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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河北) 내구(內丘)에서 새로 발견된 3기의 가마터유적. 보기 드문 수삼채(隋三彩) 출토

작성자비사인|작성시간12.11.28|조회수307 목록 댓글 0

하북(河北) 내구(內丘)에서 새로 발견된 3기의 가마터유적. 보기 드문 수삼채(隋三彩) 출토

 

발표시간 : 2012-11-27                                              출처 : 하북청년보(河北靑年報)

 

11월 25일, 기자는 중국고고학회 제 15차 연례회의 대표를 따라 내구로 왔다. 6월에 8기의 가마터군을 발견한 이래로, 또다시 새로 3기의 가마터유적이 발견되었다. 또한 보기 드문 수삼채와 당대 원앙통족분격반(鴛鴦筒足分格盤)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가마터 조합형식 완정(完整)

 

기자가 현장에서 본 바로는 유적 위엔 네모난 텐트가 쳐져있었다. 발굴 면적은 6월에 말했던 것보다 배가 넘게 증가하였고, 또한 수많은 유적들이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현재까지 발굴면적은 1,200㎡에 이르며 출토된 유구는 5종으로, 그 중에서 가마터는 11기, 회갱(灰坑)은 140여기, 회구(灰溝)는 6줄, 집수정[水井]은 30여 곳, 고분은 20여기 정도이다.

 

출토된 11기의 가마터를 폐기한 연대는 1기의 당나라 대의 것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수나라 대의 것이다. 하북성문물연구소(河北省文物硏究所) 연구원이자 형요가마터군고고대[邢窯窯爐群考古隊] 대장인 왕후이민[王會民]에 따르면, “가마터의 조성과 분포에 대한 특징을 살펴보면, 비교적 깊이 매장되어 있었고, 보존상태가 상대적으로 양호한 편이며, 크기는 일률적이지 않고, 가마터 앞의 작업갱[工作坑] 내의 폐기 퇴적물이 비교적 풍부한 편입니다.”라고 하였다. 일부 회갱에서는 비교적 많은 북조시대 유물들이 보이기에, 몇몇 가마터의 조성 상한 연대를 북조시대까지 올려 볼 수 있다. 회갱에서는 북조시대부터 수나라 초까지의 매우 중요한 유물들이 약 20여점 정도 출토되었다. “갱 내에는 유물들이 비교적 풍부한 편이며, 현재 발견된 가장 이른 시기의 형요(邢窯) 유적으로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또한 가마터가 북조시대에 축조되었을 가능성에 대한 중요한 근거가 됩니다.”

 

기자가 살펴보니 새로 발굴된 당대 가마터의 면적은 상대적으로 큰 편으로, 지표면 이상은 훼손 상태가 심한 편이었다. 11기의 가마터유적 중에서 3기는 ‘조합식’가마터군으로 이는 매우 보기 드물다. “가마의 노문(爐門)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데, 이는 고대 자기장인[燒瓷工匠]이 작업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것으로 봐야합니다. 먼저 발굴된 갱동(坑洞)의 네 면에서는, 도기를 만드는 가마가 있었고, 또한 동시에 자기를 굽고 만드는 작업이 이루어졌습니다. 이들은 모두 하나의 작업갱[工作坑]을 공용으로 썼습니다.” 왕후이민은 그 중에서 가마 2기의 중간에 있는 계단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말하였다. “현재까지의 형요 형식을 살펴보면, 이 2개의 가마문이 서로 떨어져있지만, 하나의 계단을 공용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이 2개의 가마를 한 가문이 쓰거나 2가문이 썼을 수도 있으며, 2가문이 쓴 경우 비교적 관계가 가까운 편이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보기 드문 수삼채 발견

 

출토된 유물 중에서 비교적 중요한 것으로는 글씨가 쓰인 기물로서, ‘高’ 혹은 ‘上’라는 글씨가 저부 외면에 서로 다른 크기로 새겨져 잔편으로 남아있다. 또한 ‘盈’ㆍ‘官’ㆍ‘翰林’ㆍ‘昌’ 등의 글자 해석과 용도 등의 문제가 도움을 바라고 있다.

 

이번 발굴에서는 총 20여 만 점의 각종 잔편이 출토되었으며, 이는 자기ㆍ도기ㆍ가마도구[窯具]ㆍ전돌ㆍ기와 등이 있다. 또한 보기 드문 수삼채가 출토되었는데, 유약은 주로 황갈색과 녹색 위주로 되어 있다. “삼채(三彩)가 최초로 출현한 것은 남북조시대로, 현재 출토된 것은 당삼채(唐三彩)가 비교적 많으며, 수삼채는 특히 적게 보입니다. 수삼채의 출토로 형요는 수나라, 심지어 더 이른 때에 이미 삼채를 제작했다고 볼 수 있으며, 당나라 이후에 다른 지방의 삼채를 모방해 만든 게 아니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왕후이민에 따르면 이번에 또한 ‘당사채(唐四彩)’의 잔편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자기 조각은 마름모 형태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기에, 자기베개[瓷枕]의 잔편으로 볼 수 있습니다. 남색ㆍ흰색ㆍ황색ㆍ녹색의 4색으로 구성되었으며, 때문에 ‘당사채’를 대표한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유적 구역 내에서 와당은 출토되지 않았으나, 와당 모양으로 조립되는 게 출토되었다. 수대의 조문(條紋)이 새겨진 백자완(白磁碗)이 출토되었으며, 또한 진귀한 당대 원앙통족분격반이 출토되었고, 이는 중간에서 두 조각으로 분리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이는 옛 사람들이 분찬(分餐)을 강구(講究)해왔다는 걸 설명해줍니다.” 왕후이민에 따르면 북조의 기물은 유약색이 단일하고, 대부분의 기물이 화장토(化粧土)로 사용되지 않았다고 한다. 수대에 들어 유약의 종류가 매우 늘어남에 따라, 대부분의 기물이 화장토를 사용하게 되었고, 유약색의 질과 양이 매우 좋아지게 되었다.

 

 

유적은 보호 난제(難題)에 직면해 있다.

 

이미 지표에 노출된 회갱 사이의 벽은 매우 얇아, 풍화작용이나 해동작용 등 외부 요인으로 인하여 흙이 박락되어 벽이 소실되는 등, 자연적으로 무너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고고대는 연구ㆍ조사ㆍ비교를 통해 최종적으로 아크릴 수지의 화학 물질을 선택하여 사용해, 표면에 칠함으로서 유적을 보호하고자 한다. “가마터군의 보호는 어려운 문제로, 이 방면에는 경험이 없고, 또한 보존 방법도 참고할게 없다보니 현재로서는 확실치 않습니다.”라고 관련인이 말하였다.

 

유적군이 이번 겨울을 안전하게 보내기 위해, 고고대는 유적을 덮을 ‘이불’을 준비하였다. “이 암면(岩棉 : rock wool) 또한 조사와 연구를 거쳐서 가져온 것으로 경제적이고 실용적입니다.”라고 왕후이민이 말하였다. 2012년 발굴작업은 종장에 이르렀고, 차후 남은 광대한 면적에 대해서도 발굴을 진행하고, 장기간동안 보존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하고 제정할 것이다. “현재 유적을 먼저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죠.”

 

기자 : 장칭화[張淸華]/글    본문기자 톈밍[田明]    실습생 허카이[何凱]/사진

 

http://www.kaogu.cn/cn/detail.asp?ProductID=15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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