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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쟁이와 기술자 그리고 동양의 신화

작성자김용만|작성시간04.05.01|조회수369 목록 댓글 0
북유럽신화에는 난쟁이들이 별도의 세계를 이루며 사는 이야기가 보인다.
그 난쟁이들은 못 만드는 것이 없고, 난쟁이 블로크 신드리가 만든 물건이 최고신 오딘의 궁그늬르 창과 힘센 신 토르의 무기인 묠니르가 된다. 난쟁이가 만든 물건이 없으면 신도 평범해져서 거인에게도 당한다.
비정상적인 난쟁이와 인간의 능력을 보충해주는 기술의 결합은 동양에서도 똑 같이 나타난다. 아직 삼국이나 고려, 조선에서는 사례를 찾아보지 않았지만, 그 이전시기에 이와 관련된 전설들은 많다.
정재서 교수의 다음 글을 한번 읽어보면, 동서양의 신비한 사고의 일치를 엿볼 수가 있을 것이다.

[동양의 신화]<28> 난쟁이, 긴 팔, 긴 다리 사람들이 사는 나?

[한국일보 2002-11-12 18:48]


거인이 있으면 소인도 있다. ‘걸리버 여행기’에서 거인국에 이어 소인국이 나오듯이. ‘산해경(山海經)’을 보면 동쪽의 가장 먼 변방 지역에있다는 거인의 나라 대인국(大人國)에서 머지 않은 곳에 정인(靖人)이라고부르는 난쟁이 나라가 있다고 한다.

이들의 키는 아홉 치, 즉 30㎝ 쯤이었다고 한다. 난쟁이는 여러 지역에서살았던 것 같다. 역시 ‘산해경’을 보면 남쪽 변방 지역에도 주요국(周饒國) 혹은 초요국( 僥國)이라는 소인국이 있었다. 고대 중국에서는 난쟁이를 주유(侏儒)라고 불렀는데 앞서의 정인 주유 초요 등은 모두 같은 발음이 변화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키가 석 자, 즉 90㎝ 정도 되었으며 갓을 쓰고 옷을 잘 갖춰 입은것이 보통 중국 사람이나 다를 바 없었다. 그들은 동굴 속에 살았고 손재주가 뛰어나 여러 가지 도구를 잘 만들어 냈다. 그들은 요(堯) 임금 때에중국으로 사신을 보내 몰우(沒羽)라는 좋은 화살을 바친 적도 있었다. 동화 백설공주에 나오는 난쟁이들이 연상된다.

그들에게는 천적(天敵)이 있었으니 밭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면 덩치 큰학이 날아와 쪼아먹는 것이었다. 다행히 그들의 북쪽 가까운 곳에 대진국(大秦國)이라는 정상적인 키를 한 사람들의 나라가 있어서 그들이 학을 쫓아주곤 했다.

그런데 중국 신화에서 변방 사람들에 대한 묘사가 혹시 현실을 반영했던것은 아닐까. 대진국은 고대 중국에서 로마 제국을 지칭했던 말이다. 초요국의 초요( 僥)는 초요(焦燎)와 발음이 같아 뜨거운 지역을 의미한다. 뜨거운 지역에 사는 난쟁이라면 아프리카의 피그미족이 유명하다.

아프리카는 로마 제국이 있는 지중해의 남쪽에 위치해 있으니 그럭저럭신화적 정황과 일치한다. 중국의 일부 학자들은 이러한 추리에 근거해서‘산해경’이 고대에 전 세계를 답사했던 실제 여행 기록이라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신화 시대의 난쟁이는 역사 시대로 들어가면 종족적인 차별을 받게 되고심지어는 약용 동물로 간주되기까지 한다. 동진(東晉) 시대의 갈홍(葛洪ㆍ283~343)이라는 저명한 도교 학자가 지은 ‘포박자(抱朴子)’는 신선이 되기 위한 온갖 방법을 수록한 책이다.

이 책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산속을 다니다 보면 키가 일곱 치나 여덟치쯤 되는 난쟁이가 수레를 타고 가는 것을 발견할 때가 있다. 이 때 즉각붙들어서 잡아먹으면 신선이 될 수 있다.” 소인국에 대한 재미있는 환상이 끔찍한 식인의 욕망으로 바뀐 것이다.

