물려 적이 도하하도록 한 후에 절반 쯤 건너왔을 때 들이치려 한 것이다. 기책이라 할 정도는 아니지만, 나무랄데 없는 전술이었다.
사석이 이 기본적인 계책을 깨닫지 못했을까? 아무리 초전의 승리로 고무되었다고 해도 이렇게 불리한 상황에서 오히려 전면전을 펼치려는 것은 무엇인가 이상하다. 부견의 본군이 합류하러 올지도 모르니 빨리 전투를 벌여야할 이유는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도박적인 전투는 무모한 것이었다. 어느모로 보나 무엇인가 믿는 구석이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부견이 이 사실을 몰랐을까? 나는 부견이 이 사실을 깨닫지 못했거나, 알았어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을 것 같다. 그것이 엄친아, 이상주의자의 사고방식이다. 게다가 열세한 적에게 우세한 아군이 "꼬랑지를 말고 있느냐? 한 판 붙자!"고 도발을 당한 셈이니, 감정적인 격양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어쨌거나 부견은 작전대로 군대를 후퇴시킨다. 그리고 후퇴와 함께 동진군의 도하도 시작되었다. 이것은 추측이지만, 동진군의 도하 속도도 예상보다 훨씬 빨랐을 것이다. 승세를 타고 저돌맹진하는 군대에게 강 하나 쯤 건너는 것은 일도 아니다. 여기에 더해서 사석의 계책이 작렬했다.
진(秦)의 군사가 패했다!
秦兵敗矣!
부견의 군대로 돌아와있던 주서가 부견군의 배후에서 크게 소리치며 군대를 선동한 것이다. 주서와 사석의 모의는 사료에는 기록되어있지 않다. 그러나 부견군이 군대를 물리자 마자 주서가 소리친 것이나, 어이없는 패배로 미루어 보건대, 주서와 사석은 낙간에서 만났을 때 이 모든 것을 계획했다고 보는 편이 합리적이다. 이런 모의가 있었기에 사석은 적은 군세로도 과감하게 정면 승부를 걸었던 것이리라.
거짓 후퇴를 하고 있던 부견군은 순식간에 전면 도주를 시작했다. 말 그대로 붕괴였다. 전쟁에서 숫자의 폭력보다 무서운 것이 군대의 기세다. 압도적인 대군이 주서의 세 치 혀에 농락당해 통제불능으로 도주하게 된 것이다. 부융이 말을 달려 후퇴를 막아보았지만 중과부적이었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동진군의 맹추격까지 이어졌다. 부융은 혼란 속에서 낙마한 후에 적의 창에 꿰여 절명하고 말았다. 혼란을 안간힘을 쓰며 막던 대장까지 떨어지고 나자 군대는 완전히 붕괴해 버렸다.
각지에서 격전을 치르고 있던 군사들도 패주의 소식을 듣고 순식간에 패주하기 시작했다. 가장 중요한 전장에서, 그것도 국왕이 직접 참여한 전선이 무너졌으니 다른 전선이 무사할리가 없다. 이럴 때에 침착한 지휘관이라면 궤멸은 막을 수 있었겠지만, 부견군은 지휘관도 부족했고 군사들도 이런 상황에서 침착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 베테랑은 아니었다. 무사히 퇴각에 성공한 부대는 모용수가 이끄는 3만 명의 군대에 불과했다. 말 그대로 전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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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안은 통 속의 바둑돌을 만지작거렸다. 손님이 둘 차례였다. 바로 그때 파발마가 사안의 집 안으로 날듯이 달려 들어왔다.
"무슨 소란이냐."
전령이 화급히 올리는 서신을 받아든 사안은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서신을 책상 위에 내려 놓았다. 사안이 둘 차례였다. 바둑판을 지긋이 응시하고 있으니 손님이 물었다.
"무슨 편지입니까?"
"어린 아이들이 적을 물리친 모양입니다."
마치 어린 손자가 문 밖에서 뛰어노는 소식을 들은 것처럼 태연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바둑돌을 내려놓는 손길은 떨리고 있었다.
"악수(惡手)로군요."
"허허. 이런 소식에 동요하다니, 이 늙은이가 주책입니다."
애써 태연을 가장했지만, 문지방에 신발이 부딪혀 굽이 부러지는 것도 모를 정도로 흥분해 있던 사안이었다.
※동산보첩도(東山報捷圖) : 사안이 바둑을 두고 있고 멀리서 파발마가 달려오고 있는 장면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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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주하는 군대 사이로 화살에 부상을 입은 채 홀로 말을 달리는 부견. 유일하게 온전한 군대를 가진 모용수. 그리고 제각기 난세의 꿈을 품은 영웅들. 오호의 쟁패는 다시 새로운 국면으로 치닫기 시작한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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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麗輝 작성시간 09.04.25 오호~부견...드디어 무너지는구나~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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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성법맨 작성시간 09.04.26 중국 역사상, 최악의 군사적 삽질 시리즈 5를 만든다면 그 중 하나에 반드시 들어갈 비수대전입니다. 도대체 도하를 한다고 약속해 놓고 중간에서 그 약속을 깰 생각을 해야 정상적인 군인인데 이건 뭐..알아서 이겨주세요.라고 하는 데 부견의 관대함은 송양지인의 극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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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준수 작성시간 09.05.21 화북과 강남의 합병이 이루어지지 않은 점은 나름 긍정할만한 일이지만, 이로 인해 상대적으로 평화를 누리던 동-북 아시아의 정세가 파탄난 것은 아쉬운 부분이네요.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