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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대왕이 동진을 한 이유!(펌글)

작성자한단인|작성시간05.05.03|조회수462 목록 댓글 2

역사속의 전쟁사 카페에서 웰링턴이란 분이 올린 글을 퍼 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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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점은 간단합니다. 우선 유럽땅은 개척과 발전이 되지 않아서 입니다. 유럽쪽에 발전된 곳이라면 지중해 연안의 일부의 '땅'외에는 문명의 발전이라곤 찾아볼수없었습니다. 북유럽의 청동기와 철기시대를 3개로 쪼개서 나누는데.

 

"언필드 > 할슈타트 > 라텐"으로 나누죠....언필드는 고대 ~ 중기 청동기시대를 말합니다. 이시대 사당한 청동기구 제조술이 나타납니다. 주물법도 이시대에 나타나 보다 좋은 청동기를 얻을수있게됩니다. 다음은 '할슈타트'기 입니다.

 

할슈타트란 독일의 할슈타트 지방에서 발생한  말기 청동기의 시기부터 초기 철기시대를 이루는 시기에 나타난 문명지입니다..이시기 수많은 철제 혹은 청동제 무구들이 출토됩니다. 이 시기 강력한 부족집단이 형성되기 시작합니다. 이 시기는 갈리아인들이 초기 로마를 침략했던 시대로 보아도 무난합니다.

 

그리고 '라텐',  라텐이면 카이사르가 갈리아지방을 순회하면서 정복했을때도 라텐이라는 시대를 업고 했습니다. 이 시기는 중기 철기시대를 말하며 갈리아나 게르만에 힘이 생긴 부족들이 할거한 시대입니다.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기에 등장하는 갈리아의 25부족들이 이들에 속합니다.

 

이시기에 카이사르는 소위 돈될일 없는 유럽으로 갔죠.....북유럽으로말이죠...

그당시 그리스를 봅시다. 유럽이 언필드기를 격고있을때 그리스지역에서는 소위 트로이전쟁이 일어나게되었습니다. 그 기간에 대해 알수있는것은 북유럽은 부족사회에 머물고있을때 그리스 지역은 왕권이 중심이 되는 사회를 가지고있었으며 무역이란것을 하고있었다는것을 볼수있습니다.

 

할슈타트기를 격고있던 북유럽이 아직도 부족연맹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있을 무렵 그리스와 페르시아간의 오랜 전쟁이 나죠...이 당시 그리스는 문학과 기타여러가지로 발전하고있었습니다. 로마도 그리스의 성문법을 배워가는 형편이었으니까요...

 

마지막으로 라텐입니다. 이 라텐기에도 부족연맹체는 있었지만 아니 솔직하게 왕이란 존재가 북유럽에 없던것도 아닙니다만....완벽하게 국가로써의 그 무엇을 했던 그런형태가 아니었습니다. 단지 족장보다 조금 높은형태로써의 형태였기때문에 왕이라 보기에는 힘듭니다.

 

또한 단순하게 모든것을 볼때도 어느 하나도 그리스보다 났다고 볼수없었습니다.

그런반면 소아시아와 트라키아 그리고 그리스는 해상무역과 기타 여러가지의 활동을 통해 돈이란것을 많이 만들었으며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트라키아의 페르가몬이라는 대도서관이 있어 지식의 또는 문화의 보고였습니다. 그런 그리스인들이 유독 관심을 가진 곳이 있었습니다.

 

오리엔트(해가뜨는 방향이라는 뜻)입니다. 왜 오리엔트일까요...그들이 '동경'이란것을 했기때문입니다. 자세하게 왜 동경했는지에 대해서는 모릅니다...하지만 그점때문에 알렉산더는 움직였습니다.

 

시오노 할머니가 단순하게 페르시아가 덤벼서 왔네 또는 아버지의 아버지때부터 증오가 싹텄네 라고 하기에는 모자른감이 없잔아 있습니다. 전 그리스의 증오심이라고 표현하기에도 당시 그리스와 페르시아간의 무역과 교류는 계속 있어왔기때문이죠...

 

흔히 말하는 오리엔트란 말은 인도나 페르시아를 지칭하는 말이 아닐수있습니다. 수많은 역사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오히려 중국이나 한국과 같은 나라라는데 더 비중을 둘수있다고 합니다.  그중에서 그들이 한가지를 집고넘어간 사실이 있는데 그것은 중국과의 무역이 우리가 책에서 배운것보다 훨씬 전부터 이루어지고 있었다는것입니다.

 

동쪽에서 드나들었던 중국의 무역품들은 그리스와 페니키아 그리고 메소포타미아의 눈을 번쩍이게 합니다. 또한 그들의 차림또한 이색적이고 화려하여 수많은 사람들의 궁금증을 더해가게 만듭니다.

 

소위 중국을 다녀왔다고 하는 사람들의 입에서 전해지는 중국과 한국의 실상은 그들이 말하는 천국, 아니 이상향에 가까웠을지 모릅니다. 알렉산더또한 그러한 이상향에 대한 궁금증과 같고싶다는 집착이 강했을수 있습니다.

 

이시기에 왜 중국이냐? 라고 말하시는분들을 위해서 여기서 집고넘어가겠습니다.
양잠문화에 대해서 아시는분들이 꽤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페니키아의 어떤 귀족의 무덤(티레에서 발굴)에서 동쪽에서 '세레스인'이라하는 사람들이 고급직물(비단)을 가져온다"라고 하였습니다. 세레스라는 말의 어원에 대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풀었지만 명확한 답은 나오지 않았으나...

 

어원을 여러나라에 걸쳐 살펴보았더니 "상(商)"이란 글자와 맞아떨어지는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상나라는 중국의 은(殷)조를 말합니다. 페니키아의 귀족무덤의 탄소측정연대를 분석해본결과 귀족의 죽은시대와 상나라의 존재했던 시기가 딱 맞아떨어지게 되었습니다.

 

결국 알렉산더가 꿈꿨던것은 어쩌면 인도가 아닌 중국이었을지 모릅니다. 우리가 그 시대사람이 아니라 자세하게 알수는 없으나 유추해볼수는 있습니다. 분명한것은 알렉산더가 인도의 일부분을 점령하면서도 계속 동쪽으로 가려했던것을 볼수있는데 그점은 어쩌면 위의 내용과 부합되기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합니다.

 

 

*붉은색의 글은 제 생각입니다. 이 글은 다음카페 http://cafe.daum.net/shogun 의 제 기록을 옮겨놓은 것입니다. 이 글은 연구글이며 사유재산에 속합니다. 그렇기때문에 스크랩의 경우 리플이나 쪽지를 남기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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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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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신농 | 작성시간 05.05.06 유라시아 천년을 가다란 책을 최근에 읽어보았는데...오랫동안 서방인들에게 있어 동방이란 지역은 신비한 세계로 여겨진듯 합니다. 세레스인 관련 부분이 흥미로운 대목이네요..^^ 저도 실크로드 관련 부분을 접하면서 그것이 어느 순간에 갑자기 나타난 길이 아닐 것으로 생각합니다.
  • 작성자신농 | 작성시간 05.05.14 나중에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알렉산더가 페르시아(아케메네스조) 원정을 나간 것이, 페르시아가 비단길을 독점하였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는군요. 아무튼 오랜 옛날부터 동서가 트여있었다는 것은 흥미로운 사실임에 틀림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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