중국신화에는 소인국 말고도 기형적인 존재들이 사는 변방의 나라들이많다. 중국의 남쪽 바다 바깥 지역에는 양 팔이 엄청 긴 사람들이 살고 있는 장비국(長譬國)이라는 나라가 있었다.

이 사람들은 주로 물고기를 잡아먹고 살았는데 물속에 선 채로 그대로 긴팔을 물에다 뻗어 고기를 잡을 정도였다. 이들이 좀더 깊은 바다로 가서고기를 잡아야 할 때는 근처에 사는 장고국(長股國) 사람들과 협동을 해야했다. 이 나라 사람들은 문자 그대로 다리가 길어 3장(丈), 즉 9㎙가 넘었다는데 이들은 장비국 사람들을 등에 업고 깊은 바다까지 나아가 고기를잡게 했다. 그렇게 해서 잡은 고기를 두 종족은 사이좋게 나누어 가졌을것이다.

장비국 종족은 우리 나라 근처에도 살았던 모양이다. ‘산해경’에 주를달았던 곽박(郭璞)이라는 학자가 들었던 옛날 이야기에 의하면 조조(曹操)가 통치했던 위(魏) 나라가 고구려를 쳤을 때 현도(玄 ) 태수 왕기(王 )가 동천왕(東川王)을 추격하여 지금의 함경도 해안인 옥저국(沃沮國)에이르렀다 한다.

왕기는 더 갈 데도 없는 땅끝까지 온 것 같아 그곳의 노인에게 바다 동쪽에도 사람이 살고 있는지를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하였다고 한다. “언젠가바닷속에서 한 벌의 베옷을 건졌는데 몸 크기는 보통 사람만 하나 두 소매길이가 3장이나 되었습니다”라고. 곽박은 그것이 바로 장비국 사람의 옷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외팔이인 일비국(一譬國) 사람들도 있다. 서쪽 바다 바깥에 살았던 그들은 외팔과 외눈에 콧구멍이 하나인 괴상한 생김새였다. 이곳에는 호랑이무늬의 누런 말이 있는데 사람을 닮았는지 그것들도 외눈에 앞발이 하나였다 한다. 근처에는 또 다른 외팔이들이 사는 기굉국(奇肱國)이라는 나라가있었다. 그들은 외팔이지만 눈이 셋인데다 특이한 것은 남녀의 생식기를한몸에 지닌 어지자지였다. 이곳에는 신기한 말도 있었다.

문마(文馬)라고 부르는 그 말은 아름다운 무늬를 하였는데 이것을 타고다니면 천살까지 살 수 있었다 한다. 기굉국 사람들은 늘상 이 말을 타고다녔으니 아마 퍽 오래 살았을 것이다. 그들 곁에는 또 적황색 몸빛에 머리가 둘 달린 이상한 새가 따라 다녔다. 곽박은 어디서 들었는지 이 괴상한 인물에 대해 다음과 같은 설명을 덧붙인다.

기굉국 사람들은 도구를 잘 만들어 그것으로 온갖 짐승을 잡곤 했는데 정말 그들이 뛰어난 손재주를 보여준 것은 비거(飛車)라는 신통한 탈것에서였다. 그들은 비거를 타고 바람을 이용해 멀리까지 갈 수 있었다고 한다.

아마 오늘날의 기구나 행글라이더 같은 것이 아니었나 싶다. 중국의 탕(湯) 임금 때에 예주(預州) 지역에서 그것을 발견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임금은 그것을 곧 부수게 하고 백성들에게 보여주지 아니 하였다. 왜 그랬을까? 한 10년쯤 후 서풍이 불어왔을 때 탕 임금은 다시 그것을조립해서 기굉국에 돌려보냈다 한다.

남쪽 바다 바깥 지역에 사는 교경국(交脛國) 사람들은 다리가 휘어서 x자로 엇갈린 형태를 하고 있었다 한다. 북쪽 바다 바깥의 유리국(柔利國) 사람들은 더욱 기괴해서 외팔과 외다리인데 그 외다리조차도 무릎이 반대쪽으로 휘어 있었고 발도 굽어 있었다. 일설에 의하면 그들은 발이 아예 반대쪽으로 꺾여 있었다고도 한다.

