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2003년 10월31일 기사입니다.
이 기사를 신라 도교에 천착한 김태식 기자의 학문적 관심에서 나온 것입니다.
김태식 기자를 초청해 도교 공부를 한번 해보아야 하겠습니다.
*** [신라고분에서 운모가 출토되는 까닭은?]
(경주=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신라고분에서 운모가 연이어 출토되는 현상을적어도 국내 학계에서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은 이에 대한 연구논문이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는 데서 잘 드러난다. 실제 이와 같은 운모를 부장한 고분 등지의 발굴에 종사하고 있는 일선 고고학자들에게 기자는 왜 운모가 나오는가라는 질문을 여러 번 던져 보았는데, 이에 대해마뜩한 설명을 해 주는 이를 아직까지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도교 연구자들에게 운모가 갖는 의미는 아주 딴판이다.
국내 도교연구를 주도하는 이화여대 중문과 정재서 교수. 그에게 기자는 적석목곽분(돌무지덧널무덤) 시대 여러 신라고분에서 운모가 출토되고 있는 현상을 지적하면서 그에 대한 생각을 물어보았다.
이에 대한 정 교수의 첫 반응은 놀라움이었다. 한마디로 "신라고분에서 운모가출토되나요?"였다.
정 교수가 이런 반응을 보인 까닭은 무엇일까? 운모는 도가사상에서 장기간 복용하면 불로장생, 영원불사를 보증하는 선약(仙藥) 중에서도 약효가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되는 8가지 약물(혹은 그 재료)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운모가 신라무덤에서 출토된다면 그것은 그 사회에 불로장생을 표방하는 도교신앙이 이미 신라사회에 깊이 침투되었다는 일대 증거로 간주한다.
상등급 선약인 운모를 무덤에 넣었다는 것은 죽어서도 죽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얻게 된다는 영원불사의 사상이 스며있다는 것이다.
한데 이들 운모가 신선사상 혹은 도교와 밀접하다는 지적은 이미 일본 고고학계에서 제출된 바가 있다. 몬다 세이이치(門田誠一)라는 연구자가 그 주인공.
그는 최근 연이어 발표한 두 논문을 통해 운모가 선약(仙藥)으로 쓰이고 있음을주목하면서 신선사상 및 도교가 한반도에 침투해 있었다는 탁월한 견해를 제출했다.
이들 논문에서 몬다가 지적한 한반도 운모 출토 유적으로는 ▲천마총 ▲황남대총 북분과 남분 ▲황오리 제33호분의 4곳이 있으며 경주 교동 출토품으로 전하는 위지삼공경(位至三公鏡)이라는 동경과 경산시 자인면 북사리 고분군 중 2호분(5세기대축조 추정)을 추가했다.
하지만 운모를 출토한 신라고분은 훨씬 더 많다. 호우총과 은령총을 필두로 황오리 14호분 1곽과 2곽, 황오리16호분 6곽, 황남리82호분 동총 등이 더 있다.
이들 신라지역 운모는 첫째, 적석목곽분 시대에 무덤 부장용으로 주로 확인되며, 둘째, 그러한 고분은 경주 일대에 집중해 있고, 셋째, 그것이 확인되는 장소는 피장자 머리 부근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이로 보아 운모는 4-6세기 무렵 왕족을 비롯한 신라사회 최고위층에 국한되어서만 사용된 특권적 선약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운모가 선약이었음이 명백한 이상, 이 때문에 종래 신라사 연구는 실로 막대한타격을 보게 될 지도 모른다.
종래 학계에서는 불교 및 유교 도입 이전 신라사회를 무속 혹은 샤머니즘 사회로 간주했는데 그런 신라사회에 도교가 깊숙이 침투해 있었다면? 아마 신라사는 원점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이 기사를 신라 도교에 천착한 김태식 기자의 학문적 관심에서 나온 것입니다.
김태식 기자를 초청해 도교 공부를 한번 해보아야 하겠습니다.
*** [신라고분에서 운모가 출토되는 까닭은?]
(경주=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신라고분에서 운모가 연이어 출토되는 현상을적어도 국내 학계에서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은 이에 대한 연구논문이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는 데서 잘 드러난다. 실제 이와 같은 운모를 부장한 고분 등지의 발굴에 종사하고 있는 일선 고고학자들에게 기자는 왜 운모가 나오는가라는 질문을 여러 번 던져 보았는데, 이에 대해마뜩한 설명을 해 주는 이를 아직까지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도교 연구자들에게 운모가 갖는 의미는 아주 딴판이다.
국내 도교연구를 주도하는 이화여대 중문과 정재서 교수. 그에게 기자는 적석목곽분(돌무지덧널무덤) 시대 여러 신라고분에서 운모가 출토되고 있는 현상을 지적하면서 그에 대한 생각을 물어보았다.
이에 대한 정 교수의 첫 반응은 놀라움이었다. 한마디로 "신라고분에서 운모가출토되나요?"였다.
정 교수가 이런 반응을 보인 까닭은 무엇일까? 운모는 도가사상에서 장기간 복용하면 불로장생, 영원불사를 보증하는 선약(仙藥) 중에서도 약효가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되는 8가지 약물(혹은 그 재료)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운모가 신라무덤에서 출토된다면 그것은 그 사회에 불로장생을 표방하는 도교신앙이 이미 신라사회에 깊이 침투되었다는 일대 증거로 간주한다.
상등급 선약인 운모를 무덤에 넣었다는 것은 죽어서도 죽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얻게 된다는 영원불사의 사상이 스며있다는 것이다.
한데 이들 운모가 신선사상 혹은 도교와 밀접하다는 지적은 이미 일본 고고학계에서 제출된 바가 있다. 몬다 세이이치(門田誠一)라는 연구자가 그 주인공.
그는 최근 연이어 발표한 두 논문을 통해 운모가 선약(仙藥)으로 쓰이고 있음을주목하면서 신선사상 및 도교가 한반도에 침투해 있었다는 탁월한 견해를 제출했다.
이들 논문에서 몬다가 지적한 한반도 운모 출토 유적으로는 ▲천마총 ▲황남대총 북분과 남분 ▲황오리 제33호분의 4곳이 있으며 경주 교동 출토품으로 전하는 위지삼공경(位至三公鏡)이라는 동경과 경산시 자인면 북사리 고분군 중 2호분(5세기대축조 추정)을 추가했다.
하지만 운모를 출토한 신라고분은 훨씬 더 많다. 호우총과 은령총을 필두로 황오리 14호분 1곽과 2곽, 황오리16호분 6곽, 황남리82호분 동총 등이 더 있다.
이들 신라지역 운모는 첫째, 적석목곽분 시대에 무덤 부장용으로 주로 확인되며, 둘째, 그러한 고분은 경주 일대에 집중해 있고, 셋째, 그것이 확인되는 장소는 피장자 머리 부근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이로 보아 운모는 4-6세기 무렵 왕족을 비롯한 신라사회 최고위층에 국한되어서만 사용된 특권적 선약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운모가 선약이었음이 명백한 이상, 이 때문에 종래 신라사 연구는 실로 막대한타격을 보게 될 지도 모른다.
종래 학계에서는 불교 및 유교 도입 이전 신라사회를 무속 혹은 샤머니즘 사회로 간주했는데 그런 신라사회에 도교가 깊숙이 침투해 있었다면? 아마 신라사는 원점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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