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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수 太守

작성자김준수|작성시간02.12.10|조회수231 목록 댓글 0
개요
옛날 중국의 지방관(地方官).


'진(秦)' ·'한(漢)'의 '통일' 이후 중국에는 '봉건제' 대신
'군현제(郡縣制)'가 실시되었는데, '군'의 '장관'을 '태수'라 하였고
중앙정부로부터 임명되었다.

군사 ·재정 ·사법의 권한을 위임받고 지방의 실력자를 연(璣)
등 속관(屬官)으로 등용, 그들의 협력 아래 지방을 다스렸다.

관내의 관리 후보자를 효렴(孝廉)이라 하여 중앙정부에 추천하여
중앙과 지방과의 의사소통을 도모하였다.

태수의 연봉은 곡식으로 2,000섬이었으므로 후세에 이르기까지
지방장관을 이천석(二千石)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했다.

진나라 초에는 36군이 있었는데 뒤에 점차 세분되어 당(唐)나라
때에는 주(州)와 군이 혼동을 일으켰으므로 이후 군명은 없어지고
대신 현을 통할하는 것은 주였으며, 또한 주 가운데 특별한 것은
부(府)가 되었고 그 장관을 지주(知州) 또는 지부(知府)라고 불렀다.


또한 태수라는 호칭은 이슬람 제국에서도 쓰였는데 아라비아
인(人)의 정복시대로부터 우마이야왕조에 걸쳐서 칼리프의 전권
대리인(全權代理人)으로서 임지(任地)에서 모든 권력을 휘두른
아미르의 역어(譯語)로서 사용되었다.

아바스왕조 때 중앙집권화가 진척되어 아미르의 권한은
축소되었으나 한편으로는 전권을 장악하여 사실상 독립하는 예도
적지 않았다.

그 후 독립국가가 병존하는 시대가 되자 각 국가 내의 지방태수는
저마다의 호칭을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면 파티마왕조에서는 왈리, 사파비왕조에서는 베그랄베키,
오스만투르크에서는 산자크베이 등이다.

권한도 왕조에 따라 달라 일정하지 않았으나 대부분 군사권을
갖지 못한 단순한 행정장관에 불과하였다.


일본에서는 국수(國守)의 다른 명칭으로 사용하였다.

826년 가즈사[上總] ·히타치[常陸] ·고즈케[上野]의 3개국을
친왕임국(親王任國)으로 하여 신하가 아닌 친왕을 국수로
임명하였는데 친왕으로서 국수에 임명된 자를 태수라 하였다.

이런 경우 태수는 요임(遙任)이라 하여 임지에 부임하지 않고
실제 국무(國務)는 차관인 스케[介]가 전담하였다.

그 후 고다이고[後醍塢]천황 때 무쓰[陸奧]까지도 친왕임국으로
삼았다.

무로마치[室町]시대에 국사제(國司制)가 무너진 뒤 제국의
우두머리가 영주(領主)가 되어 다이묘[大名]라고 불려지게 되자
이를 태수라 했고, 에도[江戶]시대에는 1국을 영유한 다이묘를
태수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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