아마 그들이 눈위를 걸었다면 우리가 신발을 거꾸로 신고 걸은 것 처럼발자국이 반대쪽으로 향했을 것이다. 이 지역에는 두 발이 모두 갈라진 모습을 한 기종국( 踵國)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걸어 다닐 때도 까치발이어서 발뒤꿈치가 땅에 닿지 않았다 한다.

이들의 지역보다 더 거친 북방의 황야에는 정령국(釘靈國)이라는 나라가있는데 이 나라 사람들은 무릎 아래에 털이 나있고 발은 말발굽이어서 마치 말처럼 달릴 수 있었다. 아마 이러한 이야기는 말을 잘 타는 북방유목민족의 모습을 신화적으로 묘사한 것이리라.

고대 그리스인들도 말과 하나가 되어 달려오는 스키타이인을 보고 위는사람이고 아래는 말인 신화적 존재인 켄타우로스를 상상해냈다는 설이 있다.

머리나 몸통이 복수인 종족들로는 남쪽 바다 바깥에 사는 머리가 셋인삼수국(三首國), 서쪽 바다 바깥에 사는 몸통이 셋인 삼신국(三身國) 사람들이 있다. 북쪽 변방의 대황산(大荒山)에 사는 삼면인(三面人)은 하나의머리에 얼굴이 셋이고 팔이 하나인데 신 전욱(顚頊)의 후손으로 불사의 존재라 한다. 우리나라 근처에도 이와 비슷한 인종이 살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앞에서처럼 옥저의 노인이 왕기에게 들려주었다는 이야기이다. 부서진 배한척이 바닷가에 밀려 왔는데 그 안에 이마 한 가운데에 또 하나의 얼굴이있는 사람 곧 양면인(兩面人)이 타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말이 통하지않아 결국 그 양면인은 굶어죽었다고 한다. 이들과는 달리 눈이 하나인 일목국(一目國) 사람들도 있다.

북쪽 바다 바깥에 사는 그들은 외눈이 얼굴 한 복판에 있는 것이 영락없이 그리스 로마 신화의 외눈박이 거인 키클롭스를 닳았다. 이 지역에는 눈이 움푹 들어간 심목국(深目國) 사람들도 살고 있었다. 심목이라는 표현은후일 서양 사람들의 눈을 묘사할 때도 사용하였다.

귀가 너무 길어서 걸을 때 두 손으로 받치고 다녀야 하는 섭이국( 耳國) 혹은 담이국( 耳國), 대이국(大耳國) 사람들도 이 지역 출신이다. 그들은 잘 때에는 한쪽 귀를 깔개로 하고 한쪽 귀는 이불로 삼았다고 하니 긴귀가 유리한 점도 있었다.

그들은 바다 한 가운데의 외딴 섬에 살았는데 무늬가 아름다운 호랑이 두마리를 항상 곁에 두고 부렸다 한다. 남쪽 바다 바깥에는 관흉국(貫胸國)혹은 결흉국(結胸國) 천흉국(穿胸國)이라는 가슴 한 가운데가 뻥 뚫린 사람들이 사는 나라가 있었다.

그러나 이 사람들도 상하 질서가 분명한 종족이었다. 가령 신분이 높은사람은 그냥 걸어다니지 않았다. 옷을 벗고 아랫것들로 하여금 대나무로가슴의 구멍을 꿰어 들고 다니게 했다. 이를테면 가마를 탄 셈이다.

끝으로 생각해봐야 할 것은 고대 중국인들이 기형적 존재에게 기술적 재능을 부여했다는 점이다. 이는 그들이 신체적 결함을 보충하기 위하여 기술 방면으로 노력을 했을 것이라는 논리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보다 근원적으로는 고대 중국인들이 지녔던 테크놀로지에 대한 불신감과 상관이 있다. 테크놀로지 자체를 불완전한 것으로 보는 관념에서 기형종족과 테크놀로지의 능력을 동일시 했다.

그들이 테크놀로지를 신뢰하지 않았음은 탕 임금이 비거를 처리한 이야기에서도 명백히 표현되고 있다.

글 정재서 이화여대 중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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