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말갈족에 대해 - 40번 관련

작성자김용만|작성시간02.04.04|조회수514 목록 댓글 0
말갈족에 대해서 토론하는 것을 있으면서 계속해서 도대체 말갈족이 지금 만주에 살고 있다니 이 무슨 소리인가 하고 의문을 가졌습니다.
그랬더니 조사를 해보니, 2002년 신년특집 역사스페셜 발해2편에서 흑수말갈의 후손인 나나이족 사람들의 마을에 취재팀이 간 것을 보고서 여러분들이 말갈이 지금도 살고 있다고 쓴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말갈족이 나나이족과 관련이 있다는 것은 학자들의 추정입니다.
말갈족은 일반적으로 여진족의 선조이며, 여진족은 금을 세웠습니다. 그 여진족의 후예는 만주족이며, 이들이 청을 세웠습니다. 만주족은 지금도 만주에 살고 있습니다. 환인현이 만주족 자치현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고구려시기에 말갈이 과연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한규철 교수님은 말갈은 고구려의 백성들을 당나라 놈들이 낮추어 부른 것이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수서에 말갈 7부가 있었다고 하지만, 이 가운데 독자성을 유지한 말갈은 겨우 흑수말갈뿐입니다. 당서 흑수말갈전에는 흑수말갈이 강성해져서 나중에 그 부가 수십개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이것은 흑수말갈이 처음에는 아주 적은 부족을 지칭하다가 나중에는 주변의 실위, 거란 등을 포함해서 포괄적으로 불려진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다가 발해시기에 이르르면 815년 이후에는 확실하게 발해의 지배를 받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 흑수말갈은 다른 말갈과 달리 가장 북쪽에 살았고 비교적 독자성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시기별로 차이가 납니다. 즉 이들이 독자성을 유지한 시기는 겨우 7세기 중반에서 8세기 정도뿐입니다.

또한 말갈이 백산말갈(백두산주변)과 속말말갈(송화강유역) 그리고 흑수말갈(흑룡강주변)을 포함하는 광의의 칭호로 사용하는데 이들이 과연 하나의 언어와 혈통을 지닌 단일한 종족인지도 불분명합니다.

물길이 479년경에 북위에 사신을 보내서 자기들의 부족을 설명하는 기록에 의하면 일부는 거란부족까지도 자기들속에 포함시켜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의 흑룡강과 동류송화강 주변의 여러 종족들은 그들이 남긴 기록이 거의 없고, 중원의 나라들이 기록한 것들 뿐이라, 정확하게 그들의 역사와 혈통 등을 알기 어렵습니다. 마찬가지로 나나이족 역시 흑수말갈의 후예라는 것도 반드시 정확한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후예라고 하더라도 이들이 늘 같은 크기의 세력을 유지하면 지내온 것이 아니니 흑수말갈이 다시 부활했다는 식으로 이해하지는 말아야 할 것입니다.

말갈에 대한 문제는 발해사 뿐만 아니라, 고구려사 에서도 너무나 중요한 문제입니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서 말갈사를 전공하는 경희대 이윤창님과도 대화를 많이 나누어 보았지만, 여전히 풀리지 못하는 문제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말갈7부가 어디까지 진실인가. 어느 부가 고구려인이고, 어디를 말갈로 볼 것인가. 말갈의 분포지는, 말갈이 고구려의 용병인가 아니면 일반 백성인가. 왜 당은 말갈을 더 미워했을까. 발해 건국에서 말갈의 역활을 어떻게 볼까, 발해 멸망후 여진족은 과연 말갈의 후손이자 고구려-발해의 후손이라고 볼 수 있을까 등등.
좀 더 시간이 지난 후에 내가 쓴 글을 조금 다듬어서 고구려와 말갈 문제를 정리해서 글을 올리겠습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